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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Aug 15. 2020

기본은 쉽다는 착각, 시간이 걸린다는 핑계

당신의 영어가 제자리인 이유

원서로부터 얻는 통찰

효과적인 학습 방법을 알고 있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지속하지 않는다. 처음보다 떨어진 흥미, 당장 보이지 않는 결과, 방법에 대한 의심이 각 개인마다 매우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애초에 인간의 의지가 나약해서 생긴 진화상의 결과다. 하지만 조금 더 절박한 마음, 혹은 큰 욕심 없이 즐기는 마음을 가지고 지속하다 보면 ‘영어 받아쓰기’라는 습관이 엄청난 자산이라고 느낄 날이 올 것이다.


수많은 저서들이 영어로 출간된다. 많은 고전 문학과 심리서, 철학서, 자기 계발 서적이 독일어가 모국어인 화자들에 의해 쓰였다. 책을 읽다 보면 유독 그 표현의 쓰임이 궁금해지는 지점이 생기는데 그럴 때는 반드시 원서를 찾아본다. 원서에 쓰인 '날 것'의 표현은 번역이 주지 못하는 특유의 의미와 통찰을 준다. 예를 들어, 한국어의 '정'이라는 단어에는 영어의 affection이나 attachment로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더 깊고 진한 느낌이 서려있다. '정'을 '정'으로 이해하면, 같은 메시지를 주는 글을 읽더라도 내가 받을 수 있는 통찰이 풍성해진다. 나는 원어가 주는 통찰을 포기하지 못해서 외국어를 계속 공부한다.   


착각 = 기본은 쉽다

시험 점수가 급박한 사람은 가까운 학원을 가서 시일 내에 점수를 취득하는 게 현명하다. 언어로서의 영어를 조금 더 다양한 상황에서 확장시키고자 한다면 영어가 쓰이는 국가로 가서 배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하지만 점수의 필요가 아니라, 사정상 영어가 쓰이는 국가로 갈 수가 없는 경우에서 영어를 배워야만 한다면 스스로 영어가 쓰이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아기가 모국어를 배우듯 그 상황을 모방해야 한다. 아기가 말을 배울 때쯤, 끊임없이 말을 붙여주는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보통 '엄마'라는 단어가 처음 불러주는 단어가 되는데 한국어의 '엄마' 나 영어의 'mommy'이라는 단어는 입술이 떨어질 때 나는 소리(bilabials, 양순음)이며 이는 인간의 구강 구조상 가장 쉽게 발음할 수 있는 소리이다.


'엄마'라는 부르기 편한 단어를 여러 가지 상황에서 쓰기 위해 아기가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쉽지 않다. 하지만 엄마라는 단어를 언제 불러야 할지 알게 된 이상 그 어떤 경우가 오더라도 적절하게 엄마를 부를 수 있다. 이처럼 영어도 흔들리지 않는 실력을 갖추려면 기본적이지만 쉽지 않은 것을 해야 한다. 임의로 외국어(문자와 소리, 의미가 담긴 정보)를 쓰는 환경(맥락)을 세팅하고 INPUTOUTPUT을 반복해야 한다.


인풋의 양만으로는 언어 학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학습자의 능동적인 태도가 필요하며 능동성이 드러나는 첫 번째는 알고 있는 것을 밖으로 내뱉는 것이다. 아웃풋은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의 간극(Noticing the gap)을 알게 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영어권 국가가 아니라는 환경적 제약이 있더라도, 영어를 언어로 습득하려면 기본적인 것을 지속해야 한다.

핑계 = 시간이 오래 걸린다

10년을 영어를 배웠어도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게 안 되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고민이다. 쉽게 배우고 싶은 마음에 짤막하고 간단한 대화체로 이루어진, 몇 개월 만에 다 끝낼 수 있다는 광고에 혹하는 것도 그 고민을 길게 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언젠간 영어 정복, 쉬우면 좋은 영어 정복, 빨리 끝내고 싶은 영어 정복.. 그러나 그렇게 빨리 배우고 싶어서 포기했던 시간이 결국엔 영어를 잘 사용할 수 있는 시간과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빠른 방법 찾느라, 시간이 더 오래 걸렸는데 이제 그 방법을 찾는 건 그만할 때이다.


외국어 학습 시 투자 대비 남는 장사를 만들려면 단편적이고 매력적인 이야기에 희망을 걸기 보단,  맥락이 기반된 영어를 배워야 한다. 이 이야기는 미국 땅에서 유년기를 보냈거나 유학을 했거나 각자의 방법으로 수준급 영어를 구사한 사람들에겐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각자의 성향과 목적, 학습방법, 환경, 가치관에 따라서 더 괜찮은 방법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듣는 게 귀 아프고, 말하는 게 목 아프고, 시간 걸리는 게 답답하다고 느끼거나 1초 만에 정답을 찍어야 하는 공무원 영어 시험과 같은 목적이 있다면 이 글은 전혀 맞지 않다.


독일어가 영어를 간섭하던 한국어 화자로서, 영어를 영어대로 쓰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비참함을 너무 깊고 오랫동안 느껴져 였을까? 나에게 '받아 쓰기'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방법이었다. 아무리 사막의 태양이 목을 마르게 했어도, 오아시스 같은 이 방법을 알게 된 이상 무서울 게 없었다.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를 지난 외국인이 목표 외국어를 '완전히' 정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애초에 ‘완전히’라는 절대 기준은 없다. 언어는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이 디폴트다. 그러므로 외국어 공부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관련 글>

01. 영어선생이 단어장을 안 보는 이유 : 맥락 기반 학습의 중요성

02. 영어는 망할까? : 영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와 영어라는 언어의 본질

03. 미국 유학 없이 영어를 정복한 비법  : 토종 한국인이 유학 없이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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