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군 Sep 24. 2024

[단편소설] 치약과 우유 1

프롤로그

   그러니까 이건 중학생 때 이야기다. 고등학생도 아닌 20대도 아닌 한창 세상 물정을 모를 철부지 시절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이야기인데, 30년이라 해도 감이 안 올 것이고 80년 말 이야기라고 해도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회사 후배가 내게 묻는다. 그때는 삐삐가 있었나요? 버스에서 차장이 뒷문을 열어줬나요? 영화에서 옥희는 무서워요.라는 식의 서울 사투리를 쓰던데 그때가 그땐가요? 하면서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그건 60년대와 70년대 또는 90년대고, 80년대는 6.25 시절 같은 과거가 아니고 90년대 같은 현대도 아닌 낭만이 있는 시절이라고 말하려다, 그냥 앞에 놓인 커피만 홀짝 마신다. 여기서 조심해야 한다. 후배가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고 쳐다봐도 더는 라떼식의 과거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하지만 그 초롱초롱한 눈을 선배님의 과거 시절 활약상과 추억을 이야기해 달라는 눈빛으로 오인하면 분위기는 좁은 시골길의 경운기처럼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게 된다. 후배의 눈이 반짝인 것은 그냥 그의 눈동자가 크거나, 어제 늦게까지 게임이나 웹툰을 보느라 늦게 자 눈이 피곤해 눈물이 고이거나, 꽃가루 알레르기로 눈이 그렁그렁해 보이는 것이다. 절대 내 추억의 보따리를 풀면 안 된다. 하지만 나는 그때가 오후 4시를 넘은 시간이고, 곧 퇴근 시간이고, 졸리고, 큰 프로젝트가 며칠 전에 끝났을 때라 잠시 풀어진 내 셔츠처럼 입을 연다. 그때는 말이야. 

  한참 이야기를 듣던 후배는 말한다. 

  "선배님 옷에 뭐 묻었는데요?"

  “아까 치약 묻어서 물로 지웠는데 얼룩이 남았네!"

  나는 그 때 말을 멈추고 화제를 전환했어야 했는데 이미 추억 속에서 빠져있고, 그가 하는 추임새에 현혹되어 이성적인 사고가 멈춘 상태다. 그는 부추긴다. (사실 그냥 그의 뻔한 리액션이지만) 선배님 그때는 낭만의 시대네요! 선배님 너무 재미있어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나요? 저도 그런 시대를 살고 싶어요! 등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입속의 단어들이 자동차 액셀을 밟는 것처럼 앞으로 튕겨 나가면, 그 후배는 다시는 내게 차를 먹자고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후배에게 하려다 만 이야기의 뒷부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