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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Nov 28. 2020

모호한 것을 견뎌야 성장할 수 있다

모호함에 관한 관용

‘모호함에 관한 관용’ (Ambiguity Tolerance)이라는 말이 있다. 모르는 것을 답답해하지 않고 견뎌내는 힘을 말한다. 영어의 문장 구조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으로 영어 통사론(English Syntax)이라는 과목이 있다. 이 과목의 연습문제를 풀기 위해 범위에 해당하는 개념을 읽었지만 도무지 개념과 문제가 접목되지 않았다. 여러 번 공부해도 매번 같은 문제를 틀렸다. 그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도서관으로 가서 완역본 몇 가지를 찾아서 가장 쉬운 번역책을 골랐다. 빈 연습장을 두고 이미 아는 것들도 저자의 맥락에 따라서 개념을 맵핑하며 공부했다. 하다 보면 또 모르는 것이 생기고, 이미 했던 것도 다 잊어버리고 그렇게 또 모르는 것이 생겼다. 몇 번을 돌려봐도 모호한 것들이 많았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줬다. 몇 개월 후 모의고사 시즌이 되어 매일 새로운 문제를 풀었다. 그때의 나는 전혀 손대지 못하는 문제는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언어학이 아니었으면 묵직한 생각을 묵직하게 표현할 방법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아-다르고 어-다른 언어를 아-다르고 어-다르게 표현하는 풍미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언어학의 도움이 컸다. 말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 낼 수 있는 명함이기도 하다. 지금에 와서 보니 지루하고 재미없고 고단했던 그 과정은 돌아온 길이 아니라 지름길이었다.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마스터키처럼 공식과 힌트를 찾고 싶어 한다. 비단 시험 문제만이 아니라 인생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열어 보고 싶은 새로운 문을 찾았으나 문이 잠겨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문 열기를 포기하는 것도 선택이지만 열쇠를 만들 재료를 구하러 가는 것도 선택이다. 마스터키가 없다면 그 문에 맞는 열쇠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막상 문을 열었을 때, 내가 원하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건 지금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내가 만든 열쇠가 또 다른 미지의 문을 열 수 있는 마스터키가 될지 어찌 알겠는가. 또한 내 손끝에는 열쇠를 만든 기술이 남아있는데 무엇이 허망하겠는가. 답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을 일삼고, 각고의 시간을 담금질해야 할 뿐이다.   


초보자에게는 모호한 것이 독이다. 시작은 쉽고 명쾌할 수록 좋다. 그러나 장인이 되려면 어려운 흐름과 모호한 영역을 견디는 뚝심이 있어야 한다. 모호한 것을 견뎌야 실력이 올라간다. 불확실성에서 확실한 것을 찾아야 성장할 수 있다. 혼란 속에서 질서를 구해야 성취할 수 있다. 장인의 힘은 쉬운 마스터키를 소유하는 것이 아닌 모호함에 관한 관용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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