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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May 19. 2024

가장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믿는 힘

예민한 사람이 자신의 삶과 업을 만들어 가는 여정 (2) 현재의 믿음

스스로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나서 내가 느낀 점은 놀라움도, 불편함도 아니었다. 그저 그 자체로, 그 어떤 감정적 동요도 없이 온전한 기분이 느껴졌다. 무엇을 더 채워야 직성이 풀리던 과거의 내가 아니라, 나의 예민함에 대해 공격을 당할까봐 먼저 보호막을 치느라 바빴던 내가 아니라, 무엇을 미리 먼저 더 하지 않아도 괜찮은 내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평온한 세계를 알고 난 다음의 나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새가 알에서 깨어난 듯이, 그토록 살아보고 싶었던 내 모습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전과는 다르게 여겨지는 나이자 나의 본질에 더 가까워진 나로서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작은 내 과거의 궤적을 짜임새있게 해석한 것이었고, 그 이후 나는 현재와 미래의 일을 다룰 방법을 하나씩 들여다 보았다. 먹고 사는 일. 나를 가장 많이 드러낼 수 있고, 일 하는 사람으로서의 내 모습은 여전히 나에게 많은 의미를 준다. 나를 가장 많이 드러낼 수 있고, 외향적인 사람이 외부로 향해 세상과 소통하는 일은 심장이 펌프질을 하듯 내 영혼에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일은 무엇을 결정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업무는 결정과 수행으로 진행된다. 나에게 결정과 수행은 내 예민한 기질이 일을 하며 강점이 될 수 있어야 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결정 할 때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오랫동안 쓸 수 있고 답변의 범주가 넓은 특징이 있어서 '본질적 질문'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본질적 질문

거부감이 드는 일은 무엇인가, 그 중에서 무엇부터 버릴 것인가?

내가 하지 않을 일은 무엇인가?

앞으로 할 일은 학구열, 학습능력, 탐구심을 자극하는가?

앞으로 할 일은 나에게 어떤 감정과 의미를 주는가?

여러가지로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라, 나에게 생산적이고 의미있는 일을 선택하는가?

외부적인 기대와 요구에 맞추는 선택이 아닌, 나 자신에게 아주 솔직한, 나만을 위한 가장 소중한 일인가?

단 한 가지의 선택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단 한 가지만 이루어내야 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1년 뒤, 이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줄 거라 예상하는가?


(이 중 * 표시로 된 두 가지 질문은 그랙 맥커운의 <에센셜리즘> 과 게리 켈러의 <원씽> 을 참조한 질문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일과 일상에서 느끼는 자극이 보통 사람들보다 넓고 깊다. 그래서 무엇부터 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일이 가장 첫 번째로 중요하다. 거부감이 드는 일이나 버려야 할 일을 선별하고 의도적으로 하지 않는 연습이 되어야 우리의 제한된 에너지를 발전적인 영역에 사용할 수 있다. 사소한 결정부터 범위가 큰 결정까지, 자신이 앞으로 할 일을 정할 때 본질적 질문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일을 섬세히 다듬어서 결정해보는 연습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예민한 사람은 자극을 받아들일 때 정성을 들여 정교하게 처리한다. 우리의 마음과 머리가 활발해지고, 감각을 느끼는 범위가 넓기 때문에 무엇이 어떠한지 확인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 시간을 빨리 처리하려고 다그치거나 차단하거나 멈추어선 안된다. 예민한 사람의 섬세한 재능은 누군가에겐 반드시 필요한 구원이다. 그리고 그 일을 지속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를 보듬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예민한 사람에게는 외부세계와 내부세계 모두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의 서사를 통해 내 궤적을 뚫어내면서 내가 일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알 수 있었고, 그 내용을 기반으로 앞으로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행동할 때 위 질문들을 기반으로 결정해갔다. 본질적 질문을 통해 불필요한 것들을 가지치기 하고 나에게 중요한 일을 해려고 노력했다. 내가 정한 내 질문들을 통해 내 예민함을 강점으로 살려 일을 하니, 몇 년전 영어강사를 일하면서 느낀 허무함이나 커뮤니티 매니저를 하면서 느낀 불안감이 사라졌다. 나의 예민함은 본질적인 기질이었고, 이는 파란눈과 노란머리를 가진 사람의 특징처럼 나에게도 지울 수 없는 특징이다. 그러니 내 본성을 거슬러 다른 사람이 될 필요도 없고, 예민하지 않기 위한 훈련을 할 필요도 없다. 예민하지 않은 사람에게 내 특성을 강요할 필요도 없다. 나의 예민성을 강점으로 드러내면서, 중요한 일을 선별하여 진행할 때 이전과 다른 차원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나의 예민한 생각, 감정, 결정을

전적으로 신뢰하자.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으로 다소 불가피한 고통과 고민을 안고 살았다. 굳이 어렵게 생각하고, 굳이 그렇게 까지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정성을 다하고, 귀를 기울여 잘 들어주며 살았다. 모난 돌이 정 맞는 일이 없이 사는게 과거의 내 목표였던 적도 있었다. 이런 시간을 보내며 살던 어느날,  모든 현실이 다 혼란스럽게 다가오고, 도데체 지금 내가 마주한 현실이 다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자존감이 낮아서, 자신감이 없어서 같은 소리에 흔들리기도 했고 정말 내가 그렇게 유난스러운 사람인지 의심했다. 마음에 의문이 많으니 내가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건 당연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를 오로지 나에게만 원인을 찾으며 부족한 나를 탓하며, 부족하지 않은 상태를 위해 닥치는대로 더 채우려고 노력했다. 


지금 되돌아 생각하면 나에게 가장 많이 혼났던 내가 안쓰럽다. 달리는 경주마에게 더 달리라며 매섭게 채찍질을 하듯, 나는 나를 매일 혼내며 살았다. 속도는 빨라졌지만 마음의 불안과 신경질적인 면모도 같이 빠르게 자라났다. 불안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건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그 땐 몰랐다. 


나의 가장 아름답고 이상한 기질인 예민함은 무언가가 부족한 상태가 아니다. 병리적으로 치유를 해야하는 상태도 아니며, 금기시 되고 평가절하될 이유도 없다. 이 상태를 스스로 깨닫고나서야 갖은 상처를 받은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보게 되었고,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편안해졌다. 서사를 쓰며 내 본질의 맥을 짚어내기 시작했고, 내게 필요한 일의 방식과 타인과의 소통법을 알 수 있었고, 내 몸을 어떻게 이해하고 관리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그러자 내가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사고방식도 깨닫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살아오며 많은 일에 호기심을 느끼고, 시작한 일은 깊게 탐구하며, 여러가지 일에서 배운 것들을 나만의 노하우와 서사로 연결시켜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한 자리를 계속 맴도는 것 같지만 확장하는 나선형처럼, 예민한 사람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일들을 다양하게 겪으면서 살아가고 성장한다. 뿔기둥의 안에는 나의 본질이 우뚝히 서있고, 본질은 내가 설정한 방향대로 계속 자라난다. 내 서사를 돌아보고 찾아낸 궤적은 아래의 나선형처럼 넓고 깊게 확장되고 있었다. 때론 다른 영역의 일을 하면서, 나 답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하면서, 나를 의심하고 평가절하하기도 하면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것도 이 궤적에 들어있다. 필요 없고 낭비된 시간이 아니라 좀 더 본질에 가까운 나를 알게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나를 깊게 이해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많은 감각과 정보를 한 번에 느끼기 때문에 정보를 깊게 처리하는데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내 것이 된 정보는 뿌리를 단단히 내려, 오랫동안 활용하고 쓸 수 있는 능력으로 만들고 있었다. 나의 궤적은 한 자리를 계속 도는 것 같지만 점점 확장을 해내가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쓰고 있고, 내 본질은 기둥처럼 더 튼튼히 자라게 살아왔다. 



예민한 사람은 나선형으로 성장한다 @baekseulgi




예민한 사람은 의심이 많아 자신의 결정을 믿지 못하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매번 결과에 가까운 사건사고를 처리하느라 바쁠게 아니라, 조금 더 원인에 가까운 일을 다뤄야한다. 내게는 그 작업이 서사를 찾아 과거를 정리하고 본질적 질문에 답변하여 현재를 명확히 보는 일이었다. 스스로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치부하지 말고, 서사를 써낸 후 본질에 집중 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려보자. 이 연습이 익숙해지면 현재 내 상태와 앞으로 하고자 하는 것들을 믿는 힘이 생긴다. 믿음도 연습을 해야하고, 믿음도 힘이다. 마치 제 자리를 맴도는 기분 때문에 괴로워하고, 더 나아가지 못하는 나를 한탄하고, 유난만 떠는 내가 싫을 때 위 그림을 떠올리자. 


빙글 빙글 멀리 돌아가는 같지만 우리는 나선형으로 넓고 깊게 살아가고 있음을 믿자. 예민함은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나를 이루는 특성일 뿐이다. 나아가지 못하는게 아니라 느껴지는게 많아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유난 떠는게 아니라 많은 것이 보일 뿐이다. 예민한 나의 생각, 감정을 바라보자. 그리고 무언갈 하고 싶어진다면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하나의 결정을 한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는게 아니라 결정을 믿어야 한다. 결정을 믿고 응원할 때, 우리의 예민함을 재능과 축복으로 여길 있을 것이다. 



#예민함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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