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기 Jul 06. 2020

어릴 땐 공부 잘했는데 지금은 왜 그렇죠?

 아까운 실력

유난히 학업 성취가 높은 애들이 있다. 굳이 선생님이나 부모님을 의식하지 않는데도 배우는 것 자체를 즐기는 아이들. 수업이 시작되면 눈이 똘똘해지고 묻는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쪽지시험을 치면 단연 좋은 성적을 받는다. 자신의 성취를 마음껏 발휘하는 수업을 보내고 나면 100점짜리 시험지는 그 학생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늘의 수업을 '잘' 듣고 가는 것, 그게 전부다. 자주 보이는 건 아니어도, 가끔 보이는 친구들이다. 학생의 지적 잠재력을 더 키워주기 위해 학년이 다른 상위반 수업으로 보내는 것은 적당한 처사이다.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수준에 맞는 수준별 수업이 더 합리적이다. 초등학생 때 영재 아닌 학생 없다는 카더라처럼 나이가 어릴수록 똑똑이들은 많이 보인다. 딱, 그 관건을 만나기 전까진.



어릴 때 공부 잘했는데 지금은 왜 그렇죠

우리나라의 학제를 기준으로 봤을 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는  지점이  번째 관건이다. 요구하는 과제, 수행해야 할 시험의 수준, 학습의 내용이 복잡해지고 어려워며 양도 많아진다. 브루너의 나선형 교육과정에 따르면 학습 내용은 동일한 내용을 가르치되, 점차 폭과 깊이를 더하여 조직해야 한다. 어떤 내용을 먼저 가르치고 나중에 가르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며 대부분 단순에서 복잡으로 가는 형식을 사용한다. 영어 교과에 서서는 현재 완료 시제를 배우기 전에, 현재 시제부터 배우도록 조직힌다.

문제는 위로 올라갈수록 난이도(Difficulty)가 함께 올라가는데 시간과 노력 그리고 오류가 포함된 <실패> 순간을 많은 학생들이 견디기 어려워한다. 학습의 문제와 더불어 사춘기라는 심리적 변화를 겪으면서 자아는 커지고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자라난다. 비교그룹을 만들게 되고,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인지 파악하게 된다.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서 '한 번에' 했던 일을 '두세 ' 거쳐하는 것에 대해 상처를 많이 받는다.

학업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상위 단계로 올라가는 커브를 돌아야 하는데, 커브길을 가기도 전에 멈추거나 커브를 돌고는 있지만 심적인 괴로움을 많이 겪는 학생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커브길까지 오는 것만 해도 힘든데, 커브에서 보이는 점수가 자신의 자존감과 연결되는 현실이 마음을 더 힘들게 만든다. 커브를 돌기 힘들 때 소위 '현타'를 받는다. 본인도 학부모님도 이 지점을 겪는 고통이 크고 잦을수록 질문은 똑같다. "어릴  공부 잘했는데, 지금은  그렇죠?"




교과 과정 자체가 문제가 있었다면, 계열화 방법이 틀린 것이다. 현재 완료 시제를 배우기 전에는 현재 시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현재 완료를 배우고 나서 바로 가정법 동사를 공부하라고 한 것이면 단원 간 연속성이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경우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발달 단계와 심리적 부담감이 가장 문제이다. 같은 내용으로 같은 수준의 문제를 배부한 후 점수라는 지표는 피드백으로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다수의 학생들을 교사가 1:1로 매번 관리하기는 매우 어려운일이다. 한계점이 분명히 있음을 명시한다. ) 마음껏 실패할  없는 분위기가 학습자의 심리를 위축시킨다. 하지만 이미 시행되고 안정화되어 있는 제도만을 탓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자칫 아이에게 ' ' 하는 버릇을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고정 마인드셋에서는 자신의 능력과 동기 관리를 통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스스로를 발전 중인 존재가 아니라 완성된 제품으로 여기기 때문이죠. 그리고 완성된 제품이기에 자신을 보호하고, 한탄하고, 남 탓을 할 수밖에 없지요.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건 생작조차 하지 않는 겁니다. p. 155


너는 영재, 너는 남다른 아이, 너는 뛰어난 아이라는 수식어를 왜 '공부'를 잘하는 상황에서만 붙이게 된 걸까? 지금 학령기에 있는 학생들은 '다음에 더 잘해볼 기회'와 이미 잘한 것들로 '남다른' 아이라는 응원을 받은 기억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출석하는 것은 다행이고, 어제보다 1개 더 잘 알았다면 성장한 것이고, 다른 분야에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기적이다. 어릴 땐 공부 잘했는데, 지금은 왜 그렇냐고 생각하기 전에 노력해볼 기회를 준 적 있는지노력 해 본 경험이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노력해봤다면, 무엇이 잘되었고 잘못되었는지 반성해 봤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능력이 당신을 정상에 오르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정상을 지키게 하는 건 근성이죠. 적절한 준비 과정 없이도 자동적으로 정상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최고의 자리에 한 번 올라도, 아니 이전처럼, 아니 그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려는 근성이 정말 필요합니다. 계속해서 승리를 거듭하는 운동선수나 팀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들은 능력 이전에 정말 뛰어난 근성을 가졌구나'라고요. p. 147




<참조 도서>

「마인드셋」-캐럴 드웩

매거진의 이전글 얘야, 매번 잘하려고 할 필요 없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