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성민 Oct 09. 2023

악은 평범하지 않다

소박한 자유인 9월의 책 <전쟁과 죄책>을 읽고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무릎을 탁 쳤다. 지독한 집단적 범죄의 근본 문제는 구조와 권력이라는 것을 알게 했다. 구조 속에 개인은 그저 명령에 따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단의 문제에 개인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사회운동을 하다 보면 정보과 경찰과 자주 만난다. 그들과 사회운동가는 적대적 관계이다. 형사들은 집요하게 집회 주최자에게 전화를 하며 꼬치꼬치 캐묻는 경우가 많다. 조직도를 파악하여 한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의 역사를 꽤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정도야 경찰 본연의 역할이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다. 


대신 사회운동을 탄압하려는 형사들이 문제다. 노조에서 현장 노동자들이 문제가 있어 현장에서 집회를 하는 것은 집회신고가 필요 없다. 하지만 형사들 중에는 꼭 집회를 신고해야 법에 위촉되지 않는다며 단체행동을 탄압한다. 급기야 채증반이 아닌 정보과 형사가 집회 참가자들 얼굴 하나하나 사진으로 촬영해 괜한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반면 합리적인 형사도 있다. 그들은 서로 각자의 역할을 열심히 하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괜한 갈등과 제재를 하지 않고 활동가들과 잘 어울리는 형사들이 있다. 물론 그런 친밀감을 이용해 정보를 캐가려는 수작으로 보이지만, 집요하지 않아 결사의 자유를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전쟁과 죄책>이라는 책은 전범에 참여한 개인(일본 군구주의 전범)들이 성찰하기 위해서는 시켜서 한 전쟁이 아니라 내가 '한 전쟁'으로 주체를 되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강인한 인간이기 전에 느끼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느끼지 않는다면 타인의 소중함을 가볍게 생각할 테니 말이다. 


책은 악의 평범성을 넘어 집단 속 개인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부분을 제공하고 개인이 느끼는 인간이 되지 않는다면 어디서라도 전체주의는 등장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나는 강한 인간이기 전에 느끼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은 경직 돼버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구체적인 삶을 바꾸는 활동가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