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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Sep 26. 2024

더럽고 무서워서 피해야 하는 한 가지

부정적인 사람을 만날 때

"이번에 탑건2 개봉했는데 보러갈래?"

"근데 그거 1보다는 재미없다던데."


"ㅇㅇ피자 가볼래? 언제 먹어도 맛있잖아. ㅁㅁ점도 가까이 있네!"

"근데 ㅁㅁ점은 예전에 먹어보니 별로던데."


"내 친구랑 이번에 같이 크로스핏 하기로 했어! 운동 잘해서 서로 배울거 많을 거 같아"

"근데 친구 너무 믿지마. 나도 그런 친구 많았는데 지금은 다 정리했어. 그리고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도 있잖아. 그게 누구든 조심해."




그저 새로 개봉한 영화가 보고 싶을 뿐이었다.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으로 들떠있던 나에게 이전 시리즈가 더 낫다고 말하는 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점이 낮고 그 전작품에 비해 볼만한 요소가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더라도 영화 평론가가 아닌이상 그냥 그 자체로 영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영화 뿐만 아니라 음식, 취미, 여행 등 다채로운 영역의 일상을 말할 때도 그는 늘 아쉬운 말을 했다. 대화를 이어가려고 해도 그 사람의 답변을 듣고나면 아무런 대꾸를 하기가 싫어졌다. 무슨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분명히 나쁜 의도로 하는 말은 아닌데, 나는 자연스러운 대답을 이어나가기 어려웠다.  


그가 하는 말에는 틈틈히 부정적인 단어와 늬앙스가 섞여있었다. '재미없다, 맛이 없다, 믿지마라,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죽일 놈이다, 싫다, 개념이 없다, 돈 아깝다, 하지마라.' 


처음엔 다른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살아온 방식이 다르고, 사고하는 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는거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대화 후엔 늘 찌꺼기 같은 찝찝함 느껴졌고 가끔 불편감을 드러냈다. 좋았던 것들을 더 많이 얘기하는게 어떻냐고. 싫어하는 것에 너무 매몰 되어 스스로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에 에너지를 쏟는 모습이 보이니 내가 무슨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상대는 이런 말을 하는 나에게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이 하는 말을 바꾸려 하지말고 그냥 들으면 되는거 아니냐고.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상대는 자신이 살아온 세계에서 부정적인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영화 평점을 신경써서 정말 재미 없다면 보지말자는 것이었을테고, 어떤 음식의 특정 지점이 정말 맛없는 요리를 했을 수도 있는 것이고, 친구를 사귀다보니 배신이 허다하여 상처가 깊어 사람을 조심히 만나라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화의 결을 들여다보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한 처신이나 타인의 이목을 너무 신경쓰는 듯한 태도가 베어져 있었다. 불편을 자극하는 의견을 지배적으로 내세웠던 것은 확실하다. 그중에서 가장 나를 무기력하게 했던 말은  "이게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였다.


그 상대와 말을 주고 받을 수록, 친해질수록, 날이 흘러갈 수록 나는 불안해져갔다. 대화를 하면 또 어떤 부정적인 경험과 의견을 말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이 관계는 이어갈 수록 치명적일 것이 분명했다. 입장 차이가 다른 정도로 이해하고 수용하기엔 너무나 맞지 않는 퍼즐이라 판단했고, 깔끔히 단절했다.




예민한 사람은 주변 환경과 사람에 영향을 매우 많이 받는 편이다. 가족, 친한 친구, 직장 동료 등 가까운 사람들이 가진 분위기에 동화된다. 성향, 그리고 말투와 늬앙스까지 깊은 영향을 받는다. 타인이 가진 가진 에너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로서는 부정적인 사람과 오래하기 힘들었다. 


부정적인 사람은 그 사람의 말씨와 쓰는 단어에서 티가 쉽게 난다. 대화의 방향이 땅으로 꺼지듯 무거워지고, 절망만을 얘기하고, 싫어하는 것들로 예시가 가득한 사람이 생각난다면, 그 관계엔 거리가 필요하다. 부정적인 사람은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며, 그들은 예민한 사람을 질식시킨다.


삶에서 긍정적인 것은 그저 오지 않는다. 하루치의 행복과 안정을 찾고, 좋은 것들을 보려고 애써야 그만큼의 즐거움이 따른다고 믿는다. 좋은 일만 생기길 바라는 속 없는 소리가 아니다. 나에게 끼치는 주변의 영향을 관리하여 생동감 있는 기쁨을 채워가자는 다짐이다. 슬픔과 불안, 부정을 치워버려야 그 자리에 기쁨이 채워진다. 버려야할 것이 무엇인지 결단이 필요하다. 나에겐 치워야 할 최우선은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거리를 두던가, 무시하던가, 잘라내던가. 


#예민함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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