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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Aug 11. 2020

1시간에 1,500원짜리 와이파이

와이파이 찾으러 삼매경

어딜 가나 무료로 와이파이를 사용하는 게 당연시되는 한국과는 다르게 독일에서는 와이파이를 쓰려면 특정 장소를 찾아다녀야 했다. 유학을 떠나기 전 최신 공유기를 구매하고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무선인터넷을 쓰려고 몇 시간을 넘게 설치에 애를 썼으나 VPN 인지 뭔지 나는 알아듣기 어려운 것들이 결론적으로 기숙사 내 무선인터넷 사용이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독일의 모든 실내 와이파이가 불가능한 게 아니라, 내가 파견 갔던 대학교에서 제공하는 무료 인터넷은 유선으로 연결 시에만 사용 가능했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독일의 대학생들 중 스마트폰을 소지한 학생들은 거의 없었고 이는 자연스레 무선인터넷이 굳이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공유기 제조사에 문의해보고 학교에 직접 물어보고, 일반 주택에 거주하는 한국 지인께 여쭤보고 인터넷 정보를 받아봐도 소용이 없었다. 이제 갓 스마트폰이 보급되어 3G의 신세계를 맛보고 독일로 온 나와 친구들은 한국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기숙사에선 언제든 카톡이 되니 연락은 걱정하지 말라고 큰 소리를 쳤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소통 불가 상황으로 인해 일상이었던 카톡을 거의 하지 못하고 지냈다.


식당을 가나, 사택에 거주하는 지인의 집을 가나 우리의 관심은 늘 와이파이 찾기였다. 식당에 들어가면 반드시 "Kann ich das Wi-fi benutzen?" (와이파이 사용할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기 일 수였다. 대답은 "그게 뭐야?" 혹은 "아니"가 전부였다. 이미 독일에 거주하고 계신 한국인 가족의 집이나 새롭게 초대받은 분들의 집으로 가면 와이파이가 가능했지만 와이파이 사용하겠다고 매일 그들의 집에 살 수는 없었다. 거의 반 포기하며 살아갈 때쯤 친구들과 나는 도시의 시가지를 구경했고, 전 세계 어딜 가나 있는 맥도널드에 들어가기로 했다.


1시간에 1,500원

반신반의하며 와이파이를 켜보니 왠 걸!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핸드폰을 인증하라는 창이 뜬다! 뭔가 느낌이 좋아서 당시에 쓰던 번호를 입력하니 1시간 제한이 걸린 와이파이가 가능했다. 카톡을 열어보니 그동안 읽지 못한 카톡이 +300을 넘어가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지인들에게 와이파이가 된다고 난리!!!!!!!! 를 쳤다. 테이블에 짐을 내리고 햄버거를 시키려고 메뉴판을 봤더니 유럽의 맥도널드에서 파는 세트메뉴는 한국보다 훨씬 더 비쌌다. 5,000원짜리 런치세트를 갑자기 10,000원으로 결제하려니 부담스러웠다. 1유로가 1,500원이 조금 넘던 시절, 8유로는 일주일 동안 먹을 음식 재료값이었다. 그래서 세트 메뉴를 포기하고 가장 간단하게 결제할 수 있는 1유로짜리 치즈버거를 주문했다. 얇은 패티 1장과 치즈 1장, 그리고 앞뒤로 쌓인 빵을 시켜놓고 햄버거가 식을 때까지 테이블이 올려두었다. 1,500원은 햄버거 값이 아니라 와이파이를 사용하는 값이었다. 1유로를 지불하고 쓰는 와이파이는 보고 싶은 한국의 사람들과 귀국 후 먹고 싶은 한국 음식을 말하며 마음껏 한국을 그리워하는 시간이었다. 1시간은 뚝딱 지나고 인터넷 연결이 불가하다는 안내 창이 뜨면 함께 유학 온 나와 친구들은 '아...' 하는 탄성을 내며 핸드폰에서 손을 내렸다.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한 채로 다 식어버린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와이파이를 거의 쓰지 않는 생활이 익숙해졌을 때에도, 시가지로 내려올 때면 하루에 딱 한 번 1시간 사용이 가능한 와이파이를 쓰려고 1유로짜리 치즈버거를 먹었다. 안부인사는 무슨 일이 있어야 전하는  아니듯, 아무 일이 없이  지내고 있다는 인사를 위해서였고 그리움을 채우기 위한 시간 때문이었다.

이용 시간이 끝나 버렸네!!!!!! 창 밖을 구경하니 햇살이 멋있네!!!!!!!!!!!!!


당시에는 1시간이 야박하다고 느껴졌지만 직항 비행으로 12시간 떨어진 독일과 한국이 한 접점에서 만날 수 있었던 유일하고 귀중한 시간이었다. 독일 식당에서는 물도 유료, 서빙도 유료, 그리고 공항에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와이파이도 이용료를 받는다. 제도는 문화와 인식의 차이로 만들어진다. 한국에서 당연한 것이 독일에서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식당의 물도 무료, 서빙도 무료, 심지어 무선인터넷도 무료라는 것에 감사하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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