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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May 26. 2024

이상하고 아름다운 예민한 사람들에게

핸드폰 밝기를 낮춰 어두운 화면으로 만든다. 이어폰을 챙겨 혹시 모를 소음을 차단하려고 한다. 예기치 못한 소음으로 불안해 질 땐 조용히 귀에 손을 가져다 댄다. 사람이 너무 질서 없이 많은 시장통 같은 곳에 가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단체 모임에 다녀오고나면 몇 일동안 아무런 약속을 잡지 않는다. 친한 사람이 아닌 사람과 갑작스러운 만남을 제안 받을 때 거절한다. 일정은 미리 다 계산하고 정리한다. 스케쥴링과 일기를 반드시 쓴다. 한 번집중하는 일이 생기면 속도감 있게 해낸다. 


무심코 돌아본 창밖의 광격이 너무나 아름다워 카메라를 켜고 내 시선을 담는다. 그리곤 오랫동안 지켜본다. 불어오는 바람과 미세하게 퍼지는 햇빛이 푸른 나무를 감싸는걸 한참이나 보며 섬세하게 곱씹는다. 만나는 사람의 표정, 말투, 눈빛, 움직임을 보다가 궁금한게 생겨 물어본다. 어떻게 그걸 알았냐는 반응이 돌아온다. 마음의 통증, 몸의 불편함, 가려워서 긁고 싶었던 감정을 해독하고 밝게 웃으며 나가는 뒷모습을 응원한다. 오타가 생기고, 대칭이 맞지 않고, 누락된 지점을 찾아 보완하며 일한다. 많은 글을 읽고 쓰며 내가 아는 것들을 쉽게 설명한다. 여러가지를 잘하는 팔방미인이 되어 나를 찾는 사람이 많아진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가끔 이번 생과 맞지 않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매사 그저 그렇게, 좋은게 좋다며 넘어갈 수 없는게 나의 문제라 여겼다. 다들 행복을 찾고 사랑을 찾고 먹고 마시고 자는 일에 진심이고 의심하지 않는데 왜 나는 그 쉬운게 어려웠을까. 겉으로 보기엔 전혀 문제 없어 보이는 일이나 외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나는 매번 불안하고 무언갈 해내야 했다. 잘 먹고 잘 자고 내려놓으면 괜찮아 질 거라는 조언에 따라 인스타에 뜨는 맛집과 카페를 찾아다니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무작정 떠들어대며 놀기도 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매사 내 탓을 하지말고 내려놓으라는 말을 들을 땐 쇼핑을 하기도 하고 운동에 미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눈을 잠시 파는 일일 뿐이었다. 주변을 긍정으로 채우려고 해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았다.


딱히 부족하지 않은데, 왜 비슷한 문제가 몇 년 주기로 반복되는지 생각했다. 일도 하지 않은채로 매일 답을 내지 못하는 나와 독대하며 어느 날은 포기하고, 어느 날은 짜증을 부렸다. 하지만 다음 날 다시 이유를 찾았다. 내가 여기서 원인을 찾아 알지 못하면 이 문제는 몇 년뒤에 더 큰 책임으로 나를 질책할 것 같았다. 


원인은 나의 예민한 기질을 바라보지 않았고, 인정하지 않았고, 부정한 것이라 여겼고, 강점을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타인은 나를 사랑하는데 정작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었다. 기능적으로 우수한 사람이어야 사랑받는다는 생각으로 미친 경주마처럼 뛰어 달리기만했다. 내 감정과 느낌을 억누르고 오로지 결과를 내고 도움되는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나를 채웠다. 그러니 내 예민은 내 삶에 도움 되지 않는 불편과 같았다. 감정적이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능력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별 일도 아닌 일에 까탈스럽게 구는 사람일까봐 모든걸 숨겼다. 이걸 알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다른 세계로 뛰어온 것 같았다. 무엇을 해내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오인을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번에 온전한 나를 없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나스스로에게 그저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는 시간을 허락한 것이다. 과거를 자서전처럼 써내려가며, 서사의 궤적을 꿰어내자 가능했다. 


싫어하는 자극, 관계, 업무를 버리거나 최소화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밀고 나갈, 억지로 시간을 써야하는게 아닌 마음이 괜찮다고 원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려고 몰두했다. 어떤 일을 해도 괜찮다는 증거를 모아야 하는 일이 아니라, 어떤 일을 지금 당장 할 때 해야할 이유가 없어도 당연히 중요하게 여기는 일에 집중하려 했다. 본질적으로 삶에서 추구하는 방향만 생각하며 가까운 미래를 조금씩 결정해갔다. 지금 돌아보니 이 작업들은 예민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직관력을 높이는 일이었고, 자기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좋은 방법 이었다. 


몸과 화해하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 생애를 이해하고 사랑하자 삶을 대하는 시야가 달라졌다. 이전보다 불필요한 눈치를 보지 않고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말하거나 낭비하지 않게 피한다. 그리고 그 결정에 후회하지 않는다. 영혼이 다칠 정도로 일만 하여, 오로지 바쁘기만 한 멍청한 바쁨을 허용하지 않는다. 멍청한 바쁨은 나 뿐만 아니라 나를 조건없이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무지한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끼니만 때우기 위해 작은 음식을 우겨넣으며 식사를 하지 못하던 생활을 과감히 버렸다. 먹고, 마시는 일을 조금 더 편안하게 음미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복잡해지고 과몰입이 될까봐 듣지 않았던 음악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오히려 전보다 덜어내고 줄였는데 삶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풍성해졌다. 


유별나다, 유난스럽다, 나단다, 까탈스럽다.. 그러니 너는 예민하다. 이 프레임은 예민한 사람이 지은게 아니라 예민함을 오해하고 부정적이라 취급하는 사람이 지은 프레임이다. 여러사람이 함께 살기에 도움보다는 불편함이 많을 것이고, 일을 쉽게 만들지 못하는 특성이라고 어느 누군가가 명명했을 뿐이다. 


섬세하다, 강인하다, 관대하다, 책임감이 있다, 감각적이다, 공감을 잘한다.. 그러니 너는 예민하다. 나의 예민은 나와 사회에 많은 도움을 주었음에도 인정을 받지 못했다. 미세한 차이를 완성하는 것은 예민한 사람이 잘해낸다. 표준화라는 틀에서 벗어났을 때의 광활한 자유를 나 먼저 인정해야 한다. 


나의 예민함은 이상하고, 아름답다.



#예민함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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