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사람이 자신의 삶과 업을 만들어 가는 여정 (2) 현재의 믿음
스스로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그 어떤 놀라움도 없었다. 그저 그 자체로 살아온 내가 보이며 온전한 기분이 느껴졌다. 일이든 놀이든 일상을 꽉 채워야 직성이 풀리던 과거의 나는 없었다. 불특정 다수에게 나의 예민함을 공격을 당할까봐 미리 보호막을 치느라 바빴던 나도 없었다. 항상 무언갈 미리 해야 편안했는데 이젠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새가 알에서 깨어난 듯이, 그토록 살아보고 싶었던 내 모습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나를 발견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여겨지는 나의 자아가 보였다. 나의 본질에 더 가까워지니 마음이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했으며, 이런 고요한 마음으로 미래를 바라보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해도 부담이 느껴지지 않았다.
과거의 궤적을 짜임새 있게 해석한 후에 현재와 미래의 일을 다룰 방법을 하나씩 들여다 보았다. 가장 먼저 일을 할 때 즐거워하는 내가 보였다. 일 하는 사람으로서의 내 모습은 심장이 펌프질을 멈추지 않는 것 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이 생동감을 길게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일의 의미가 중요했다. 나는 오랫동안 쓸 수 있는 기술을 연마하며 과정을 즐기고, 과정을 결과로 증명하는 사이클이 있어야 일의 의미를 느꼈다. 그리고 일을 진행하는 과정 중에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고 수행하는 지가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의사결정을 잘 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묻고 답했던 질문을 다듬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본질적 질문'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크고 작은 일을 결정 할 때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본질적 질문
거부감이 드는 일은 무엇인가, 그 중에서 무엇부터 버릴 것인가?
내가 하지 않을 일은 무엇인가?
앞으로 할 일은 학구열, 학습능력, 탐구심을 자극하는가?
앞으로 할 일은 나에게 어떤 감정과 의미를 주는가?
여러가지로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라, 나에게 생산적이고 의미있는 일을 선택하는가?
외부적인 기대와 요구에 맞추는 선택이 아닌, 나 자신에게 아주 솔직한, 나만을 위한 가장 소중한 일인가?
단 한 가지의 선택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단 한 가지만 이루어내야 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1년 뒤, 이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줄 거라 예상하는가?
(이 중 * 표시로 된 두 가지 질문은 그랙 맥커운의 <에센셜리즘> 과 게리 켈러의 <원씽> 을 참조한 질문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일과 일상에서 느끼는 자극이 보통 사람들보다 넓고 깊다. 그러므로 무엇부터 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일이 가장 첫 번째로 중요하다. 거부감이 생기는 일을 버려야 중요한 일을 선별할 수 있다. 의도적으로 하지 않는 것을 결정해야 우리의 제한된 에너지를 발전적인 영역에 사용할 수 있다. 사소한 결정부터 범위가 큰 결정까지, 자신이 앞으로 할 일을 정할 때 본질적 질문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일을 섬세히 다듬어서 결정해보는 연습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예민한 사람은 자극을 받아들일 때 정성을 들여 정교하게 처리한다. 자극이 들어오면 수백개의 센서에 불이 켜지며 마음과 머리가 활발해진다. 감각을 느끼는 범위가 넓기 때문에 자극을 확인하는 시간이 길다. 조급한 나머지 자극을 빨리 처리하려고 다그치거나 차단해선 안된다. 예민한 사람의 섬세한 재능을 지속하기 위해선 처리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과거의 서사를 통해 궤적을 뚫어내면서 일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선택하고 새로운 행동할 때 본질적 질문을 기반으로 결정해갔다. 본질적 질문을 통해 불필요한 것들을 가지치기 할 수 있어서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었다. 내가 정한 내 질문들을 통해 내 예민함을 강점으로 살려 일을 하니 일하면서 느낀 허무함이나 불안감이 사라졌다. 예민하지 않기 위한 훈련을 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나의 예민성을 강점으로 드러내면서 중요한 일을 선별하니 밀도 높은 삶을 살게 되었다.
세상이 정한 통념에 적응하기 위해 마음이 불편한 일이 생겨도 참고 살았다. 굳이 어렵게 생각하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정성을 다하고, 귀를 기울여 잘 들어주며 살았다. 원래 다 그런 줄 알았다. 모난 돌이 정 맞는 일이 없이 살아야 잘 사는 건 줄 알았다.
예민함은 자존감과 자신감이 낮아서 생긴 문제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나 고쳐야할 게 많은, 유난스러운 사람인지 의심했다. 항상 의문이 가득한 상태로 살아가니 내가 나를 봐도 한심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심지어 모든 일의 원인과 책임을 오로지 나에게만 찾으려고 하니 나는 언제나 부족한 사람이었다. 에라 모르겠다며 뻔뻔하게 살기엔 약삭빠른 사람이 아니었따. 부족한걸 더 채우려고 닥치는대로 노력했다. 하지만 나의 노력은 채워질 수 있는 둑이 아니었다. 예민함은 부족한 상태가 아니니까. 일시적으로 자존감이 낮아 지는 일은 어느 누구에게나 생기는 일이다. 예민해서 자존감이 낮은게 아니라, 예민한건 그냥 예민한거다. 이런 비합리적인 생각은, 팔이 부러졌는데 감기약을 처방하는 꼴이다. 이러면 팔이 나아지나?
타인의 비난은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예민한 사람이 스스로를 탓하고 질책하는 면모가 있을 때이다. 예민한 사람 중엔 자신을 혼내며 사는 사람이 많다. 달리는 경주마에게 더 달리라며 매섭게 채찍질을 하듯 빨라지는 속도 만큼 마음의 불안과 신경질적인 면모도 같이 빠르게 자라난다. 언젠간 그 채찍질로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탓하며 더 도망갈 틈도 없이 몰아 붙이지 말자.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사람이 나 자신이 되면 삶이 너무 슬퍼진다.
나의 가장 아름답고 이상한 기질인 예민함은 무언가가 부족한 상태가 아니다. 병리적으로 치유를 해야하는 상태도 아니며, 금기시 되고 평가절하될 이유 또한 없다. 이 상태를 스스로 깨달아야 상처를 받은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고 이내 편안해 질 수 있다. 서사를 쓰며 내가 가진 본질적인 모습이 무엇인지 맥을 짚어내어 각자에게 필요한 일의 방식과 타인과의 소통법을 알 수 있다. 내 몸을 어떻게 이해하고 관리해야 하는지도 알기 쉽다.
나는 이 과정을 반복하며 예민한 사람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사고방식도 깨닫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민한 사람은 많은 일에 호기심을 느끼며 일을 깊게 탐구하며 여러가지 일에서 배운 것들을 나만의 노하우와 서사로 연결시켜 생각하는 힘이 강하다. 지금 당장의 상황은 제자리를 빙빙 맴도는 것 처럼 보이지만, 높은 시선에서 바라보면 나선형으로 확장하며 사는 경우가 많다.
예민한 사람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일들을 다양하게 겪으면서 살아가고 성장한다. 뿔기둥의 안에는 나의 본질이 우뚝히 서있고, 본질은 내가 설정한 방향대로 계속 자라난다. 내 서사를 돌아보고 찾아낸 궤적은 아래의 나선형처럼 넓고 깊게 확장되고 있었다. 때론 다른 영역의 일을 하면서 나 답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하면서 돌아간다. 이루 말 못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것도 이 궤적에 들어있다. 하지만 그 경험은 낭비된 시간이 아니라 좀 더 본질에 가까운 나를 알게 도와준 시간이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나를 깊게 이해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많은 감각을 한 번에 느끼기 때문에 들어온 감각을 정보로 처리하는데에는 시간이 오래걸린다. 그러나 한 번 내 것이 된 정보는 뿌리를 단단히 내려, 오랫동안 활용하고 쓸 수 있는 능력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삶의 궤적은 한 자리를 계속 도는 것 처럼 보이지만, 점점 확장을 해내가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쓰고 있으며 튼튼한 기둥으로 자리잡는다.
예민한 사람은 의심이 많아 자신의 결정을 믿지 못하는 불안에 빠지기 쉽다. 의심과 불안을 건설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서사를 찾아 과거를 바로 이해하고, 본질적 질문에 답변하여 현재를 명확히 보는 일이었다. 이 과정 속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의심을 줄일 수 있다. 의심이 줄어들면 자기를 믿는 힘이 생기고, 미래에 하고자 하는 것들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신념이 생긴다. 믿음도 연습을 해야 생긴다.
예민함은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나를 이루는 특성일 뿐이다. 나아가지 못하는게 아니라 느껴지는게 많아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유난 떠는게 아니라 많은 것이 보일 뿐이다. 예민한 나의 생각과 감정이 말하는 바를 무시하지 말고 스스로 내린 결정을 믿어야 한다. 내 결정을 믿고 응원할 때, 우리의 예민함을 재능과 축복으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예민함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