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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May 09. 2024

나에게 화해를 건네자 자유가 찾아왔다

경직된 몸과 화해하기

'아, 몸이 너무 시원하다. 잠이 올 정도로 편안하다. 이 느낌 뭐지?'


필라테스를 처음하고 나서 느낀 감정은 개운함이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움츠러든 긴장이 풀렸는데 마치 단단히 잠겨있던 자물쇠가 탁 하고 열린 듯, 막혀있던 기운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노곤하고 기분 좋은 느낌을 가득 품은 채로 집으로 돌아가던 그날의 느낌을 잊기 어려워 나는 몇 개월간 필라테스를 지속했다.


임용고사를 준비하던 시기라 시험 기간에 맞춰 운동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비싼 비용에도 불구하고 몸이 너무 편안하여 그만두기가 아까웠다. 하지만 필라테스가 주는 좋은 느낌을 점차 잊어갔고 바쁜 일상으로 운동은 늘 뒷전이었다. 서 있는 자세, 앉아 있는 자세가 망가져 갈수록 몸은 불편해졌고 나는 그 불편함을 예민하게 느꼈다.


해소되지 않은 불편함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몸은 점점 더 굳어갔다. 일이 끝나면 쓰러져 자기 일 수였고, 활기찬 모습은 오간데 없이 밖으로 나가기가 무서웠다. 적체된 피로감이 온몸을 짓누르자 나는 내 몸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20대엔 공부로, 30대엔 일에 매진했던 내 과거가 지금의 내 몸을 만든 것 같고, 부스러질 것처럼 약한 체력은 내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누구나 다 열심히 사는데, 누구나 다 극단을 겪으며 성장하는데, 나는 겨우 그거 하나 버티지 못하냐며 스스로를 자책했으며 굳은 어깨와 목이 싫어졌다. 몸의 불편감이 극도로 예민하게 느껴졌던 어느 날, 나는 밥을 먹지 못했다.

 



단순한 체기인 줄 알았다. 출근 전 매일 약국에 들려 가장 효과가 좋은 소화제를 찾기 일 수 였다. 저녁을 챙길 여유 없이 일을 하고 나면 퇴근 후 먹을 힘 조차 없었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되풀이 해야하는지 미래가 보이지 않았고, 하루하루를 농도 깊은 집중력으로 살아도 발전이 없다고 느껴졌다. 몸은 점차 말라가고, 신경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인생의 의미는 보이지 않았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것처럼 외로웠다. 알 수 없는 감정을 꾸역꾸역 참아가며 지내던 어느 날, 내과 약으로는 도무지 해결 되지 않는 심한 체기로 출근하지 못했다.


한의원, 내과, 운동으로도 해결 되지 않았던 내 병은 자율신경실조증으로 인한 담적이었다. 일반적인 사람에 비해 스트레스 역치가 높고 타고나길 예민한 기질을 가졌기 때문이며, 적절한 식사와 운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업무 환경상 식사를 챙기긴 어려웠으나 운동은 시간을 내어 할 수 있었다.


여러가지 운동을 새로 시도했으나 모두 나에게 맞지 않았다. 음악소리를 크게 내는 헬스나 점핑운동은 청각에 예민한 나에겐 쥐약이었고, 발레나 요가는 유연성이 따라주지 않아서 재미가 덜했다. 수영은 물 냄새와 습한 공기가 불편해서 하지 못했고 스트레칭은 따로 가르쳐 주는 곳이 없었다. 복싱은 등록하러 가던 날 관장이 없어서 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했던게 필라테스였다.


'그래 이거였지!'


오랜만에 필라테스를 하고 왔던 날, 2년 전에 느꼈던 그 시원함이 너무나 반가웠다. 운 좋게 나에게 잘 맞는 선생님들을 만나서 일주일 2-3번을 꾸준히 해냈다.




호흡으로 시작해서 호흡으로 끝나는, 호흡과 동작의 조화가 기막힐 정도로 완벽한 운동. 머리 끝부터 발가락 끝까지 내 몸을 지탱하는 근육을 미세하게 느끼고 오로지 내 몸으로 통제가 가능한 운동이 필라테스다. 온 몸에 피가 구석구석 돌고, 얼굴과 피부에 생기가 돌게 만든다.


필라테스를 시작하기 전 몸의 정렬을 맞추고 호흡을 시작하는데 매 번 할 때마다 나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평화가 올라온다. 움직이다 보면 어느 쪽 등이 짧아져있고, 어느 쪽 복부에 힘이 덜 들어가고, 어느쪽 다리 근육이 덜 쓰이는지 스스로 알 수 있는데 긴장되고 약해져 있는 내 몸을 필라테스로 달래고 풀어간다.


'교안을 들고 보느라 고개가 떨어져 있었구나, 챙기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제 조금 더 곧게 펴보자.'

'시험문제의 답을 쓰느라 어깨를 말고 있었구나, 이제 그런 일은 없으니 조금 더 어깨를 펴보자.'

'교재를 만드느라 허리를 말고 앉아 있었구나, 근데 이 자세가 소화엔 좋은 거 같지 않으니 조금 더 허리를 곧게 세워보자.'

'기운 없이 몸에 힘을 빼고 있어서 중심을 잡아주는 근육이 약해졌구나, 이제 배와 허리를 단단하게 세워보자.'


필라테스를 통해 경직되고 약해져있고, 긴장되어 있고, 기능이 떨어져 미워하기만 했던 내 몸에게 화해의 말을 건넬 수 있었다. 단 한 번도 내 몸에게 '충분하다', '잘 한다', '멋있다' 라는 등의 말을 해본적이 없었는데 스스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자신감이 생겼고 몸을 편안하게 여기게 되었고, 내 몸에 감사를 느꼈다.


왜 그동안 그렇게 몸을 미워하기만 했는지. 내가 이번 생에서 부모님을 통해 이 몸을 선물 받으며 살아왔고, 이 몸을 통해 많은 일을 이뤄냈으며, 이 몸을 통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이 몸을 통해 존재를 드러내며 살아 왔는데 나는 내 몸에게 한 번도 감사하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면서 나는 내 몸을 느끼는 감각과 인지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약해 빠진 몸이라며 스스로를 비난하고, 부정적으로 인식하던 내 몸에 온전한 감사를 느끼게 되었다. 


필라테스의 호흡, 심장의 박동, 혈액이 타고 지나가는 뜨거움, 체온 상승, 피부로 느껴지는 기구의 촉감은 예민한 사람이 내 몸의 감각적 측면을 대응하는데에 아주 좋은 훈련이다. 




'자유롭다'


내가 필라테스를 할 때 느끼는 감정은 자유다. 몸의 감각이 예민해서 어떤 한 동작을 할 때마다 느낌을 강하게 받는데, 그 동작에 집중하며 수행하면 자유롭다는 감정이 나와 내 주변을 감싼다.


'감사하다'


더 나은 움직임과 기능적인 향상을 위해 운동을 준비해주는 강사님들과 그 동작을 내 몸에 선물 할 수 있는 나에게 감사를 느낀다. 오늘 이렇게 호흡하고, 몸을 미워하는 시간이 아닌 사랑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하다.


'다정하다'


필라테스는 내가 내 몸에게 다정한 화해를 건네는 일이다. 긴장으로 굳어져있는 내 몸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작업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신체를 경험하는 일에도 다량의 감각을 느끼는데, 단순한 움직임 보단 어느정도의 기술을 써야하는 움직임이 더 적절하다. 파워하우스라고 불리는 몸의 중심을 스스로 잡고, 힘을 잘 모아내야하는 필라테스는 나에게 다정하고 정교한 움직임이다. 동작을 수행하는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나의 신체를 자각하다보면 내 몸에 통제력이 생기는 기분이 들고, 이 기분이 쌓이면 신뢰가 되며, 삶을 단단히 지켜나갈 수 있는 신념이 된다.


예민한 사람일 수록 필라테스 운동의 효과는 배로 느낄 수 있다. 호흡 뿐만 아니라 내부 근육의 민감도를 빨리 느끼기 때문에 효과가 좋을 수 밖에 없다. 예민한 감각이 필라테스를 할 때 도움이 되니 나의 예민함을 장점으로 느낀 첫 번째 경험이다. 몸과 화해하자, 마음과 관계도 화해시킬 여유가 생겼다. 예민함을 다스리고,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몸을 다스리는 것 부터 시작이었다.


예민한 당신에게 가장 맞는 운동을 찾고, 몸이 전하는 호소와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딘가 도와달라고 말을 거는게 느끼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예민한 기질을 크나 큰 장점으러 활용할 움직임으로 내 몸을 데려가고, 그 안에서 자유를 먼저 느껴보시길. 그 다음, 우리가 해결 하고 싶은 관계와 일에서 나의 예민함을 다룰 힘이 생길 것이다.



#예민함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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