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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Jun 17. 2020

인생은 지금이야

니체, 첫 번째 키워드 Amor fati

    



내 운명을 사랑하기로 했다     
생(生)은 명령이다 생존 경쟁이 아무리 어렵고 부조리가 난무해도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명이다
「유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p.94      


삶에는 고난이 존재한다. 성공, 기쁨, 희망의 순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절망, 불확실, 불안과 같은 역경도 우리 인생을 차지한다. 실패에 대한 나의 첫 번째 감정은 나에 대한 원망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기 싫었다. 머리로는 내 실력의 부족함을 알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싫었다. 다른 길을 찾아 나서기에는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나의 인생의 성공은 오직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었다. 시험에 합격해야 대학원도 갈 수 있고, 여행도 갈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기 싫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11월, 추운 날씨만큼이나 차가운 허망함을 마음에 품고 한 치 앞이 어두운 앞날을 고민했다. 나는 나의 고민으로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내가 노력해서 이룰 수 없었던 것은 없었다. 딱히 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것은 아니지만 나는 항상 만족을 몰랐으며, 수학 문제 하나가 안 풀리면 몇 시간 동안 눈물 콧물을 다 짜내려 가며 기어이 풀어냈다. 그 순간 나에게 문제를 푸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사명과 같았다. 무언가를 쉽게 사랑하지는 않지만, 목표하는 바가 생기면 시간과 몸을 던져 사랑해왔다. 어렵고 딱딱한 상황을 견디는 힘이 유약하지는 않지만 임용 시험만큼은 그 강도가 남달랐다.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1년이 넘도록 고민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은 "받아들이고 사랑하기"라는 자세였다. 나의 열망, 열정, 고난, 아픔, 실패까지 내가 먼저 사랑하기로 말이다. 그저 그 모든 과정들을 인정하고, 결과를 받아들이고, 모든 과정을 사랑하기로 한 마음은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동력이 되었다. 살아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사명이라는 책의 구절로서 이 과정에 대한 정리를 끝낸다.     


장거리를 항해하는 배일수록 풍파를 만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하기가 어렵다. 풍파는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열정의 불꽃을 피우는 사람들에게는 평생의 동반자이다. 「유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p. 63
스스로를 책임지고 살면 된다     

철학, 실존, 그리고 니체를 읽기까지 내가 니체를 선택한 이유는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다시 답변하기 위해서였다. 내 안에 숨은 재료가 무엇인지는 꺼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어떻게 내 안의 모습을 꺼내 볼 수 있는지는 본인이 “직접” 무언가를 시작해야 볼 수 있다. 책 읽어봤자 인생의 답이 나오지 않고 책 없이도 성공하는 사람들은 많다는 일말의 얘기를 원한다면, 그냥 책을 읽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문장과 음성을 찾기 위해 책을 읽기로 ‘한 것’이다. 책은 나에게 고요와 기쁨, 앎을 주는 오아시스이다. 그래서 선택하는 것이다. 


과거의 내가 2018년 11월 24일 오전 9시에 시작하는 단 ‘하루’의 시험에 참가자격을 얻기 위해 2010년 8월부터 2014년 12월까지‘4년’의 시간을 투자한 것도 나를 책임 지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 시간에는 나의 행동을 둔탁하게 만들었던 많은 생각, 교직 복수전공을 승인받은 기쁨, 70명의 영문과 학생 중 1명의 독문과 학생으로 이방인이 되었던 불편함, 두 개의 교원자격증을 발급받았을 때의 성취감이 모두 존재한다. 하루짜리 시험을 위해 4년을 스스로 의심해가며, 믿어가며, 시도해보며 살았다. 앞으로의 삶도 사건만 바뀔 뿐 근본적인 물음과 대답은 비슷할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대해 "스스로를 책임지는 선택을 하며" 살면 된다고 말할 것이다.

매일 낯선 나를 마주하고 만나며 살겠다는 대답만이 분명하다. 건강하기 위해 운동하고, 나를 아이처럼 기쁘게 하는 외국어를 공부하고, 겸손하기 위해 책을 읽고,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글을 쓸 것이다. 


Living in the moment. 순간에 ‘잘’ 존재하다 보면 하루, 한 달, 일 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진다. 나는 내 손에 올려진 굳은살을 믿는다. 앞으로 뭐하면서 “먹고살래?”라는 밥벌이에 종속되는 정의에 함몰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매우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그 속도를 더 빨리 추월할 개인적인 능력은 없다. 정신병으로 말년을 보냈던 니체는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은 육신을 이끌고 글을 쓰는 행동으로 자신의 운명을 사랑했다. 나 또한 나의 현실에서 기쁜 일과 힘든 일을 사랑하며 살 뿐이다.



지나간 일을 후회만 해서 뭐해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수와 실패로부터 깨달음을 배우고, 똑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유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p.95 


어린 시절 극심한 가난 때문에 학비 부담이 없는 공업 고등학교로 진학해 용접을 배우고 생활전선으로 뛰어든 한 인물이 인생의 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업을 포기했다면 니체의 핵심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을까. 세상 물정을 모른 채로 노래만 부르던 한 가수가 2000억이라는 사기로 인해 노래하는 인생을 포기했다면 '아모르파티'라는 신나는 곡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과거의 실패를 완전히 망각할 수 없다면 자신의 과거를 유의미하게 해석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과거에서 배운 것, 실패에서 얻은 것들을 시간을 두고 정리하다 보면 다시금 자기애가 솟아나는 경험을 할 것이다. <니체>는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고유명사이다. 아쉬웠던 시간을 후회라는 감정으로 소비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면 아래 노래로 잠시만 시선을 돌려보자. 위로와 조언이 필요하다면 나처럼 니체를 쉽게 풀어낸 책을 읽는 것도 추천한다. 빈 종이에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나열해보고 그 안에서 배울 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찾다 보면 과거에도 현재에도, 잘 "실존" 해 있는 당신을 만날 것이다. 또한, 단단하고 유의미한 당신은 미래에도 잘 실존할 것이다.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캬.. 




<참조 도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유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유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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