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워이 Mar 02. 2024

우리는 우리의 이름이다

못다 이룬 꿈

8년전 새내기 시절

갓 대학에 상경해서 들뜬 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희망과 시작의 대명사, 봄이 오고 있다.

내가 사는 샤로수길에서도 순수한 얼굴들의 무리가 떼를 지어 다닌다.

8년 전의 나를 문득 되짚어보며, 온갖 멋진 계획들로 가득찼을 그들의 머릿속을 상상한다.


그렇다면 나는 요즘 무엇을 생각하나.

아직 추운 날씨 속에서도 나뭇가지 위 새순은 자라나는데, 아직 내게는 그런 새순이 싹트지 못했다.

갈 길이 그려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해서 문제이다.


두 번째 이식을 받고,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려해 관심이 가는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

학교에 다시 돌아가기 전 합격을 하는 걸 목표로 삼았는데, 시간이 많으면서도 부족하다.

올해 시험을 치지 않음에도 마음은 계속해서 조급하고 몸은 그를 따라주지 않는다.

초반엔 새로 배우는 것이라 몰입해서 하곤 했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아직은 그냥 더 놀고 싶은건가.

(몸이 괜찮아져서 하는 배부른 고민이긴 하다.)


오늘은 그래서 공부를 하기 전 산책을 하기도 했다. 봄을 맞이하는 하늘은 이유 없이 그냥 좋다.

하지만 환기도 잠시, 집에 오자마자 강의를 몇 분도 채 듣지 못하고 잠들었다.

오늘 계획도 해내지 못한 스스로에게 실망하며, tv를 튼 채 침대에 누워 게임을 했다.


-


tv에서는 김창옥쇼가 틀어지고 있었다.

챙겨보는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재수할 때 담임 선생님께서 짬짬이 틀어주시던 거라 귀에 익었다.

김창옥의 원래 꿈은 성악가였고, 강사로 살아가는 기간 중에도 꽤 오랜 기간동안 보컬 레슨을 받았다고 했다.

언젠가는 노래로 무대에 오르리라 다짐하며 그렇게 두 개의 마음을 가진 채 살아가다 얼마 전에야 노래를 보내주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 데 갑자기 눈물이 고였다. 당황스러웠다.

왜라는 질문을 떠올리기도 전에 두 가지가 가떠올랐다.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처럼 남아있는, 어쩌면 남아있을 두 가지. 서울대와 행정고시.

김창옥의 말을 들으며 휴지통엔 남아있지만 소각장으로까지 보내버리지 못한 마음 속 폐기물이 꺼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 나의 싱숭생숭함은 못다 이룬 꿈들 때문이었구나.


이 나이 먹고 아직까지 대학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과 직면하기 싫어 계속 마음 저 한 켠에 눌러두었던 단어인 샤대. (생각만으로도 참 못난다는 말이 먼저 나와서 밖에서 얘기를 꺼낸 적도 없다.) 물론 내가 그 대학에 당연히 가야할 실력이었는데 가지 못해 그런 건 아니다. 그저 수능시험에서의 운이 입시에서의 운까지 따라주지 않았다는 야속함에 더욱 가까운 것이다. 어쩌면 수능 이후 아직까지 인생에서 더 나은 성취를 이루지 못했기에 남아있는 미련일지도.


행정고시에 대한 감정은 그보다는 더 복잡하다. 행시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었다. 국가를 위해 일하고 싶었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정책을 짜고 싶었다. 세종시를 가는 건 싫었지만 그래도 합격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공부를 할수록 내가 psat과 맞지 않다는 걸 뼈아프게 깨달아갔고, 합격이 불투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시험을 놓지 못하고 있던 순간 병으로 인해 강제로 포기당했다.


솔직히 처음엔 후련했다. 자존심이 센 편이라 psat 때문에 시험을 접고 싶다고 사람들에게 밝히기가 두려웠는데 좋은 핑계가 생긴 느낌이었다. 지금도 달라진 내 체력으로 힘든 시험준비 과정을 다시 견뎌낼 자신이 없다. 설사 합격을 한다 하더라도 건강한 사람의 체력도 갉아먹는 그 고된 일을 겪어가기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접은지 4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아직까지 행시를 떠올리는 내가 직접 그만두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김창옥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며, 내가 꽤 공직에 진심이었구나 깨달았다. 내가 이루지 못했던 시험이어서가 아니라, 열망했던 시험이어서 더 아리게 느껴졌나보다. 이제는 첫사랑을 떠나보내는 마음으로 시험을 놓아보내려 한다.


'결과'적으로 이루어내지 못한 내 자신도 보듬으려 한다.

시험에 합격해야만, 자랑스러운 딸이어야만 내가 나인 것이 아니라는 말을 믿어보려한다.

일과 결과로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나는 그저 나임을,

그저 이름 백성원으로 내가 하는 순간들이 모두 그냥 나임을 받아들이려 한다.

시험에 떨어진 나도, 병에 걸린 나도, 그걸 이겨낸 나도, 공부를 싫어하는 나도, 이렇게 글을 쓰는 나도 그냥 나 백성원이다.


그러나 언제나 늘 그렇듯, 정답을 안다고 문제가 늘 쉬운 것은 아니다.


-


"우리는 우리의 이름이다."

이 말처럼 언젠가는 나도 나를 성원 그 자체로 사랑할 수 있을까.

20대에 기미와 잡 때문에 지저분한 피부를 가진 나도,

서울대에 합격하지 못하고 행시를 포기한 나도,

취업하고 결혼을 하는 친구들, 자리를 잡아가는 다른 96년생들과는 달리

3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까지 부모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나도

내가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을까.

그 기간을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잘 살았다, 잘 이겨내왔다,

그렇게 스스로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위로하며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p.s.

이렇게 글을 쓰니 그래도 마음이 정리된다.

내일부터는 다시 인강을 잘 들을 수 있겠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물론 그저 새벽이라 생기는 이유없는 자신감일 수도 있다 .. ^^

하지만 백성원,

항상 건강이 우선이라는 걸 잊지 말자! 내가 있어야 내 생각도 유효하다!



 

작가의 이전글 나에게로 가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