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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May 18. 2024

일이 아닌 길을 찾아야 한다

예민한 사람이 자신의 삶과 업을 만들어 가는 여정 (1) 과거의 궤적

교실 책상 위에 뜯지 않은 생수병 하나가 있다. 저걸 치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다. 생수병을 바라본다. 책상 위에 그대로두면 누군가가 치워야 하고, 정리 되지 않은 교실을 본다면 누군가는 왜 아무도 치우지 않았는지 생각 할 수도 있겠다. 아무도 없는 이 교실에, 생수병을 그냥 내버려두는게 무정한 대처라 느낀다. 피로가 가득한 눈빛으로 교탁의 자료를 팔 위에 안고 자료 위에 생수병을 올려서, 다음에 목마른 아이가 마실 수 있도록 제자리에 둔다. 책상 위에 생수병 같은 것을 치우는 일은 당연하게, 무의식적으로 했던 일이다. 수업이 끝나면 늘 정리했던 교실인데, 생수병 하나가 눈에 들어오면서 이 공간을 당연하지 않게 의식한다.


이 일에 정이 떨어졌다고 느낀건 과다한 업무로 몸에 병이 낫을 때도 아니고, 학생의 성적이 떨어지면 누구의 책임이냐고 질문을 받았던 시간도 아니었다. 출근 전과 주말에도 학습 자료를 만드느라 온전히 쉬지 못했던 나날의 반복도 아니었다. 그저 교실에 남겨진 생수병이 눈에 들어와, 저 생수병을 치워야할지 말아야할지 같은 사소한 고민이 들었을 때 였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젋은 20대를 공부에 매진했고, 가르치는 일이 천직이라 추호도의심한 적이 없다. 그러나 어느새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마음으로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할지 단 한 번도 고민을 내려놓지 못하는, 막다른 길목에 갖혀진 기분으로 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내면의 목소리와 지금까지 한게 아깝다는 머릿속 생각이 몇 초도 쉬지 않고 큰 목소리로 싸우는게 느껴졌다. 격전의 싸움을 끝없이 펼치다가, 생수병을 치울 힘도 없이 폭삭 말라가는 마음이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내가 사랑하던 일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나를 보았다. 일을 너무나 사랑했으나, 일에 차갑게 정이 떨어졌다.


여자 직업으로 영어 선생님은 최고지.
그정도 월급 벌기 쉬운줄 아니? 그냥 다녀.
영어 잘하는 거 부럽다. 남들은 다 부러워해. 그리고 애들 가르치는 일이 가장 쉬워. 회사는 정글이야.


선생님으로서 나는 적격에 떨어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학생들에게 가르칠 지식은 부끄럽지 않을 만큼 충분했고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사무적이어서 학생들과 애정관계를 갖는 일에 문제가 생길 일도 없었다. 나는 전공 공부를 하는 동안 충분히 좋은 스승을 만났고, 비록 임용고사엔 합격하지 못했으나 공부했던 과거에 당당했다. 겉으로 보기에 멋이 떨어지는 직업도 아니었다. 하지만 왜, 마음 속에선 늘, 일 자체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맨도는지 궁금했다. 영어 실력 자체를 더 키우기 위해서 번역공부와 토익 공부를 해보았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다. 그러나 영어 자체에 대한 갈망으로 생기는 갈증은 아닌 것 같아서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보는 세계가 너무나 단순하여 일에 지겨움을 느끼는게 아닌가 싶어, 독서모임에 나가서 책을 읽고 분야가 겹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려고 했다. 그러나 사람이 모이는 곳엔 늘 사건사고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람과 책을 통해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거라는 내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여 그만두었다. 이외에도 십자수, 발레, 연사들의 강연, 화장품 만들기처럼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자극을 찾아다녔지만 마음속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았고 공허함을 없애려고 애쓰다가 더욱 예민해지는 내가 보였다. 그리고 다시 일터로 돌아오면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외침을 반복했다. 예민함이 극에 달하자 쓸 수 있는 에너지는 바닥이나고, 부정적인 말을 달고 살았으며, 자기전엔 내일 아침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끝도 없이 예민해지고, 무엇을 위해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할 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털어놓으면, 여자 직업으로 선생이 최고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급여를 얼마 받냐며, 그 정도 급여를 받기가 쉬운 줄 아냐며, 누구나 자신의 일이 가장 힘들다며 그정도는 다 참고 사는거라는 소리를 들었다. 일에서 불행할 이유가 없는데 나는 매일 불행하다 느꼈다. 이 고민은 언제쯤 끝날 것인가, 내가 원장이 되어서 내 일을 하고 지금보다 더 많이 벌면 고민은 사라질까. 매일 스스로에게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물어봤지만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1년이 꼬박 지났다. 아버지의 환갑 잔치를 하던 아침 날에도, 나는 현수막과 케익만 준비해드리고 출근길에 나섰다. 가족 행사가 있거나 가족이 아파도 일하러 가야하는 현실을 반복하다가 결심했다. 그냥 이 일을 그만두기로. 사랑하는 내 전공과 일에게 나는 충분히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 분필을 잡지 않더라도 괜찮겠다는 느낌이 들어섰다. 내가 이 마음을 먹었을 때, 내면은 고요했지만 정작 소란은 밖에서 일어났다. 나에게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제자들이 온 바닥을 눈물로 덮었다. 교실에서 생수병을 보며 정이 떨어졌다고 생각했던 그 날 그 같은 교실인데, 학생들은 내 퇴사를 막으며 가지 못하게 몸으로 막았다. 함께 있는 동안에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아이들은 내가 떠날 때즘 전했다.


내가 강하지 못한 어른이라 미안했다. 다른 곳에서도 분필을 잡을 생각이었다면 지금 이 학생들에게 덜 미안했겠지만, 나는 더이상 강단에서 영어를 가르치지 않겠다고 생각하니 이 순간은 정말이지 마지막이라, 학생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이번 이별은 한 번에 정한게 아니라 결정을 번복하긴 어려웠다.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로, 그저 당분간 내 평화와 안녕을 위해 이 장면을 결정했으므로, 경계 없이 사랑했던 일을 그만두었다.




그 이후로 나는 직업을 두 번 바꿨다. 한 번은 커뮤니티형 교육 스타트업에서 교육 운영을 도맡는 관리직이었다. 매일 3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위해, 본인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도록 단톡방을 운영했고 관리했다. 운영진들과 참여자들을 위한 자료를 만들들고, 모임을 관리하며 강연이 있으면 모더레이터로도 역할했다. 이 안에서 나는, 꽤나 잘 하는 사람이었다. 일당백으로 불리며 누군가 가르쳐 주지 안하도 눈치껏 알아서 역할 이상을 해내었다. 규칙을 잘 지키면서, 할 일은 더 해내고, 말하지 않아도 무언갈 더 채워가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온라인 재택근무로 1년을 함께 한 후, 본사로 직접 와서 일하기를 제안 받았다. 지면에 다 쓰기 어려울 만큼 힘든 고민을 했지만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합류했다. 회사의 내부 사정을 구체적으로 듣지 못한 채로 합류한 것이었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내가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꽤나 큰 용기를 내어 시작한 일이었음에도 영어강사를 그만뒀을 때보다 더 많이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에 대한 위기감은 여전했고, 내가 가야할 길은 보이지 않았다. 적당히 모든걸 다 잘해내는 사람인데, 과감히 하나를 사랑하기 어려운 나를 어찌해야할지 몰랐다. 아무런 기약을 할 수 없는채로 쉰 기간이 1년이 되어갔다. 기약없이 스스로를 쉬게했던 기간동안 내면의 대화를 많이했다. 그 기간동안 나는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일을 하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왜 이 일을 하는지, 일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수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지 등은 너무 표면적인 행위였다. 운동하는 영어강사, 글쓰는 커뮤니티 매니저, 다재다능 브런치작가 ... 자기 PR의 시대에서 자신의 강점을 섞어 드러내는 카피는 너무나 중요하지만 셀프 브랜딩이라는 관점으로 나를 설명하기엔 온전히 나다운 표현을 찾기 어려웠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드러 낼 수 있음에도, 그 문장에 자신을 가두고 더 많은 것을 드러내지 않는 한계가 생기는 듯 했다.


인간은 다면적이라 일하는 자신의 모습으로만 자기를 표현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의 모습이 진짜 자신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 또한 오늘 좋아했던 일이 내일 싫어지는 모순도 안고 산다. 그래서 나는 일하는 자아상을 정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특정 직업으로 불릴 수는 있으나 목매달지 않기로 한 것이다. 무슨일을 해야하는 찾아가고, 그 일을 위해서만, 그 일 안에서만 최고치를 성취하는 자아는 내게 옳지 못했다. 다만 내 자신이 생각, 의미, 감각에 예민한 사람이라는 정의에서 자유롭다 느꼈으므로 이전에 해온 일의 궤적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의 방향을 결정하는 기준을 명확히 잡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서사를 돌아보고 일의 궤적을 찾기


그림그리기, 책 읽기, 글쓰기, 춤추기, 외국어 전공하기, 교육학 전공하기, 심리학 공부하기, 에세이스트, 영어강사, 커뮤니티 매니저, 사업자, 필라테스 강사. 겉으로 보기엔 큰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일들을 해온 것 같지만 나는 무언갈 단순한 호기심에 지속하는 사람은 아니란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내가 집중적으로 해온 일을 포괄할 수 있는 접점을 찾기로 마음 먹었다. 대체로 창의적으로 내 생각을 드러낼 수 있고, 사람을 다면적으로 이해하고 이끄는 일이었다. 틀에 박힌 규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매번 다른 처세를 내비칠 수 있는 유연한 권리가 있어야 했다. 표현에 한계를 두지 않지만, 학문 자체에는 뿌리가 있어서 탐구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는 분야를 좋아했다. 나의 몸과 마음에 건설적인 안녕을 추구하고, 한 번 배워두면 오랫동안 쓸 수 있는 본질적인 것들을 해오고 있었다. 영어가 아닌 언어, 필라테스가 아닌 웰니스, 책이 아닌 철학처럼 넓은 영역에서 안정을 느꼈다. 언제든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배울 수는 있지만 언어라는 본질은 사라지지 않듯, 나는 단단한 뿌리가 살아있는 분야에서 드넓은 헤엄을 치더라도 무리가 없는 자유를 원했음을 알았다. 내가 추구해온 일과 목표도 모두 뿌리가 있는 분야는 오래 지속했지만, 그렇지 않은 일은 금방 그만두었다.


예민한 사람들은 하는 일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반복되는 일이나 자신의 주체성이 드러나지 않는 일을 지속하기 어렵다. 일이 편하게 흘러간다든지, 일의 난이도가 쉽고 어려운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일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안정감을 주고, 발전시키고, 편안한지가 중요하다. 밤새워 일을 해야 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이라면 집중력을 놓치지 않고 일을 해낼 열정도 지니고 있다.


과거의 궤적을 돌아보고 의미를 연결하여 자신의 의식을 높게 고취하여 방향을 바라보는 일이 내가 내 업(業)에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었다. 그 이후, 스스로 가는 길을 찾아 방향을 의심하지 말고, 그대로 걸어가며 나아가는게 앞으로 할 일이었다. 이 작업은 단 몇줄의 책을 읽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고해서 찾아지는게 아니다. 책, 스승, 대화, 고민, 좌절 등 수많은 시간동안 자신이 누구인지 들여다보며 이 길과 저 길을 가다보면 지나온 궤적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궤적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때라야 알 수 있다. 예민한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서 길을 자주 헤메는 일이 빈번한 것도 자신만의 궤적을 만드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늦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가는 길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니, 완벽한 순간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까다로운 자신을 수용하며 나아가야 한다. 매번 제대로 기능하는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예민한 사람이 자신을 잘 다루지 못할 때 생기는 강박이다. 강박이 내면에 있다는 것만 알아차려도 복잡한 심경이 한껏 조용해지며, 내면의 소리를 듣기 쉬워진다. 예민한 사람은 복잡한 신경감각을 안정시켜야 창의적이고 다면적인 사고를 긍정적으로 확장 할 수 있다.


자서전적 방법


내가 서사를 돌아보고 나만의 궤적을 써내려간 방식은 마치 자서전을 쓰는 일과 비슷했다. 내 서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과거를 스스로 정리했다. 첫 번째로 과거를 회상하여 그대로 내려적는다. 내가 실존했던 일 그대로, 마치 영화를 보듯 회상하며 생동감 있게 마주했던 일과 감정을 써내려가는 것이다. 이때 과거의 기억이 너무 고통스럽다면 특정 누군가와의 사건을 최소화하여 관찰하기도 했고, 강렬한 감정이 드는 사건은 세세하게 기록하기도 했다. 오로지 내가 느끼는 반응에만 초점을 두는게 중요했다. 다만 과거에 생긴 사건은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반응은 내가 감정을 중심으로 쓴다. 사건에 대한 반응을 쓸 땐 검열을 두어선 안된다. 과거의 대한 내 반응은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아야하는 작업이 아니다. 도덕적 의식, 타인의 시선, 욕을 해선 안된다는 생각을 모두 내려 놓고 있는 그대로 분출해야 심연의 나를 볼 수 있다. 특정 사건에 대해 혼자 거친 말을 한다고해서 큰 일이 생기지 않는다. 사건에 대한 감정이 분노인지, 짜증인지, 행복인지, 안정인지에 대해 눈치보지 말자. 이 세상에 나쁘고 좋은 감정은 없다. 그리고, 그 감정이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나의 서사는 나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한다. 이 작업은 자아를 재개념화 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두 번째, 회상된 과거에 속에 나 자신이 지속적으로 원했던 바를 찾는다. 궤적의 의미는 여기서부터 피어난다. 가장 깊은 내면의 모습이자 앞으로도 쉽게 변하지 않을 반응이다. 이 모습은 앞으로 내가 만들고자 하는 현재와 미래의 모습이다. 지속적으로 원했던 바, 내 자아는 계속 소리치고 있었지만 나만 몰랐던 그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은 마치 아이가 태어나고 씨앗에서 새싹이 틔어나는 순간과 닮아있다. 가장 큰 변화가 시작될 수 있는 만큼 가장 큰 노력이 들기도 한다. 예민한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잃어버리면 영혼이 죽는다. 의미를 찾지못해 혼란스러운 삶으로 괴로웠다면 이 작업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예민한 기질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강점으으로 인정하고 스스로 먼저 보살피는 일이기 때문이다. 몇 주가 걸릴지도, 몇 달이 걸릴지도, 하다가 멈추고 쉬다가 다시 몇 년 뒤에 새로할 수도 있지만.  이 작업이 빠를 수록 이전과는 다른 공기에서 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궤적을 들여다보니, 가장 먼저 부정적인 모습이 보였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기는 과도한 업무량을 쳐낼 때, 겉으론 그 일을 잘 해내며 뿌듯해하는 내가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는 의자에 멍하니 앉아 왜 이렇게 사는지 의문을 갖는 내가 있었다. 그 때의 나는 시멘트 통에 내 몸을 집어 넣는 압박감을 느꼈고 무언갈 더 빠르게, 잘 해내지 못해서 이렇게 사는지 의심했다. 내 생각과 감정을 우선으로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정해진 일을 해내야만 하는 환경속에서 내 예민함은 불편하고 부정적인 면만 강해졌다. 나의 어린 시절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에 몰입했었다. 누군가 시키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해낸 일이 글과 그림처럼 창의적인 영역이었다. 독어와 영어를 전공한 것은 내면의 소리를 넓은 영역에서, 더욱 다채롭게 표현하고 싶어서 전공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라테스 전문가 자격을 따로 배운 이유는 내 몸을 스스로 통제하는 시간에서 느끼는 자유와 평온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떤 영역이든 잘 하는 사람으로서, 잘 해서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을 선물하는데 기쁨을 느끼는 내가 있었다. 자서전적 방법을 통해 들여다본 내 삶에서, 나는 창의적으로 내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모습을 살아온 궤적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모습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내 본질에 가장 근접하게 닿아있고, 이 모습을 스스로 허락하여 드러낼 때 행복할 것이라 판단했다.


나의 자서전을 쓰는 일엔 선생도 강의도 필요없었다. 오로지 나를 위해 내밀어주는 시간만이 필요했다. 강연을 찾아 다니고 선생을 구하러 다니는 시간과 돈을 쓰기보단, 그 시간에 돈을 벌지 않더라도 나만을 위한 시간을 내는 것이 경제적으로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오히려 돈을 쓰지 않으니 아끼는 셈이다.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돈을 쓰는건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왜 자신에게 쓰는 시간과 돈은 쉬이 내지 못할까. 예민한 사람들은 이타적인 태도를 가졌고, 타인이 나보다 더 나은점이 있다고 기대하는 일이 많아서이다.  하지만 타인을 높게 사는 기대치를 자신에게 더 높이 걸고,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간을 허용하자.


나는 나만의 예민함을, 오로지 나를 섬세하게 바라보고 분석하는 에너지로 사용했다. 그러자 일이 아닌 방향성이 있는 길이 보였다. 영어 강사, 여자 직업으로 좋은 일, 일당백 커뮤니키 매니저와 같은 일적인 표현이 아닌 나에 대한 탐구심, 학문에 대한 열정, 프로답게 성장하고 싶은 욕망, 삶의 통제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 감각정보에 민감한 기질, 내 생각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일을 존중하는 마음, 타인을 향한 배려와 즐거운 순간을 선물하는 일, 세상이 말하는 안정적인 직업과는 다른 시스템을 선택하는 용기와 같은 방향이 담긴 길이 명확히 드러났다. 그리고 이 길은 나를 모두 성장을 한정하는 프레임이 아니라 다채로운 내면을 편안하게 드러내는 상냥한 표현으로 느껴진다. 이 다정한 말들은 예민한 내 모습을 실존적으로 드러내고 인정했을 때 태어났다.





#예민함 #에세이


*파이너 <교육과정 재개념화>

**파이너 <쿠레레 방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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