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시간에는 목공이나 기계 원리를 배웠고, 자동차 원리에 대해서도 배웠다. 얼마 전에 결혼해 신혼인 선생은 이상하리만큼 수업 시간에 졸았다. 책을 들고 창밖을 보면서 설명을 하다가 잠잠해지면 그는 눈을 감고 무엇인가 생각하는 척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낄낄 웃으면 그는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치고 진도를 나갔다. 책을 읽다가 칠판에 흰 분필을 이용해 판서했는데, 그의 글씨는 자로 잰 듯 빤듯했다. 기말고사 전에 그는 자동차를 그리는 것을 숙제로 내줬는데, 배점도 20점으로 컸다. 중간고사를 망친 친구들에게는 큰 점수였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동차의 외관이나 내부 모습을 스케치해서 내는 실기시험이 있었는데 미술에 젬병인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은 미술 시간도 아닌 기술 시간에 왜 자동차 그림을 그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음 수업 시간에 기술 선생은 기말고사와 합쳐서 점수가 좋은 학생에게는 선물을 하나씩 주겠다고 했다. 애들도 아니고 무슨 선물이냐고 유치해 하며, 나는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수업을 끝내고 교실을 나가면서 기술선생이 홍콩에 신혼여행을 가서 사 온 주윤발 사진이라고 선물을 말하자, 아이들은 괴성을 지르며 책상을 쳤다. 선생이 조용히 하라는 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은 손뼉 쳤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저건 찐이다. 한국이 아닌 홍콩에서 물 건너온 물건이었다. 그것도 사진이 있는. 기술 선생이 꺼낸 사진을 보자 나 역시 사진이 탐이 났다. 쉬는 시간에 기술 선생 험담을 하기 바빴던 우리는 입에 성냥개비 하나씩 물고 손가락으로 권총 흉내를 내며 교실을 뛰어다니기 바빴고, 옆자리 경태는 손쉽게 연습장에 자동차 그림을 그렸다.
어느 날, 반 당번들과 청소를 마친 나는 책상에 올린 의자를 내리고 있었다. 경태 자리에서 의자를 내리던 나는 바닥에 툭 떨어지는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포니를 대각선 방향에서 그린 그림인데 보닛이 열려 있고, 그 안에 엔진과 부속품들이 디테일하게 그러진 자동차 그림이었다. 나는 바로 종이를 발로 밟고 의자를 내렸다. 같이 청소하는 친구들이 뒷자리까지 의자를 내리는 동안 나는 천천히 경태 자리를 정리하면서 신발을 묶는 시늉을 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몰래 친구들과 화장실에서 야한 잡지를 볼 때처럼. 길 건너 여고생들의 하교 길에 여학생들 사이에 묻혀서 걸을 때처럼.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마라! 어린 시절 부모님과 유치원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이 그림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사이 청소를 마친 친구들이 가방을 들고 한둘씩 교실을 떠나는 것을 보고, 나는 혼자 남아 종이를 들었다. 숙제는 다음 주 기술 시간까지 내면 되고 결과는 한 달 뒤에 나올 것이다. 종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경태는 이런 그림이 많을 것이다. 나는 서둘러 책가방에 종이를 넣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 그림을 냈는지 안 냈지는 기억이 나진 않는다. 그 시절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기보다는 질투와 부러움으로 흔들리기 쉬운 시절이었다.
공부도 못하는 경태가 그림 외에 반에서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을 때가 또 있는데, 그건 체육 시간이었다. 시골 논두렁에서 놀아서인지, 아니면 햇볕에 타서인지 검은 피부에 단단한 종아리를 가진 경태는 달리기가 빨랐다. 경태는 피부가 검어서 깜시나 허벅지가 굵어 곽강쇠라고 불렸다. 그 시절 우리는 이름보다는 별명을 더 많이 부르곤 했는데 특히 성을 앞에 따서 부르기도 했다. 좀만 뚱뚱하면 뚱. 얼굴이 이상하면 곰보, 그리고 땅따리. 쫌새. 진득이 등 원색적인 별명이나 일차원적인 호칭들이 많았다. 나는 빵진이나 빵으로 불렸는데, 이름이 영진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영화롭게 살라고 하는 이름을 지어준 부모님이 안다면 뭐라고 했을지 상상이 갔지만, 집에서 별명을 이야기하진 않았다. 시끌벅적한 교실에서 우리는 서로를 깎아내리기에 바빴다.
경태는 공으로 하는 운동 대부분을 잘했다. 축구를 하는 날이면 날아다녔다. 중학생들의 축구라야 그냥 뻥축구였는데, 공을 뻥 차면 그 공을 쫓아 여러 명이 우르르 달리는 모양이었다. 공격과 수비가 나뉘어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공이 가면 그곳으로 먼저 달려가 한 번이라도 공을 더 차기 위해 전력 질주했다. 공을 많이 차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경태는 달랐다. 공을 잡으면 개인기를 쓰며 한두 명을 제쳤으며 발이 빨라 웬만한 아이들은 그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는 골대 구석에서 서너 명의 수비수가 있어도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쉽게 아이들을 제치고 골을 넣었다.
봄이 지나자 반 대항 체육대회가 있었고, 경태는 축구와 농구 모든 경기에 선수로 뽑혔다. 학교가 끝나면 경태는 농구연습을 하러 농구장으로 갔고, 나는 농구에 관심은 없었지만 그냥 시간을 보낼 겸 농구장에 가서 드리블 연습과 자유투 연습을 했다. 몇 명 덩치가 있는 친구들은 3점 슛 연습을 했는데, 키가 작은 나와 몇몇 아이들에게 3점 슛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나와 별반 키 차이가 없는 경태도 3점 슛은 쉽지 않았다. 연습을 간단히 하고 모여있는 친구들끼리 3대 3 또는 4대 4경기를 했는데, 경기하다 보면 승부욕이 생겨서 축구보다 농구가 몸싸움이 심했다.
그날은 최루탄 가스가 없는 날이라 학교를 마치고 몇 명이서 농구 게임을 4대 4로 했다. 진 팀이 음료수 내기였다. 내기가 걸려서 더 격하게 농구가 진행했는데, 상대 팀이 몸집이 좋은 녀석이 레이업 슛을 하는 경태를 밀었다. 경태는 슛 동작에서 넘어져 골대에 허리를 부딪쳤다. 한동안 통증으로 일어나지 못하는 그를 잡고 양호실로 찾아갔다. 퇴근하지 않은 양호선생은 경태의 등에 파스를 붙여줬다. 그날 그의 등을 보고 나는 최루탄이 얼굴을 강타하듯 손으로 입을 가렸다. 영어 시간에 매를 맞는 그의 엉덩이를 보다가 벗은 상체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배 옆에 깊은 상처. 아니 상처가 아니라 뭔가가 봉합되어서 살이 집혀 있는 모습이었다. 어느 청불 영화에서 봤던 악당 얼굴 같기도 했다. 경태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소리쳤다.
"야! 빵! 꺼져."
엉덩이를 매일 까는 녀석이 그깟 흉터 때문에 성질을 내는 것이 오버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몰래 옆집 누나의 목욕하는 장면을 보다가 들킨 것처럼 고개를 급히 돌리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 밖으로 뛰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