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무엇을 더 하면 좋을까?"
매년 11월 초면 나는 남들보다 빠르게 내년 다이어리를 구매했다. 아직 올해가 지나지 않았지만 내년에 할 일을 미리 정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남은 한 달을 더욱 알차게 보내고 싶은 기대가 설레어서이다. 신년 초인 1~3월, 처음은 빼곡히 적힌 계획과 일정들 그리고 여름 쯤엔 대충 적은 기록들을 보며 아쉬웠던 일과 나름 해낸 일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올해 한 일들 중에서 내년에 더 발전시킬 일이 있다면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한다.
운동에 집중해서 몸을 건강하게 만들까, 글을 꾸준히 써서 이젠 정말 출간을 해볼까, 개인 사업으로 돈을 더 많이 벌어볼까, 공부에 물꼬를 터서 대학원도 가볼까. 떠도는 생각을 펜끝으로 가져와 하고 싶은 일을 써내려간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무엇을 해야겠다고 결정하기 까진 고민을 오랫동안 깊게 하지만 한 번 시작한 일은 열심히 했고 잘 하고 싶은 욕심도 컸다. 이런 모습은 내 삶의 태도가 되었고 성인이 된 나를 보면 이래저래 잘하는게 많은 사람이라는 결과가 남았다.
받는 자극을 소화하는데 오래 걸리지만 한 번 받아 들인 자극은 쉽게 몸과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 손에 걸린 일이 있다면 한참을 들여다보고 나의 방식대로 해결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일을 이렇게 처리하는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세상의 자극을 나노 단위로 분석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재조합해야 직성이 풀리고, 사물과 사건을 받아들이고 해결하는 방식이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자주 듣는건 예민한 사람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예민한 아이의 경우 '천천히' 크는게 중요한데, 무엇이든 빨리 잘 해내야 하는 환경에선 예민함의 장점이 드러나기 매우 어려워진다. 하지만 대다수의 예민한 사람은 예민하지 않은 사람과 비교를 당하며 자란다. 키우기 쉽지 않은 아이 라는 낙인이 찍히며, 이유를 알 수 없으나 나의 존재가 무엇이 부족한 상태라고 생각하며 살기 쉽다. 그래서 완벽주의나 강박과 같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다만 자신을 긍정하는 모습이 있다면 부족한 상태를 채우고 노력해야 할 지점으로 승화하여 발전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으로 살 수 있다. 다행히 나는 나에 대한 애착심이 있어서 그게 뭐든 잘 하는 내 모습을 이상향으로 삼아 살아왔던 것 같다.
예민하지만 무난히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들에겐 예민함이 들통나지 않게 배려하는 사람으로. 오히려 참고 살아서 병이 나는 사람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뻔히 다 보여도 말하지 않고 무심히 넘어가는 사람으로. 누군가가 고민을 얘기할 때 그가 볼 수 없었던 지점까지 면밀히 다뤄서 이야기 해주는 사람으로. 다소 날카로울 수 있는 예민함의 면모를 나의 공부와 커리어에만 유용하게 쓰이도록, 예민함을 가리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다. 예민해서 사랑받지 못할 것 같은 지점을 무던히 숨기며 살아왔다.
그러자 어느 날, 숨막히듯 공허했다. 충분히 찬란하게 살아온 삶인데 왜 나는 항상 건조했을까. 잘 웃고, 잘 울고, 잘 섞이며 살아왔고 충분히 사랑 받는 삶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이런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너무 알고 싶어졌다. 무엇을 더 하면 좋을지와 같은 단순한 목표가 아니라, 그냥 나 자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고상한 자아를 위해 몸을 가꾸고, 교양을 쌓고, 인생의 북극성을 찾는 등의 이야기가 지겨웠다. 그런 것들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안해도 그만인 외적인 목표들이다. 부러지기 쉬운 나무가지처럼 흩날리는 내가 아니라 언제나 내 안에 있는 나는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지 알아야했다.
어두운 골목에서 겨우 하나의 가로등만 켜진 불빛아래에 서 있는 기분은 한참을 오래 내 곁에 머물렀다. 어디로 가야할지, 어느 방향으로 한 걸음을 내딛어야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분명히 나는 선명한 목표를 세우고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며 살던 사람이었는데 겨우 공허하다는 하나의 감정 때문에 시동 걸린 엔진을 꺼야하다니. 하지만 지금 이 생각의 뿌리를 찾아 나를 보지 못한다면, 나는 1년 뒤고, 5년 뒤고, 10년 뒤고 지금을 후회 할 것 같았다. 생업을 포기 할 순 없어서 업무에 치여 오늘의 나를 돌볼 시간이 매우 적어도, 혼자 있을 땐 내 안에서 달리던 경주마를 멈춰세웠다. 그동안 해온 정성어린 실패들 속에,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진 내 모습 속에, 언제든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내가 있을거라 생각했다.
한 날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불완전한 상태의 나를 아는게 완전한 내 모습이라는 것과 이런 모습을 온화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날 나는 그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원래의 내 모습에 더 가까이 다가간 사람이 되었다. 결이 같은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은 내가 아직 그런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며, 안전지대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야함을 귀찮은 운의 영역으로 두지 않기로 했다. 혹여나 상처가 생기더라도 회복력은 그전보다 좋아졌을테니까 미리 무서워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도.
대략 5년이 걸렸던 것 같다. 그간 직업이 바뀌고, 만나는 사람도 바뀌고, 사는 환경도 바뀌었다.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길게 보면 또 그렇지도 않을거 같다. 원망, 낭비, 슬픔, 불안, 불평, 미움과 같은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나서야 나는 내가 보였다. 항상 부족한 상태를 채우고, 인정 받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강박과 혼자 싸워 살아왔지만 이런 애착 속의 뿌리 감정은 공허였다. 예민해서 많은 것들이 보이고, 예민해서 그걸 채우지 않으면 불안하거나 공허한 이 굴레가 있다는 걸 볼 수 있었다.
내가 삶에 애착을 가지는 모습은 언제나 긍정하지만, 무엇을 더해내어야 사랑 받는게 아니었음을 알게되었다. 내 안에 온전한 나를 알아보며 그 어떤 시련에도 변하지 않는 내가 존재함을 알아채니 두려움이 줄었다. 예민해서 사랑받지 못할까봐 무서웠던 나는, 이제 없다.
#예민함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