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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Nov 24. 2020

나는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반한다

귀한 사람을 귀하게 대접하는 태도

 며칠간 바뀐 집 환경으로 인해 제자리에 둔 물건도 낯선 하루가 반복되었다.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심해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눈뜨는 시간이 괴로웠다. 아침 5시 40분. 부랴부랴 일어나니 눈가가 퉁퉁 부어있고 컨디션이 좋지 않다. 나는 준비시간이 느린 편이라 전날 입을 운동복과 가방을 모두 세팅해도 빠르게 움직이지 못한다. 늘 걸어서 센터까지 가는 편인데 오늘은 마음 놓고 버스를 타기로 했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기다리는 시간만 10분이다. 정시에 수업을 하려면 다소 빠듯하다. 지각으로 불편 할바엔 택시가 나을 것 같아서 호출을 한 후 신호등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느리게 도착하신 기사님은 내가 지정한 위치가 아니라 반대편에 정차하셨다. 10보 정도 되는 위치이지만 차를 돌리시지 않는 게 이상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승차했고 조용히 가던 길을 갔다. 기사님의 작고 마르신 몸에서 생각지 못한 목소리가 들린다. 여자 기사님이시다. 조심스러운 운전이 느껴진다. 가파르고 저돌적인 운전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기사님의 운전대를 보자 피곤했던 몸과 기분이 풀리는 기분이다. 짧은 거리이지만 이런 운전이라면 정말 마음이 편하다. 잠시 눈을 감고 있는 사이에 기사님께서 말을 붙이셨다.    

 

“커피 사탕 하나 드릴까요, 손님?”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아침이었다. 달달한 커피 사탕 하나를 건네려는 인사는 잠긴 내 목소리를 모두 해제하여 오후 1시와 같은 밝은 분위기로 만들었다. 나는 마음이 녹는 비밀 병기처럼, 언제나 기다렸던 것처럼, 주체할 수 없이 기사님께 밝게 인사를 드렸다.      


“괜찮아요 기사님! 감사합니다.”     


하늘엔 햇빛이 드리운다. 온기 없는 새벽이 그리 따뜻할 수가 있을까. 기사님께 다시 여쭤보았다.   

   

“늘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나오시나요?”

“아니요. 늘 그런 건 아니고, 보통만 그렇게 합니다.”     


더는 긴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좋았다. 조심스레 운전을 마무리하는 기사님이 마지막으로 네게 인사를 건넨다.      


“손님, 늘 건강하시고 복 받으세요.”     


초면이자 잠시 만난 인연이다. 생면부지의 손님에게 건강과 복을 기원한다. 이 분이 살아가는 태도이다. 상냥한 목소리에 온건함이 스며있다. 내가 가장 반해버리고, 존경하는 우연의 철학자들이다. 엄살이 심한 내가 가는 방향을 잊을 때, 번뜩 내 어깨를 잡아채고 갈 길을 말해주는 현자들이다. 사는 길이 피로하고 어렵지만 매 순간 진정으로 사랑하고 살라는 것을 알려주는 구도자를 만난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늘 인생의 선생들이 서있다.




새벽에 느낀 피로가 부끄러웠다. 반대편에 정차한 기사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순간이 부끄러웠다. 늦을까 봐 조급했던 내 마음이 부끄러웠다. 아직 나는 완전히 친절한 사람이 되려면 멀었다. 타고나길 친절한 사람 앞에서 이렇게나 작은 사람이다. 내리면서 기사님의 얼굴을 마주치며 대답해드렸다.


“기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택시를 내리며 기사님의 평가를 좋게 쓰기 위해 핸드폰을 켰다. 내리는 찰나에 보니 이미 택시 등에는 ‘친절 택시’라는 전등이 있었다. 별점을 최고점으로 두고 추운 손을 잊은 채로 기사님의 친절을 전하기 위해 평가를 썼다. 다음에 또 뵈었으면 한다.     


진짜 친절한 사람을 알아보는 눈     

누구든 칠 수 있고 누구나 속을 수 있는 것이 설계된 사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사람의 속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그저 살면서 배운 낌새와 경험으로 나에게 불편한 것들을 가려낼 눈이 생길 뿐이다. 지나고 나서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다. 그들로부터 도피를 일삼기도, 함께 하자고 찾아가기도 하며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들은 나를 강자로 부르기도 했고 약자로 부르기도 했지만 나는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약할 뿐이다.

      

피곤한 평가가 오고 가는 삶에서 마음을 따뜻해지는 순간은 ‘진짜 친절한 사람’ 덕분이었다. 가식적인 친절함은 어딘가 분명히 불편한 점이 있다. 처음엔 그 달달한 새치 혀에 이끌리기도 했으나 보수적이고 안전을 우선시하는 본능은 이내 불편함을 끊어낸다. 피로감이 느껴지는 관계는 소통마저 끊고 싶은 허무감이 있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고 싶을 때, 사람에 대한 사랑을 북돋아준 건 다름 아닌 친절이었다.


우리는 공기로 숨을 쉬면서도 공기의 존재를 잊고 산다. 나에게 친절은 그러한 존재이다. 주변 사람들이 가끔 나의 친절을 칭찬하지만 사실은 공기와 같은 태도이다. 그렇게 살아야 나도 친절을 알아본다. 친절을 알아보아야 마음이 동한다. 친절을 행동해야 또 다른 친절을 베풀고 또 친절을 받는다. 사소한 친절에 감사를 느끼는 마음은 늘 나를 반성하게 만들며 살아갈 날을 더 따뜻하게 살도록 도와준다. 친절은 좋은 소리와 평가를 듣고자 하는 행동이 아니다. 호구 잡히라고 하는 행동도 아니다. 제대로 된, 진정한 강자의 친절은 대접받는다. 그러니 불필요한 것들에 마음 쓰는 시간을 줄여주기까지 한다. 내가 만나고 있고 내가 만나서 사랑하게 될 인연에 충실히 친절할 것이다. 진짜 친절한 사람을 오롯이 아낄 것이다. 친절한 사람을 알아보는 온도 높은 시선을 부단히 안아가며 살 것이다.  의도적이고, 본인이 우선시 되고, 오지랖을 가장한 겉치레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타자를 향한, 진심 어린 친절함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진정으로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은 귀하다. 그 귀한 마음을 지극히 대접할 것이다. 그들은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사랑하더라도, 나를 오해하지 않고 그 자체로 인정하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를 온화하고 안전하게 안아준다. 친절한 사람의 목소리엔 여유가 서려있고, 나는 그 여유를 동경한다. 나는 그들이 나를 안아 주는 것보다 더 많이 그들을 안고 싶다. 그리고 그들의 앞날에 행복이 더 해지길 간곡히 바란다. 진짜 친절한 사람을 알아보는 시선은 잔챙이 같은 인연에 아쉬워하지 않고 깊고 온정적인 인연을 아낄 힘을 선물한다. 나는 끝도 없이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반하 오랫동안 변치 않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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