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기 Sep 25. 2024

너 진지충이야?

안맞는 농담을 하는 사람을 만날 때

"야, 너 오랜만에 봤는데 팔에 살이 좀 쪘다?"

"아니, 그대론데."

"기분 나쁘냐? 근데 너가 진짜 뚱뚱하면 이런 말도 안하지~"


( ... )


"근데 다리도 튼실해진거 같은데"

"하지마라."

"아, 또 저런다 또. 이거 농담이잖아. 그냥 좀 넘어가. 농담을 왜이러게 예민하게 받아들여? 진지충이야?"




A는 나의 팔과 다리에 살이 찐거 같다고 말했다. 우리 둘은 가까운 사이였고 A는 분명 악의 없는 농담을 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 지점이다. 일부로 상처를 주려고 한게 아니라, 장난 삼아 '농담' 을 했을 뿐인데 듣는 나는 기분이 상했다. 나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형을 가졌다. A가 보기에도 내가 정말 살이 많이 쪄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컴플렉스가 심한 상태는 아니라고 봤을 것이다. 그는 가벼운 스몰토크로 '살쪘다'는 말을 했을 수도 있다. A가 하는 농담이 편하지 않아서 내 낯빛은 어두어졌다. A는 이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농담인데 왜이렇게 진지해지냐며, 이런 말도 그냥 넘기지 못하냐고 내 모습을 예민하다 여겼다. 혹시 과거에 뚱뚱해서 생긴 상처가 있는지, 먹는 걸 제한해야 할 정도로 특정한 상처나 기억이있는지까지 물었다. 


살쪘다는 농담이 정말 농담일까?


이 상황은 내가 예민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상대가 기분 나쁜 말을 한 상황이다. 상대가 나의 기분을 상하게 했고, 나는 더이상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날을 세워 그의 말을 거절 하는 것인데 상대는 되려 농담을 여유있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탓했다. 혼자만 재밌어하는 농담을 나는 거절했고 그는 나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았다.


예민한 기질은 방패나 면죄부 같은 속성이 아니다. 예민한 사람 뿐만 아니라 예민한 사람의 주변인들도 이를 조심해야 한다. 내가 예민한 기질이 있다고 하여 미성숙한 행동을 보였을 때 예민해서 그런거라고 말해서도 안되고, 타인이 나의 예민함을 약점 삼아 공격하는 것을 허용해서도 안된다. 


혹여나 누군가 근거도 없이 나의 예민함을 공격한다면 그를 가까이 해선 안된다. 비판을 위한 피드백과 비난을 위한 비난은 전혀 다르다. 건설적인 조언과 마음을 상하게 하는 공격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당신은 바보가 아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시간이 있더라도 당신의 예민함은 잘못된게 없다. 


'내가 잘못한 건가?'

'내가 이상해서 이런 말을 듣는건가?' 

'나만 참고 넘어가면 되는데, 내가 예민해서 상황을 불편하게 만들었나?'


이런 생각은 끝도 없이 당신을 괴롭힐 것이다. 예민한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독은 자기의심이다. 자기 의심은 여러 방면에서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불안하게 만든다. 불안의 싹은 일찍 잘라내지 않으면 자신을 끝이 보이지 않는 심해에 빠지게 만든다. 혹여나 당신이 실수를 저질러서 누군가에게 사과할 일이 생겼다면 그 일은 실수 그 자체일 뿐, 당신의 예민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정중한 사과를 구하고 다음에 실수하지 않으면 되는 문제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예민한 사람은 가벼운 실수마저도 자기 존재의 문제로 연결 시킨다. 


당신의 예민함을 근거 없이 공격 당할 때, 잠시 가만히 생각해보자. 정말 이 상황이 나의 예민함이 과도해서 생긴일인지를. 대다수는 예민함과 상관 없는 일일 것이며, 예민함과 결부시킬 필요가 없는 독립된 사건일 것이다. 


그리고 공격하는 사람에게 분명히 말해야한다. 


"그건 내가 예민해서가 아니라, 너가 농담을 거칠고 공격적으로 하기 때문에 하지말라고 하는거야. 농담은 서로가 재밌어야 하는데, 네 농담은 너한테만 재밌고 나는 듣기 불편해."


타인의 말 실수나 선을 넘는 행동에서 나를 지키고 싶다면 차라리 진지충이 되자. 기분 나쁜 농담을 허허실실 받아 들일 만큼 예민한 사람의 시간과 에너지는 여유롭지 않다. 왜 우리가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서 소중한 삶을 낭비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예민함 #에세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