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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Aug 28. 2020

이효리, 누구도 하지 않는 것을 하는 용기

나, 그 자체로 현존하기 

이효리에게 ‘누구도 하지 않는 것을 하는 용기’를 배우다     

이효리를 수식하는 단어들은 시간이 지나면 바뀌고 있다. 텐미닛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최고 섹시 아이콘’이 그녀를 설명하는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단어였는데 결혼 후엔 ‘힐링’으로, 최근 싹스리로는 ‘추억’으로 불리고 있다. 나는 이효리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녀가 보여준 변천사를 보며 생각이 깊어진다. 나에게 이효리는 텐미닛이나 유고걸 보단 ‘Get ya!(겟챠)’ 로 익숙하다. 2006년, 이효리는 일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Get ya를 타이틀곡으로 선정하여 컴백했다.      


방송을 모르지만, 인기가요는 방영 시간대와 인지도로 보아 11분은 엄청난 시간인듯하다. 11분에 세 곡 발표, 이효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프로그램 편성이었다. 겟챠는 이효리가 이효리 다울 수 있는, 이효리의 욕망을 실현한 노래처럼 보였다. 여성미를 끊어낸 터프한 울프컷, 몸이 부러질 듯 각기가 많은 안무, 시계태엽 춤, 뱀파이어와 좀비가 생각나는 스타일링과 무대 연출은 기존의 섹시하기만 한 이효리가 아니라 주체적이고 도발적인 이효리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노래는 곧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와 비슷하다는 주장과 함께 표절 논란에 쌓였다. 이효리가 감기에 걸렸다는 것마저 기사로 나오던 시절이다. 이효리의 색깔과 방향은 논란에 휩싸여 그 빛을 오로지 드러내지 못했다.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이효리의 겟챠는 이내 무대에서 사라졌고, 시간이 지나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이 났으나 기자들은 논란이 종식된 재미없는 기사를 내지 않았다. 자신을 쏟아붓고, 자신을 드러내는 시도가 의도치 않게 파장이 되었을 때 그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기존의 대중적 이미지를 고수하는 음악을 시도했다면 그녀는 행복했을까? 이전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시도해서 먹은 '욕' 이 아팠을까, 하고 싶은 것을 못해서 생기는 '병' 이 아팠을까? 어쨌든 이효리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생긴 오만 욕을 삼켜야 했다. 

    


 

14년이 지난 지금도, 이효리의 겟챠 무대는 촌스러움이나 부족함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고 섹시하다. 무대 구성과 안무 구성이 그야말로 미친 수준이다. 과감하고 힘든 동작에도 라이브를 진행하며 댄스 가수의 퍼포먼스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이효리의 숨은 노력은 섹시한 여자, 스타 이효리의 겉모습에 감춰져 보이지 않았다. 노력이 무산되고 자신의 색깔이 인정받지 못하는 수모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앨범을 성공시켰던 것은 ‘나는 이효리다’라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녀의 뚝심이 아니었을까.      

나는 핑클의 효리, 제주도댁 효리, 추억의 효리가 아닌 ‘누구도 하지 않던 것, 누구나 다 말리던 것’을 밀고 나가는 겟챠의 효리를 생각해본다. 겟챠가 수록된 앨범의 제목은 “Dark Angel”이다. 천사에게 ‘dark’라는 수식어는 상당히 선정적이고, 넘지 않아야 할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이효리는 겟챠에서 천사가 과감히 ‘어둠’을 삼키고 드러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겟챠 무대에서 드러난 폭발력은 이효리가 이효리다운 모습을 모이기 위한 용기를 보여준 것이라고 느껴진다. ‘깊이’라는 후속곡을 타이틀로 밀자는 관계자의 조언도 있었다지만, '깊이'가 시작이었다면 겟챠는 드러낼 게 없는 무대였을 거라 생각한다. 이효리 이후의 대한민국은 포스트 이효리가 수도 없이 쏟아졌으나, 오마주는 오마주이고 커버는 커버일 뿐이다.      



이효리는 이효리다

이전에 없던 것이 생기면 사람들은 생소함을 느끼고 그에 따른 거부감을 느낀다. 이효리는 익숙함이 아닌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을 밀고 나가는 용기를 가진 여자다. 텐미닛이라는 기존 이미지를 연장하면 대중의 사랑과 관심은 충분히 따를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 하는 가수로서 자신이 원하는 것,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을 본인이 하는 것, 이효리 다운 것을 하는 것은 트렌드세터 이효리가 보여준 과감한 용기였다. 14년 전, 당시 동아리 멤버들과 수도 없이 겟챠 안무를 커버했지만 우리가 따라한 건 이효리의 안무였을 뿐 이효리가 아니었다. 멋져 보인다고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게 이효리다. 내가 이효리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것은 이때 경험한 포스 때문인 것 같다. 

무대 시작 전 전주를 들으며 살짝 웃는다. 미모 정말.. 너무 예쁨.

새로운 것을 결단하고, 두려움을 다스리고 밀고 나가는 용기가 보다 더 강해졌으면 좋겠다. 기존의 것에 머물지 않고 매일 조금씩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혹여, 예상치 못한 강풍에 노력이 날아가고 모든 게 황폐해지더라도 시도하는 습관은 몸에 남아 있지 않을까. 이효리가 그 자체로 이효리이듯, 나도 그 자체로 나일 수 있는 용기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사진 출처>

아무리 생각해도 짧게 보기 아까운 퍼포먼스. 

https://youtu.be/KIMZHsDuXj4?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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