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진짜 마지막 입원이다!
7월 2일 일요일에 백혈병 치료의 최종 보스인 '이식'을 하러 입원했다.
이 순간을 얼마나 미루고 싶었는지, 또 동시에 바라왔는지 모른다.
재발환자인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가 아니기에 이식과정이, 또 그 후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지 너무나 알기에 도망치고 싶었으나, 두 번째 이식은 첫 놈과 달리 나에게 병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선물해 줄 수 있다는 자그마한 희망 덕에 기다려지기도 한 것이다.
그 아무리 치유의 순간을 기다렸다고 해도, '머리를 빡빡이로 미는 것'은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리 자그마한 희생이 아니었다. 이제야 머리가 묶여서 남들처럼 머리에 집게핀도 꼽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놈들을 보내줘야 한다니. 내가 21년 3월부터 애지중지 키워온 잡초같은 녀석들과 한 순간에 이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를 자르는 순간까지 마음이 찢어졌다. 지난 2년간 비교적 튼실하게 자라느라 애써준 머리카락이들을 위해 초췌한 몰골을 무릅쓰고 셀카도 몇 장 남겼다.
어제는 방사선을 끝내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수녀님이 기도를 위해 방문해주셨다. 나는 정식 천주교 신도는 아니지만 묵주반지를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끼고 다니는 패션 신도이다. 그랬던 내가 수녀님과 신부님의 엄청난 추진력으로 신부님의 축성까지 받게 되었다. 얼떨떨하긴 하지만 그 힘이 나를 지켜줄 수만 있다면 내가 못할 게 뭐가 있으랴.
단순히 기도를 해 주러 오신 줄 알았던 수녀님과 상담까지 하게 되었다.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인생얘기를 가볍게 했다가, 나중엔 감정이 복받쳐서 병실의 다른 환자분들이 듣고 있다는 것도 잊고 솔직한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이야기를 다 마치고서야 '내가 희망에 가득찬 다른 환우들 앞에서 괜한 소리를 했다'는 자책감과 민망함이 밀려왔다. 수녀님은 내 말을 다 들으시곤, '이 시기는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해 주셨다. 수녀님이 해 주신 얘기가 다 공감이 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삶의 굴곡진 파도를 여러번 넘어 왔고, 나 자신과의 대화도 꾸준히 해왔기에, 이 시간이 아무리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해도, 그만하고 싶었던 것이다. 수녀님이 해주셨던 희망찬 얘기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잘 해내고 있다'는 그 말만은 너무나 크고 따뜻해서, 그 말과 함께 내 손을 잡아주시는데 그저 하릴없이 눈물이 났다. 마치 내 모든 근심을 눈물로 씻겨 내리듯이 말이다.
대화가 끝난 후 다시금 나와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생각을 할수록 명확해지는 부분도 있었다. 나는 욕심이 많아 과거, 현재, 미래를 다 통제하고 이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할 일은 그저 '그저 닥친 일에 흐름을 타는 것'이다. 항암이 힘들면 그 부분을 해결하면 되고, 부작용이 오는대로 하나씩 해치우면 된다.
퇴원하고 내 미래가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은 일단 무사히 이식받고 집에 돌아간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지금 걱정을 미리 사서 하는 것은 산에 오르기도 전에 하산을 어떻게 할까 걱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돌이켜보면 잠을 제때 자지 못한 것, 엄마의 건강한 집밥보다 자극적인 외식을 즐겨한 것 등 후회되는 순간이 장대비처럼 쏟아진다. 그러나 평론가 이동진의 칼럼 <터널을 지날 때>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결국 삶의 단계들을 지날 때 중요한 것은 얻어낸 것들을 어떻게 한껏 지고 나가느냐가 아니라, 삭제해야 할 것들을 어떻게 훌훌 털어내느냐 인지도 모른다.' 지금 내게 필요한 태도도, 지난날에 대한 자책이 아니라, 현재를 균형있게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즉, 중요한 것은 현재 내가 바로 지금이다.
입원 후 어제까지 이발, 방사선치료를 끝냈고 오늘부턴 이식 전 마지막 항암 처치를 한다. 첫 이식 때는 이틀밖에 하지 않았던 약물 항암을 이번엔 무려 6일이나 한다고 한다. 3배로 길어진 기간에 잠시 겁을 먹는다. 두렵고 막막하지만, 현재만 생각한다면 이겨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또한 무탈히 지나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