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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원 Jan 20. 2024

나에게로 가는 길

미래 나의 책 제목

1.


여러 인문학 책을 읽다보면 각각의 말들이 서로 대화라도 한 듯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결국은 현재를 살아가야 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인정하고 긍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자신을 긍정하는 데에는 '열심히 하는 나', '뚱뚱하지 않은 나', '예쁜 나'와 같은 조건이 필요없다. 그저 나 자신인 것 자체로, 나는 나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백혈병을 만나고, 나는 변해버린 내 모습을 많이 낯설어했다. 나를 구성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조건들이 변했다.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고 나쁘지 않은 외모에 공부를 열심히 하며, 독기있게 살아간다고 생각했던 예전의 '나'와는 단절되었다. 항암 부작용 중 신경독성이라는 독한 아이 때문에 내 다리엔 장애가 생겨 나는 지금 자전거를 탈 수 없다. 심각한 저체중에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 있는 핏기 없는 모습은 미인대회 미인상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이제는 건강상의 이유로 내가 욕심내는 일을 위해 몸을 혹사시킬 수도 없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나를 그리워했다. 다리가 망가진 후에는 특히 그리움이 심했다. 다리가 오랜 기간의 재활에도 회복되지 않자 '걷지 못하는 나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다. 한 번은 아빠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길을 지나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유리병을 던진 적도 있다. 이 '묻지마 테러'가 내 다리때문은 아니지만 열등감에 휩싸여있던 이땐 모든 게 '비루해진 내 처지' 탓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끈질긴 재활 끝에 휠체어를 벗어나며 끝없는 자기연민과 비하는 잠시 접어졌다. 하지만 재발이라는 두 번째 시련을 맞딱뜨리며 다시 존재에 대한 회의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 이식을 하면 나는 '내가 원하던 내 모습'과 한층 더 멀어질텐데 그걸 과연 '나'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살아가려면, 치료할 힘을 얻기 위해서는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했다. 많은 책을 읽었다. 때로는 심리학 책에서, 때로는 소설 책에서 많은 위로와 구원을 얻었다. 거창한 과제라고 생각하고 대단한 결론을 기대했지만 내가 찾아낸 해답은 그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내가 나"라는 자명한 결론이다. 하지만 자명해보이는 이 문장에는 이전과 다른 힘이 있다. 바로 '나'를 정의하는 데에 어떠한 조건 붙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쁘지 않아도, 똑똑하지 않아도, 건강하지 않아도 그것이 나이며, 그 자체로 나를 사랑할 이유가 충분하다. 살아있는 것 자체로 내가 장하다. 그리고 그런 대견한 내가 그려나갈 인생이 기대된다.


생각해보면 나는 '완벽한 나'만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완벽의 조건도 결국 내가 정한 것이다. 긍정확언의 대가 루이스 헤이는 이런 말을 했다. "내 머릿속 유일한 사상가는 나 자신뿐"이라고. 회복탄력성의 저자 김주환 교수도 유사한 말을 했다. 즉, 내가 생각을 바꾸면 세상도 바뀌는 것이다. 완벽은 허상이며, 개성 다른 사람 한 명 한 명 모두 충분히 스스로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다.





2.


그렇다면 내가 겪는 시련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예전에는 그저 극복의 대상이라고만 보았다. 물론 맞는 말이다. 암과 싸워 이겨야 내가 살아나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그걸 극복해낸 나 자신이 버텨낸 귀한 시간이기도 하다. 결국 그 기간조차도 내가 기억해야할, 내가 빛난던 순간들인 것이다.


아프기 전 내가 살아가던 일상을 빛이라고 한다면, 고통의 기간들은 그저 그 '빛'을 되찾기 위한 터널, 어둠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저 어둠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병에 걸림으로써 내가 얻게 된 '빛'들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우선 가족들과 같이 살며 끈끈해졌다. 엄마의 건강한 음식을 매 끼니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힘든 시간을 거치며 역지사지를 배웠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사소한 것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없이 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그 시간에 영화도 많이 봐 문화적 교양이 늘었다. 방청소도 안하던 내가 철저한 위생관념을 갖게 되었다. 진로에 대한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행정고시 합격만이 무조건 답이라고 생각했고, 포기하기 싫어 놓지 못했지만, 세상에 다른 길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고시와 맞지 않는다는, 뼈저리게 아프지만 어렴풋이 계속 느끼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꿈을 고민하는 것이 불안하지만 흥미롭기도 하다.


그 중 가장 큰 수확은 나를 이해하고 찾아가게 되었다는 이다. 이전에는 세상에 쫓기며 끌려가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주도적으로 삶을 유영하는 느낌을 희미하지만 알아가고 있다. 이전에 내가 시련이라고 생각했던 기간을 다르게 바라보니 보이게 되는 것이 많다.





3.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 모든 생각들이 아직은 정리가 되지 않아, 글도 아직 정리가 안되어 중언부언 난잡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렇게 글로 하나씩 풀어나가다보면 정리가 되지 않을까하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거미줄같이 난사되는 이 생각들이 정리가 되면 <<나에게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하나 쓰고 싶다~!



반가운 2024

p.s.

내가 작년에 썼던 글이 문득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이렇게 키보드를 다시 두들기게 되었다.

1년 전 내가 바라던대로, 살아서 이렇게 글을 다시 쓸 수 있음에 감사하다.


앞으로의 내가 계속 무탈하고 행복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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