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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Oct 09. 2024

예민함을 숨길 필요가 있을까?

명상 교육을 받던 초가을 오후, 걷기 명상이 시작되었다. 푸른 나무가 길게 늘어진 작은 산책로를 걸어가며 흩날리는 바람을 느꼈다. 제법 찬 기운이 서려진 바람을 따라 걷고 걸으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고요해진 마음이 내 곁에 머물렀을 때 선생님은 새로운 명상을 안내해주셨다.


짝꿍선생님과 2인 1조가 되어 한 사람이 길을 안내하고 다른한 사람은 눈을 감아 안내자의 어깨에 손을 올려 길을 걸어가는 블라인드 워킹이었다. 어렵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수행자선생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한껏 차분해진 기분으로 눈을 감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어 걷기 시작했다. 눈을 감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시야가 느껴졌다. 점점 두려움이 올라왔다.


땅바닥에 돌이 있지 않을까? 그 돌에 걸려 헛발질을 하지 않을까?

몸 앞에 우뚝선 나무가 있지 않을까? 그 나무에 부딪히기 싫다.


눈을 감은채로 걸음을 내딛을 수록 몸의 감각이 떨어지고 발이 닿는 느낌도 불안정했다. 산책로 한 가운데엔 나무가 듬성 듬성 심겨져 있었는데 그 나무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혹시나 걸어오는 사람과 부딪힐거 같기도 했다. 몸 앞에 무엇이 있을거 같다는 불안에 실눈을 떠서 앞을 살짝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이나 나무 같은 방해물에 부딪힐거 같아서 눈을 떴지만 내 앞엔 아무것도 없었다. 내딛기 어려웠던 발 아래엔 작은 돌덩이 하나도 채이지 않았다. 나의 파트너 선생님은 안전하게 나의 걸음을 안내하며 보살피고 계셨지만 그 안전을 알아보지 못한건 나의 불안이었다. 0.3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야에서 많은 걸 알게되었다. 두려워서 걱정했던 실체는 사실상없는거였다.


내가 예민함을 다뤄온 방법이 이와 같지 않을까. 다룰 줄 모르니 서투르고, 서툴러서 생기는 상처를 두려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실체를 바라볼 용기가 없고 방어적인 태도로 두려워하는 모습이 빨랫줄의 옷 마냥 두둥실 떠올랐다. 예민함을 숨기고 싶었던 과거의 장면이 하나씩 눈 앞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저주의 기질이라 손가락질 했던 자책을 후회했다.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예민함의 사랑스러운 면을 알아보려고 노력했던 현재의 내가 느껴졌다. 


눈을 감고 걸을 때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선 각자가 겪은 상처가 뒤섞여 실체 없는 두려움이 올라오기 쉽다. 나의 경우 예민한 기질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서 생긴 자기 불신이 가장 큰 상처이자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나의 예민함은 나를 설명하는 본질이자 살아오게 한 원동력이었으며 앞으로도 함께 할 무기임을 깨닫자 그간 쌓아둔 상처가 옅어졌다. 특정 기질을 문제점이라고 여기는 태도가 문제일 뿐, 예민함 자체는 별 문제가 아니다. 여전히 예민한 기질을 건설적으로 다루지 못해 생긴 생채기가 기우를 몰고 올 때가 있다. 블랙홀을 가진 커다란 괴물이 다가 오는 것처럼 서늘하고 무섭다. 그럴 때 마다 블라인드 워킹에서 알게된 깨달음을 떠올린다. 눈을 뜨고 제대로 보면 나를 헤치는 괴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민한 기질을 숨길 필요가 있을까?


글은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예민함에 대해서 부정적인 한탄을 내뱉거나 미화하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예민하다는 단어가 가진 부정적인 어감을 터부시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예민한 기질은 인간이 가진 수많은 기질적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다. 동그라미는 원래 동그란 모양을 가지고 있고, 네모는 원래 네모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 동그라미가 왜 동그란지 의심하고 욕하는 사람은 없다. 예민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예민한 사람마저도 예민함이 무엇인지 잘 모르며 자신의 기질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는게 안타까웠다. 예민함으로 생긴 온갖 부정적인 인식과 내면적인 상처들로 예민함을 두려워하게 되고, 무슨일이 생기기도 전에 불안을 느끼는 경우도 흔하다. 예민함의 다양한 면모를 알고나면 더이상 예민함으로 인해 미리 긴장하여 겁먹는 일이 줄어들고 오히려 건설적으로 다룰 여유가 생긴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나는 나와 같은 예민한 사람이 자신의 상황을 천천히 이해하고 불필요한 자극과 상황을 제거하고 서툴게 다루었던 기질을 다르게 대하며 재능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발견의 여정을 안내하고자 했다.


내적으로 에너지를 모아 정체성을 분명히해나가면 굳이 자기자신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느낌과 생각 자체가 예민한 사람의 강점이다. 유별나다는 소리를 들은 걸 부끄러워 할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만난 예민한 사람들은 독불장군처럼 주변관계에 패악을 부린게 아님에도 마치 본인을 어긋한 행동을 한 사람처럼 대했다. 오히려 주변 상황을 빠르게 눈치채고 숨은 긴장을 느끼며 타인이 불편하지 않게 배려하면서도, 자신이 무언가 부족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런 생각은 외부세계를 너무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것일 뿐 예민한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민한 사람은 자기 중심을 버리고 타인이 정한 기준에 과한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불행해진다. 바깥세상을 무시하지 않고 사는 방법을 배우고 타인과 적절히 커뮤니케이션 하는 연습과 자기다움을 잃지 말고 욕구와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 싫지만 바꿀 수 없는 것들을 구별하고 예민함의 강점을 펼칠 수 있는 성숙한 태도를 지켜나가야 한다.


예민함의 얼굴은 찌푸린 인상으로 만사의 불평을 가진 표정이 아니라 기민하게 세상을 탐구하고 반응하는 자세이다. 성장 포인트가 다분히 많은 기질을 너무 미워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을 전한다.


예민함을 사랑하는 예민한 사람이 될 때 고된 발걸음을 멈추고 경쾌한 걸음을 걸을 수 있는 순간이 펼쳐질 것이다. 그 순간이 당신에게도 올 수 있기를 바란다.



#예민함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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