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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와 이슬비가 어떻게 다른지 며칠 전부터 궁금했다. 검색해 보니 빗물의 양을 기준으로 삼아 는개, 보슬비, 이슬비, 가랑비 순서로 구분할 수 있을 듯하였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 내가 맞은 비가 보슬비인지 이슬비인지 여전히 분명하지 않았다. 국어사전에는 보슬비를 설명하면서 바람이 없는 날 내리는 가는 비라고 한다. 이슬비나 가랑비를 설명할 때에는 등장하지 않는 ‘바람 없는'을 명시하고 있다. 어쩌면 는개, 이슬비, 가랑비 순서를 기본으로 두고 이슬비와 유사하지만 바람이 없고 성긴 비를 보슬비라고 부르나 싶다.
비 이름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과연 중요한가? 별로 그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익숙한 단어라서 그 차이가 궁금해진 듯하다. 갑자기 ‘궁금'이라는 단어는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졌다. 궁금을 한자어로 표기하면 임금이 거처하는 ‘궁궐'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궁금하다의 궁금은 한자어가 아닌 듯하다. 심지어 궁금은 제주도 방언 ‘굼굼'에서 유래하였고 ‘굼굼'은 이집트 상형 문자 gmgm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블로그까지 보았다. 우리말 샘에서 ‘궁금'의 제주도 방언으로 ‘굼굼'을 소개하고 있다. 이집트 발음이 제주도를 거쳐 우리말 표준어로 자리 잡았다는 가설이다.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과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집트 상형문자는 로마가 기원전 30년부터 이집트를 지배하면서 1000년 이상을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서 잊혔던 문자 아닌가?
그런데 1799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군의 장교 피에르 부샤르가 로제타석을 발견하면서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이 가능해졌다. 로제타석은 나폴레옹 군대가 이집트를 침공해서 성을 쌓는 과정에서 군인 한 명이 축성용 돌무더기 속에서 우연히 발견하였다. 그전부터 피라미드와 미라를 비롯한 고대 이집트 문명 유물이 엄청나게 발견되면서 이집트 문자 해독에 대한 연구는 열기를 띠었지만 돌파구를 찾지는 못하였다. 그러든 차에 이집트 상형문자, 상형문자 간편체, 고대 그리스어로 각각 적힌 비석인 로제타석이 발견되면서 기존 연구자들에게 큰 희망으로 다가왔다. 로제타석 발견 소식을 접하고 당시 고대 언어를 연구하던 학자들은 10년 이내 이집트 상형문자를 완전히 해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30년 이상 걸렸다. 이 해독작업에는 영국의 언어학자 토마스 영(Thomas Young)과 프랑스 언어학자 장 프랑수아 샹폴(Jean-Francois Champollion)이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완전히 묻힐 뻔했다가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되어 세상에 알려져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인물로 비비안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가정교사와 베이비시터로 평생을 보낸 비비안이 남긴 수천 통의 필름이 그녀가 죽은 후 경매시장을 거쳐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경우이다.
비비안은 평생을 뉴욕과 시카고에서 보모로 지내면서 만 오천 통이 넘는 필름 롤을 남긴 특이한 인물이다. 비비안은 사진을 왜 찍었을까? 비비안은 사진작가로서 혹은 기록이나 고발 또는 예술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평생 동안 사진을 찍은 것 같지는 않다. 불안정했던 어린 시절, 부모의 방기, 가계에 드리운 우울증 분위기(오빠인 칼은 20대 후반에 조현증 진단을 받음). 어쩌면 존경받지 못하는 신분, 그러나 매일 접하는 사람들은 뉴욕 상류층, 자신의 자리를 세상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진은 비비안에게 일종의 안식처가 아니었을까?
40대 이후 시카고로 이주하여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보모 노릇을 하면서 1만 5천 통이 넘는 필름 롤을 남겼다. 이 필름 롤은 비비안이 사망하기 두 해 전인 2007년 경매를 통해서 존 말로프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그 경위를 살펴보면, 거주지에 보관하기 어려울 정도로 필름 양이 늘어나면서 비비안은 스토리지를 임대하여 자신의 필름을 보관하였는데, 그나마 임대료를 체불하면서 스토리지 업자가 임대료를 보상받으려고 경매에 필름에 내놓은 것이었다. 그 이후 이야기는 상상을 넘어서는 극적인 전개를 보이며 비비안을 세상에 드러내게 하였다. 혼자 즐기면서 찍는 사진 이야기를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또 있다. 페펙트 데이즈에 등장하는 히로야마이다. 그는 도쿄 시내 화장실을 청소하는 미화원이다. 늘 정해진 일과 대로 하루를 보내고 그 속에서 점심을 먹는 공원의 키 큰 나무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면서 하늘 배경의 나뭇잎을 찍는다. 히로야마 사진은 비비안 사진보다 훨씬 순수하다. 물론 그만큼 예술성은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