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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Dec 17. 2019

`폭망`의 연애사

너의 서른 살은 어떠니?


서른 살을 맞이했던 겨울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삼 년 밖에 되지 않은 과거지만, 아주 까마득하고 대수롭지 않은 날이었던 게 분명하다.

구남친과 술을 마시고 같은 30대가 된 것을 축하했겠지,

그 시절의 나는 그런 일상을 살던 사람이니까.



20대 중반에 시작한 연애는 30대 초반이 되어서 끝이 났다.

시작부터 끝을 생각한 연애였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는 데 4년이 넘게 걸렸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조심스러운 것은, 내가 시작부터 결별을 생각했다는 이유로,


내 연애가 불행했다고 혹은, 상대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단정 짓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


상대는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일상을 공유했던 사람이지만  나에 대해서 가장 모르는 사람이기도 했다.

상대를 위해 서로 더는 타협할 게 남지 않고,

둘 중 한쪽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러서 우리는 끝이 났다.



이별 직후 일 년은 혼자 있는 시간을 만끽했다.

매일 산책을 하고 책을 보고 영화관을 가고 전시를 보았다.

도쿄 시내의 30곳이 넘는 공원을 걸었고, 하루에 보통 2만 보 넘는 산보를 했다.

눈을 뜨면 걷고, 앉으면 먹고, 일어나면 걷는 날이 일 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몸을 혹사했던 결과였을까, 3개월 동안 8kg이 빠졌다.

하나뿐인 내 혈육은 병원비 비싼 일본에서 종합검진을 받으러 가자고 나를 닦달했다.


평생을 다이어트해도 안 빠지던 살이 갑자기 빠지다니, 이건 심각한 문제라고, (나니...?)

나는 결국 끝난 연애를 뒤늦게 고백해야 했다.


(오빠가 꽂힌 지점은 '4년의 연애가 끝난 나의 슬픔'보다는

"어떻게 4년 동안이나 나한테 말을 안 할 수 있어?"였고,

나를 엄청 오랫동안 괴롭혔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반년은 지독하게 외로웠다.

길을 걷다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음악을 듣다가도 그냥 기분이 발밑으로 툭 떨어졌다.


단언하건대 특정 대상에 대한 그리움 때문은 아니었다. 


타인을 통해 나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사라졌다는 아쉬움,  아무 때나 전화해서 일상을 공유하거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끊고 싶을 때 잘 자라는 인사를 할 대상이 사라졌다는 슬픔이 불쑥불쑥 찾아왔다.


이별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슬픔에 취약했고, 그것을 이겨낼 방법을 몰라서


(진부하게) 술을 마시고 새벽에 친구를 불러내거나,   근처 가로수길을 몇번이고 왕복했다. 그렇게 반년은 슬픔을 질질 흘리고 다녔다 (과거의 나, 너 진짜 좀 그렇다, 별로다.)   







30대가 되어 익숙한 관계를 끊어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노력아닌 노력을 했는데 네 번의 소개팅을 했고, 세네 번의 썸을 타다 때려치웠고,


한참 어린 연하를 그해 가장 추운 날에 다시 만났고,   새벽까지 술을 먹고 만취해서 연어같은 귀소 본능 안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제 작년쯤?그 시절 나는 평생 마신 술보다 더 많은 술을 먹었다! 에너지가 차고 넘쳤군)


내가 그동안 어떻게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모를 만큼, 인연에 집착했다.


그동안 내게 가장 평탄했던 게 연애였는데,

그게 뜻대로 안 되니 괜한 오기가 생겨서 괜히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뭐하나 흘러가는 대로 두지 못했다.




그리고 30대의 연애는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궁서체!)


가령 상대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어떤 취향을 가지는지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따로 있는 듯,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목적만을 들이민다.

나에게도 예스 혹은 노의 대답을 끌어낸다.

내가 뒷걸음질 치면 그 길로 끝이다.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이게 시기적 특수성인지 30대의 연애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30대를 보낸, 작업실의 언니 말에 따르면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  자신에게 여유를 줄 수 없는 사람들이 가성비를 따지듯 연애도 결과주의로 스스로를 내모는 거라고 했는데,


언니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정말 나의 상황이나, 30대의 특수성만의 문제가 아닌 거 같아서

흥이 났고, 그 순간 어깨춤을 추었다. (파. 워. 단. 순)


다 괜찮다는 듯이, 내가 아주 잘하고 있다는 듯이 언니는 나를 꽉 안아주었다.

얼마 전 유럽에 다녀와서 한층 밝아진 얼굴과 따뜻해진 모습으로 나에게 든든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어쩐지 이제 정말 잘할 수 있을 거 같은 근사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 올해의 나는 아주아주 정제되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어떤 사건과 멀어졌을 때,

충분한 시간이 지나고나야

자기 객관화가 가능하고, 자기 연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수양하는데 지난 일 년을 지불한 셈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연애에 실패한 나는 자기 객관화를 거쳐서...  폭망의 연애사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기억이 어디 있더라...? 주섬주섬)

더하기 이제 더이상은 절대 적당히 타협하는 관계는 결코 맺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의지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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