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기 Sep 30. 2024

'마음챙김' 명상을 만나다

예민한 사람이 해야할 마음의 운동, 명상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예민한 성격에 대한 고민이 깊어 질 때,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을 찾아보고 책을 읽으면 명상을 추천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안테나가 여러개인 예민한 사람에게 명상이 어떤식으로 도움이 된다는 건지 모른채로 명상을 시작하려고 하면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심신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나빠 보이진 않는데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몰라서 제대로 해 본적이 없다. 


명상에 관심은 있었지만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배움이었다. 마치 잿빛의 승려복을 입고 속세를 벗어나 무위무상의 경지로 가야할 듯한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깨달음이나 득도의 경지로 올라가 부처가 되고 싶은건 아니고 지금보다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명상을 시작했다. 마음의 상처를 잘 받지 않고, 슬픈 일이 생겨도 빨리 이겨내고, 보다 씩씩한 멘탈을 장착하고 싶다는 바램으로 시작했다.


일상속의 명상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가량 선생님과 명상레슨을 함께 했다. 명상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기법과 방법을 안내해주셨다. 명상으로 일상을 호흡하는 시간이 길어지던 어느날, 명상선생님은 나에게 지도자 과정을 함께 하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주셨다. 이 길을 걸어가기에 충분해 보인다며 오히려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거라는 안내를 해주셨다. 태양빛이 아스팔트를 녹일 것 같은 뜨거운 여름 날, 명상지도자로서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예민한 사람과 명상


1. 그저 들여다 보는 힘을 경험하는 것


시퍼런 멍이 마음을 뒤덮는 일이 생겼다. 처음엔 분노와 실망이 올라왔다. 파괴적인 화가 내 몸과 하나가 되어 모든걸 다 부셔버리고 싶은 괴물이 된 모양새로 보였다. 하루종일 그 분노와 함께 숨쉬는 나를 알아챘다. 

왜 내가 이런 감정으로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지 억울하기 시작했다. 이 분노를 멈춰야 겠다는 생각이 들고, 가만히 분노를 들여다 보았다. 


"나는 이 상대에게 왜 분노를 느끼는거지?"


깊고 좁고 어두운 마음을 시선 앞에 가져와 그 안을 들여다 보며 응시했다. 화를 내는 내 모습이 그려지고, 소리지는 내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불덩이 같은 나는 속으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사랑을 보냈잖아. 그러니 그 사람들은 나에게 사랑을 줘야 마땅해.' 


내가 보낸 배려에 나도 모르게 기대를 했던 내가 있었구나. 나의 배려가 고마움이라는 보답으로 돌아오지 않자 나는 더욱이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타인의 행동, 말, 눈빛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해서든 나에게 고마워하는 표시를 찾아내려고 하고 있었구나. 나에게 고마움을 보이는 행동을 하길 원하는 바램이 있었구나.. 내가 시간과 사랑을 투자한 존재로부터  마땅한 반응을 받고 싶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채워지지 않아서 이 난리를 떠는구나. 


사실 내 속마음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생각을 알아차리고 나니 분노, 섭섭함, 화와 같은 감정이 생각에서 떨어져나가 전보다 흐려지는게 느껴졌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을 스스로 이해하게 되자 불화산 같은 화마는 잦아졌다. 


고마움을 엎드려 절 받기 하듯 받고 싶어서 한 배려는 아니었지만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인사가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기대치가 소란을 일으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기대치는 각자가 다르다. 그에게 내 기대치만큼 행동하라고 말할 권리는 없다. 또한 나의 존재감을 낮게 만들면서까지 타인을 사랑할 이유 또한 없다. 그래서 관계를 종료했고,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행복을 기원하는 시간을 굳이 갖지 않는다. 


감정정리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야 가능한게 아니다. 그저 가민히, 분노에 쌓인 나를 알아차리고 바라봤던 힘이 있다면 가능하다. 해묵은 감정을 한 켠에 분리하고 더이상 감정이 나를 좌지우지 하지 않도록 힘을 빼야 한다. 감정을 분리하고 다루는 에너지가 명상을 배운 후에 늘었다. 고통과 현존하는 나를 바라보고,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생각을 알아차리고, 그안에 매몰되어 빨려들어가는 나 자신이 아니라 고통스럽다고 여겨지는 생각이 불러오는 감정을 알아차리는 마음의 힘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2. 현재에 머무르는 힘을 길러내는 것


"코로 깊게 마시고, 입으로 길게 내 쉬세요." 내가 수업에서 주로 하는 말이다. 하지만 명상을 배우고나서, 나는 일상에서 숨을 마시고 내쉬는 것을 무척이나 통제하고 있을을 알아차렸다. 호흡을 의도적으로 정리하다보면 신경이 안정된 기분으로 빨리 올 수 있다. 그래서 이 의도적인 호흡을 좋아했다. 하지만 명상은 특정 행동을 하기 위해 집중하는게 하거나 잘 하려고 하거나 명확한 목표를 두지 않고 말 그대로 그저 있는 힘을 알려주었다. 


눈을 감고 코끝에 의식을 가져간다. 내가 의식하지 않고 있어도 숨은 제 할 일을 하며 쉬고 있었다는걸 알 수 있다. 그저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저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나는 현재에 있다. 이 순간 나는 생각이 과거로 가지도, 미래로 가지도 않는다. 이게 마음챙김 명상이다. 고통을 줄이고, 번뇌를 없애고, 무념무상의 세계로 가는 열반의 경지에 서있는 성자가 되는게 아님을 알아차리고 그저 내가 현재에 온전히 머물러 있음을 느낀다. 간단한 호흡 명상을 통해 현재에 머무르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처음 명상을 배울 때, 특정한 선의 상태가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음을 이제야 밝힌다. 과거의 나는 예민함으로 생기는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싫어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동경했으며, 끝없이 고요한 상태를 바랬다.  단단한 고요가 나의 본질이 되길 바랬으며, 그게 명상에서 도달하고 싶은 선이었다. 명상이 그 역할을 해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명상에 몸을 맡기고 깨달아 갈수록 그러한 선의 상태도 착각이었음을 알아차렸다. 다시금 알 수 없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넘치는 웃음으로 기뻐할 수 도 있는게 삶이다. 내가 가지고 태어난 안테나의 갯수는 남들보다 두배가 많기 때문에 넘실거리는 감정으로 뒤섞이며 살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허용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마음챙김명상으로 아주 조금씩 키워져감을 말해본다. 삶이 나에게 던지는 기쁨과 슬픔의 화두는 언제든 올 수 있고, 그 상황을 거부하지 않는 용기와 견달 수 있는 힘을 길러갈 뿐이다. 


마음을 들여다 보는 시선을 가지고 충만한 상태가 내 안에 있음을 들여다본다. 들여다보는 힘은 훈련이다. 외부로 행해온 시선을 안으로 들여와 든든한 정신력을 기르도록 훈련한다. 정신력은 강철처럼 부러지지 않는 투박한 상태를 지향하지 않는다.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드는 유연한 상태와 같다. 분노가 보이면 분노하는 상태를 바라보고, 즐거우면 즐거운 상태 자체로 바라본다.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과몰입은 자의식을 비대시킬 뿐이고 불안을 낳는다. 자의식이 나를 집어 삼키기 전에 멈추고, 나를  그 자체로 바라보는 시간을 가진다. 이 연습을 반복하면 점차 온전함에서 스스로 행복감을 느끼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예민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예민해서 세상에 전하고 싶은 말이 생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예민한 사람이 받는 오해를 하나씩 풀어갈 용기를 가진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예민해서 생기는 기쁨과 슬픔을 보여주고 싶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예민하기 때문에 잘 할 수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당신도 나도 몰랐던 예민한 사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예민함 #에세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