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좀 울고 순해졌으면'
나의 엄마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생후 1년까지 나에 대한 기록을 육아일기로 써주셨다. 첫 아이에 대한 셀렘, 기대, 두려움을 볼펜으로 꾹꾹 눌러 적으며 나를 기다린 흔적이 보인다. 초봄의 추위가 맴돌던 3월 말, 작은 체구의 엄마가 3.4kg 나 되는 큰 아이를 낳는 일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적혀있다. 태어날 때도 엄마를 힘들게 했는데 생후 나를 키우는 참 어려웠던거 같다.
밤 잠을 잘 자지 않는 아기 였다. 엄마는 뜬눈으로 밤새 나를 안고 있었고 잠시 바닥에 나를 내려놓으면 바로 울기 일쑤였다. 작은 자극에도 놀라며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기가 나였다. 오죽하면 오늘은 순하게 잘 놀았다고 기록된 일기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일기에는 나의 울음 역사가 가득 써있었다. 유년기를 보내면서도,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그만 좀 울라는 소리와 유별나다는 말이었다.
예민한 아기는 자극에 민감하여 작은 소리와 감각에도 반응할 일이 많고, 그 반응을 처리하기 힘들어 울음으로 표현한다는 것을 30년 전엔 아무도 몰랐다.본인도 본인이 왜 우는지 모르는 아기가 어떻게 모든 불편함을 드러내겠는가.
육아 일기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버스를 타고 시장을 가던 길에, 포대기에 쌓여 잘 가던 중 갑자기 고함을 치며 시끄럽게 울어대는 나를 엄마는 어찌 달랠 줄 몰랐다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달래도 오죽 울어대는 나와 엄마를 보며 주변에 탄 승객이 안타까워 할 정도였고 우리 엄마의 등은 식은 땀으로 다 젖을 정도였다고 적혀있다. 아기인 나는 버스의 소음이나 답답한 공기가 싫었을 것이다. 집과 다른 환경은 나를 불편하게 했을 것이고, 당장 이곳을 떠나라는 표현을 엄마에게 한 것인데 유난스럽고 별난 내 성질은 엄마 뿐만 아니라 주변 어른들을 여러번 당황스럽게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할 내 행동은 클 수록 모난 행동처럼 취급되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예민한 감수성은 조심히 숨겨야할 면모가 되었다. 세상의 욕구와 필요에 따라 예민함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일이 많아졌다. 성격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는 들었으나 나는 행복하지 못했다. 예민하지 않아야 보통 평범하게 살아가기 쉽다는 인식이 목을 조여오는 것 같았다. 세상이 정한 평범한 사람의 모습처럼 맞춰가려고 하니 예민한 내 모습은 수치에 가까워졌다.
예민한 사람은 '과민하고 히스테릭을 드러내는, 변덕이 심하고 자주 아픈' 사람일까? 이런 결과적인 모습은 나의 예민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받지 못해서 생긴 일시적인 상태일 뿐,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다. 감정 기복이 심한 것과 감수성이 높은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예민한 사람이 자신의 감수성을 건설적으로 드러낼 때, 누구보다 타인에게 깊은 공감을 보여줄 수 있다. 이는 글이나 그림과 같은 예술적인 분야에서 강점을 보인다.
혹시 나처럼, 예민함을 건설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더 있지 않을까? 예민한 모습을 숨겨야할 수치가 아니라 타고난 강점으로 인식하고 밀도 높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찾고 싶었다.
예민한 사람은 감정, 감각, 정보를 처리할 때 자신만의 사고 방식으로 처리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시간이 드는 만큼 여러사건을 연결하는 관찰력도 좋은 편이다. 이 관찰력을 타인이 아닌 자신을 위해 써야 나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게된다. 이 경계를 인식하면 자신의 감각을 믿고 유의미하게 다루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의 예민함을 사랑스럽고 긍정적인 능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계기는 책이었다. 롤프 젤린의 <예민함이라는 무기> 는 제목부터 용기를 북돋아줬다. 이 책을 시작으로 예민함에 대한 여러 작가의 책과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자 마음 저 깊숙한 곳이 따뜻해지고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장소가 안전하다고 느껴졌다. 예민함에 대해서 무지했던 예민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겪은 고초와 삶의 여정을 솔직하게 쓰면서 또다른 예민한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세상의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기분이 들던 나에게 오랫동안 알고 지내어 편한 친구가 생긴 기분이었다. 예민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드러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스스로 예민한 사람이라 말하는 것은 죄수에게 찍힌 낙인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남다른 존재방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준 사람이 있어야 나와 같은 누군가도 몰라서 생기는 고통을 굳이 겪지 않을 것이다. 인식을 바꿔야 과도한 책임의식, 무기력, 우울감, 수치심, 왜곡된 자아상을 버릴 수 있다. 옳고, 바르고, 표준적이고,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은 없다. 일곱개 무지개 색 중에서 빨간색은 정상이고 보라색은 비정상이라고 말하지 않듯이 말이다.
독특한 사고와 존재방식으로 지구인이 아니라 우주인처럼 사는 기분으로 살며 '유난스럽게도 군다' 고 스스로를 여긴 나에게 책은 너무나 귀한 친구였다. 머나먼 타국의 예민한 사람들이 다른 예민한 사람을 위해 글을 썼고 그 메시지가 한국에 사는 나에게 온 사실에 감사했다. <연금술사> 의 내용처럼 진리는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으나 어두운 눈 때문에 보지 못했다. 여전히 갈 길은 아득하고 가끔 길을 헤메기도 하지만 예전보단 깨우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혹시 나 같은 사람이 더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글로 만날 예민한 동료들이 더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글을 써간다. 무언가 다른 존재라는 시선속에서 외로이 지내지 않고 조금 더 소리를 내고 살아가자고.
예민함은 보편적이지 않은, 비정상에 가까운 불편이 아니다. 자극을 처리하고 인식하는 자각력이 뛰어나고 보이지 않는 행간을 읽어내는 힘이 강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고 넘어갈 일을 섬세히 인식하여 더 나은 가치로 만들어낸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배려하는 모습이 뛰어나다.
예민함을 인식하는 방법을 다르게 바꾸자 내게 생기는 여러가지 감정을 차단할 필요가 없었다. 어려운 일을 조용히 참아가며 살아갈 이유도 없었다. 나의 재주를 저주라고 생각하고 사는 일도 멈췄다. 예민한 기질은 남다른 축복이었다. 이 경험에서 깊은 치유와 자유를 느꼈다.
과몰입과 공감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서 타인의 아픔도 나의 아픔처럼 느꼈다. 그로 인해 생기는 감정의 찌꺼기로 불편한 기분을 어깨에 이고 살았다. 그러나 이런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다면 삶에서 무엇을 버려야하고 취해야할지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상황, 사람, 감정을 의도적으로 이사했다 건강하고 즐거운 사람이 있는 곳으로 애써서 마음을 옮겼다. 온기가 있는 사람들과 공감하며 살기로 결심하자 일상이 단정해졌다.
에너지 뱀파이어, 어딜가나 있는 또라이 보존의 법칙, 프로불편러들 때문에 괴롭다면 그 장소에서 벗어날 결심을 해야한다. 삶을 단단하게,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을 찾아가야한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런 환경을 주는 사람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러번 노력하고 바꾸다 보면 나에게 안전지대가 되어주는 사람들로 채워져있다는 걸 알게될 것이다.
배움을 함께 하는 동료를 찾는게 좋다. 그들이 보내는 순수한 응원에 나를 맡겨도 좋다. 같은 목적과 같은 마음으로 만난 친구들끼리 자애를 공유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 안에서 동료들에게 먼저 사랑을 보내고 다시 그들이 보내주는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여 마치 샤워를 하듯 온 몸으로 사랑을 끌어안아도 좋을 것이다. 같은 마음으로 무언가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안전지대를 경험할 수 있다. 이 경험이 일회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순간의 사랑을 기억하고 온전히 받을 마음이 있다면 이전과는 달라 질 수 있다.
#예민함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