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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Aug 14. 2020

미국 유학 없이 영어를 정복한 비법

시험을 치르기 위해 영어를 시작했을 때 나에게 영어는 외계어에 가까웠다. 어느 순간 나에게 첫 번째 제2외국어는 영어가 아닌 독어가 되어 있었고 '그녀는 선생님이다'라는 문장 하나를 영작할 때 나도 모르게 'She ist a Teacher.'라는 미친 문장을 쓰고 있었다. 동사도 틀리고, 명사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는 건 모두 독일어의 간섭 때문이었다. 일반 영어가 전혀 되지 않았던 나의 나이는 25살이었고, 주변을 둘러보면 나보다 어린 영문과 여학생들은 이미 영어권 국가에 짧게라도 어학연수를 다녀왔거나, 미군 부대에 인턴쉽을 갔거나, 영어권 국가에서 자라난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며 한국인으로서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일련의 과정을 마친 상태였다.


"독어랑 영어랑 비슷한 점이 많다는데, 어떻게든 쉽게 하지 않을까?"

"토익 900점은 두 달이면 된다는데, 걱정할 건 없겠지?"


모두 틀렸다. 첫 번째 경우는 독어가 모국어 화자인 사람이 영어를 배울 때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었다. 두 번째 경우의 토익 900점은 수강생을 끌어당기기 위한 학원의 상술이거나, 적어도 토익 시험에 대한 익숙함이 있는 사람이 집중적으로 시간을 투자한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내 영어는 바닥이었다. 임용 시험 준비한다는 사람의 영어가 그야말로 바닥, 아니 지하였다. '에이 그래도 다른 공부를 아예 안 해본 건 아닌데, 쉽게 할 수 있겠지?'. 그 쉽게 할 수 있겠지라는 말이 현실이 되기 전까지 견뎌야 하는 하루가 너무 길었다.


중고등학생들이 참조하는 문법 책부터 시작해서 영어 선생님들이 보는 전문서적까지 책이 지향하는 바를 여러 번 씹어 먹으며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영어와 3년간 씨름했다.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 그리고 문법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영역이라도 소홀히 하지 못해서 수능용 단어와 숙어 암기, 수능용 강의 듣기, 전화 영어, 펜팔, 원어민과 회화, 미드 보며 스크립트 공부, 토익, 토익 스피킹, 영어 일기, 영어 에세이, 토플, 영자 신문, GRE, ILETS까지 외국인으로서 영어를 습득할 수 있는 갖가지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이 방법을 1) 믿고, 2) 체화하여, 3) 시간과 노력을 들이며 실력을 키우자 이전에 했던 모든 것들은 노력 대비 효과가 적은 것들이었음을 깨달았다. 물론, 그만한 노력을 해 봤기 때문에 늘어난 영어 실력과 관점의 확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임계점을 넘겼다는 만족감이 없던 게 문제였다. 정신이 번뜩 뜨이며, 손때가 묻은 책상의 책을 모두 치울 만큼 이 방법에 매달렸다.



비법 = 남들이 다 무시하는 그 방법, 받아 쓰기

영어 시험을 위한 영어가 아니라 영어라는 언어를 위한 영어 공부가 핵심이다. 영어 모국어 화자와 일상 대화가 가능한 장소에 있다면 누구나 영어 실력은 상승한다. 그래서 영어권 국가에 2달만 어학연수나 캠프를 다녀오면 지속성은 떨어지지만 일시적으로 영어가 느는 것이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화자들은 한국어를 말할 수 있는 것일 뿐 모두가 한국어를 '잘' 하는 게 아니다. 이 방법은 단순한 말하기 능력을 넘어서 말을 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단순하고도 지속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끊임없이 이게 맞는 방법인지 의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조금 배웠다는 허세, 자존심, 알량하고 얄팍한 지식을 모두 내려놓고 덤벼든 방법은 '받아 쓰기'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어려운 단어가 거의 보이지 않는 텍스트와 겨우 2분도 걸리지 않는 mp3 파일을 켜고 이게 뭔 대수라고라며 시작했지만, 처음 받아 쓰기를 한 날 나는 내가 영어를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나의 영어 실력을 개탄했다.  이전에 했던 모든 영어스러운 것(?)을 잊고 발음이 정확이 들릴 때까지 듣고, 입으로 따라 하고, 문장을 처음부터 다시 보고, 그 짧은 글이 어떠한 음성과 내용을 가지고 있는지- 왜 여기서 이 단어가 쓰였는지 생각하는 공부를 했다. 겨우 2분짜리 음성에 담긴 말이지만, 그 공부를 온전히 끝내는데 몇 시간이 걸렸다. 수업을 듣고 몰랐던 것을 다시 정리하고, 암기하고, 단어와 문장을 새로 정리하여 복습까지 마치고 한글만 보고도 바로 입에서 영어가 튀어나올 수 있게 연습했다. 수업은 거들뿐, 혼자서 공부하는 시간이 3배는 더 많았는데 내가 공부했던 영어의 노하우는 음성정보와 문자정보를 해석(Input) 하고 그 정보들이 쓰인 맥락을 이해로 확장하여 사용(Output) 하는 것이었다. 특히나, 영어가 외국어인 한국인이 영어를 '' 사용하려면 이 방법이 기본이다.


방법 = 시작부터 하자

서점으로 가서, 스크립트와 mp3 혹은 비디오 클립이 담긴 동화책을 하나 고른다. 스크립트를 볼 때, 왠지 이 정도면 이해 가능하다 싶은 쉬운 수준의 자료를 선택하여 하루에 20줄이 넘어가지 않는 정도 혹은 Scene 1개를 선정한 후 들리는 대로 노트에 받아쓰고, 고치고, 다시 고친다. 전혀 들리지 않는 발음은 여러 번 반복 듣기 해서 듣는다. (대부분 모음이 어렵다.) 글의 스토리(맥락)를 완전히 이해한 후 툭- 하면 튀어나올 정도로 암기한다. 맥락을 기반한 암기이므로 기계적인 암기와 차원이 다르다. 글을 읽고 듣는(Receptive skills, input) 것과 쓰고 말하는(Productive skills, output) 것을 점진적으로 하고 나면 어느 순간 꿈에서도 영어로 말하고 누가 부르면 영어로 대답하게 되는 습관마저 생긴다. 하나씩 교재를 끝내고 나면, 점차 수준을 올린다.



받아쓰기의 핵심은 맥락에 있다. 시험으로 시작했던 영어를 정복했던 방법은 언어의 본질을 찾는 것부터가 진짜 게임이었다. 자나 깨나 영어라는 Input 이 들리는 미국 땅에 있지 않는 이상, 이해 가능한 입력(Comprehensible input)을 세팅해야 한다. 미국인 혹은 영국인 등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화자들과 6개월, 1년 혹은 몇 년간 대화를 해본 경험 없어도 유창한 영어가 가능한 토종 한국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해 가능한 입력을 꾸준히 다듬은 사람들이다. 기본은 쉽다는 착각과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핑계 그리고 쉐도잉이나 미드  혹은 빠른 시간 내에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을 멀리하는 이유와 관련해서는 글 하나를 새로 쓸 계획이다.


사실 영어를 '완전히' 정복한다는 것은 양심상 어불성설이다. 언어는 계속 변하며, 모국어와 외국어는 생각의 구조상 습득의 차이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잘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른 영역이지만, 잘하지 못하면 가르칠 수 없다. 영어를 쓰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도 내 영어 실력은 늘 나를 숙연하게 만든다. 그래서 완전함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매번 정복하려는 마음으로 노력한다. 나도 이런 의도적인 노력 없이 미국 땅으로 가서 기숙사 공지 사항에 적힌 파티에 참여하여 무한정으로 언어의 사용 역을 넓히고 싶은 게 솔직한 바람이다. 하지만 미국을 못 간다면? 영어가 쓰이는 환경을 만들도록 계속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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