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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잘 살아있다

by 로라

1.



보통 잡스러운 글을 웹상에 흩뿌릴 때는 내가 억울한 일이 있거나 괴로운 일이 있는데 자기 합리화가 필요할 때이다. 그럴 때 나는 아는 사람 정도만 알만하게 장문의 글을 써서 교묘하게 상대를 씹고 내 자신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건강하게 현재 상황을 이겨내고 있다고 정신승리를 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배설, 노출증 뭐 무슨 말을 붙여도 다 맞다



2.


그렇기에 요즘 별 글이 없는 건 내가 특별히 억울한 일이나 괴로운일 없이 잘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하다.


나같은 sns 병자의 삶을 짐작해보기란 이토록이나 간단한 일이다.

누군가 만약 날 좋아한다면 정말 얼마나 재미날까, 이렇게나 염탐하기 좋고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니.



3.


글이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내가 요즘 매일 하고 있는 일이 '글'을 쓰는 일이기 때문인 것도 있다.


요즘 난 '논문'이라는 이름의 공해를 생산하고 있다. 그밖에 여기저기서 학생들에게 '레슨'이라는 이름의 사기를 치며 학자금 대출을 갚고, 그 학자금 대출로 박사를 하며 다시 공해를 재생산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의미한 것이 분명 그 안에 있을 것이라 매일 날 위로하고 있고,

캐보면 그 안에 재앙이 있을 수도 있지만 웬만한건 대체로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냥 좋을 것이라 믿으며

인생에 몇 날 없을 별 일 없는 하루가 흘러흘러간다.




4.


사는게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계주 같다. 바톤을 주고 받고 뛰고 또 주고 뛰는데 달리는 주자는 나 한명이고 끝도 없다. 어떤 날은 그저 감사하고 이게 행복이다 싶고, 어떤 날은 도대체 지금도 살아온 날이 삼천년은 된 것 같고 지치는데 얼마나 더 살아야 하나 괴롭고, 더 많은 날은 아무 생각 없이 일하고 남는 시간에 페북에 쓰레기나 읽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잘나고 잘난 사람 만큼이나 너무 불쌍한 사람도 많아서, 나는 그야말로 참 모든 것이 중간인 인생이로구나 하고 생각한다.



5.


요즘 내가 하루를 사는 여러 방법 중 하나는

잘 살고 있는 인생들의 삶들은 잘 안들여다보고, 괴로운 사람의 삶을 보며 그 불행이 나에게 오지 않음에 못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다. 잘 사는 사람들만 보며 신세 한탄만 하는 사람들이 못났다면, 나같은 경우는 악하다고 해야할까, 비겁하다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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