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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Nov 24. 2019

가족을 싫다고 말하면 왜 안 될까?

세상에 가족만큼 불공정한 거래가 어디있다고!



권여선의 단편 ‘이모’에는 가족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다가 50 즈음에 홀연 쪽지 한 장만 남기고 사라진 ‘시이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화자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나’이지만, 내가 맺는 유대의 대부분은 시이모와의 관계이며, 소설 전반 또한 이모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도박 빚에 시달리는 동생을 건사하고, 그렇게 모든 것을 다 내어주던 맏딸(화자에겐 시이모)인 이모가 사라진 건 53살이었다. 이제라도 나를 위해 살고 싶다는 쪽지를 남기고 비장하게 사라졌다가, 췌장암으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가족들 앞에 나타난다. 


어느 날 이모는 자신을 좋다고 하는 남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성가시게 느껴져서 돌연 그 남자의 손에 담뱃불을 눌러 꺼버리고, 무언가에 홀린 듯 집을 떠나서 잠적한다. 

한 달에 60만 원만 지출하는 최소한의 생계만을 유지하며 이모는 그렇게 자신을 위한 삶을 영위한다. 


이때 이모는 자신의 전사를 들려줄 인물로, 다른 사람이 아닌 조카의 아내인 화자를 선택하고, 

돌연 사라진 이후 자신의 삶을 서술한다. 이 과정에서 이모의 발화인 


“나는 네가 글을 쓴다는 것도 좋지만 내 피붙이가 아니라는 게 더 좋다. 

피붙이라면 완전히 공평하고 정직해지기는 어렵지.”


라는 고백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모가 느끼는 가족에 대한 불편은 누구에게나 유효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간 학습되어온 정상 가족, 가족의 행복이 얼마나 허상인지 우리는 수많은 경험과 지인 서사로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가족만큼 불공정한 거래가 있을까.

가족 공동체 중에서 가장 유순하고 여린 개인이 특히 더 많은 것을 희생하고, 

구성원이 서로 참고 감내하면서 외관상 '정상가족'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 않은가.




가족만큼 불편한 존재가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꽁꽁 싸 뒀다가 

일 년에 한 번만 설레는 마음으로 꺼내서 일주일 정도 더없이 행복하게 보내다가 

다시 조용히 창고 속에 넣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끝도 없이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끝은 항상 이런 마음을 먹는 것 자체에 대한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윤리고 죄책감이고 하는 것들이 사실은 사회가 심어 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왜 나는 자유롭지 못한가.(세뇌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고백하자면 나는 얼마 전부터 '유순하고 착한 구성원'을 그만 두기로 마음먹었다. 

며칠 전에는 엄마와 카톡으로 싸움을 하다가 결국 얼굴을 보고 울고불고 싸웠다. 

자기주장이라고는 없던 딸이 30살이 훌쩍 넘어서 갑자기 ‘엇나가니’ 엄마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 거다. 


이유가 무엇인지 경제적인 이유인지, 심리적인 여유가 없어서인지, 엄마는 대화를 시도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싶다고 하지만, 

사실 나는 그동안 엄마한테 ‘가족이 주는 불편’을 말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엄마와의 애착에서 벗어나고 가족의 유대에서 조금 떨어지고 싶다고, 말하면

그게 다른 구성원에게 행여 상처가 될까 봐, 차라리 내가 참고 피하고 말았다.


구체적인 이유를 언급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했고, 안 괜찮은 상황을 '괜찮다'라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50이 넘어서 훌쩍 가족을 떠난 시이모의 마음으로, 

불공정한 거래는 어느 누구와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권여선의 글을 빌려 이렇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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