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상상 그 뜻밖의 만남

-미술관 이야기 1-

by 배나무


단편 동화 <미술관 이야기 1>

풍경과 상상 그 뜻밖의 만남


사진 하나가 미수를 강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짙은 빨강 바닥과 지나칠 정도로 선명한 초록 나뭇잎들, 한가운데에서 조금 왼 편으로 벗어난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란색. 그리고 깨꽃 모양의 빨간 봉오리들.......

나무가 많은 어딘가의 풍경 사진인 것 같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런 색들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토록 진하고 강할 수 있는지.

Untitled #1 Red Hole

light-jet C- Type Print

75 × 100cm/ 2004

작품 옆에 붙어 있는 표를 읽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미수는 다음 작품으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사진 앞에서 오래오래 서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츰 뭔가 알 수 없는 불안한 느낌까지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친구 혜린이가 *‘책과 노니는 집’과 *‘클로디아의 비밀’을 빌려달라고 했었는데 깜박 잊고 학교로 가져가지 않았다. 그래서 미수는 도서관으로 가기 전에 집에서 책을 들고 혜린이가 다니는 학원에 갔다. 그런데 수업이 끝날 시간이 20분 정도 남아 있었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와서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 애가 여자 화장실 바로 앞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힐끔 쳐다보고 돌아서는데 그 애가 자기를 노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고 도망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하필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영어학원은 복도 맨 끝 쪽에 있고, 오가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로 뛰어들었다. 닫힘 단추를 누르고 1층을 눌렀다. 그런데 그 녀석도 어느새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녀석이 다가오고 있었다. 곁눈질로 보니 태도도 이상했다. 녀석이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 미수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획 고개를 돌리고 눈을 부릅뜨고 이를 꽉 다물며 힘껏 녀석을 밀쳤다. 녀석은 엘리베이터 구석으로 가방과 함께 나가떨어졌다.

다행히 3층에서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아줌마를 밀치듯 얼른 내려 계단으로 마구 뛰어내렸다. ‘왜 저래? 아이 참~’하며 투덜거리는 아줌마 목소리 외엔 쫓아오는 소리는 없었지만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아서 무서웠다. 한참 뛰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제야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 지 생각할 수 있었다.

빨리 엄마에게 말하고 펑펑 울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빠에게도 얘기하고 얼마나 자신이 놀랐는지 알려줘야 했다. 그러면 분명히 엄마도 아빠도 미수 편이 되어서 같이 화내며 위로해 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미수에겐 휴대폰도 없고 주변엔 공중전화도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이 많이 가진 휴대폰을 미수도 갖고 싶어 하는데도 모른 척하는 엄마, 아빠도 미웠다. 혜린에게 빌려줄 책을 영어 학원으로 갖다 주려고 생각했던 자신도 바보처럼 생각됐다.

얼마나 뛰었을까?, 얼마나 걸었을까?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나니, 아빠는 며칠째 해외 출장 중인 것과, 아침에 엄마와 했던 약속도 생각났다.

“미수야! 오늘 기말시험이지? 난 회사에 중요한 회의가 있기는 하지만 일찍 끝날 거야. 5시쯤 미술관에서 만나자. 그동안 너는 도서관에서 책 보다가 시간 맞춰 나와. 전시 둘러보고 저녁도 밖에서 먹자.”

도서관에는 갔지만 미수는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책을 펼쳤는데도 자꾸 그 생각이 났다. 엘리베이터 구석에 엉덩방아를 찧은 채 미수만큼이나 놀란 얼굴로 미수를 올려다보던 그 녀석의 눈빛도 생각이 났다. 책을 덮고 도서관을 나와서 미술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까맣게 그을린 듯 보이는 나무로 된 계단을 내려가 미술관 중앙 정원이 보이는 곳까지 가니 전시실 입구에 커다란 작품 하나가 보였다. ‘바나나맛 우유’란 글자가 적힌 플라스틱 병은 사람보다도 컸다. 가까이 가보니 우유병 안에서 사람의 오른손이 하나가 빠져나오려는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옆에는 미술관 전시 안내문이 있었다. 전시 제목은 ‘풍경과 상상 그 뜻밖의 만남’이었다.

3000원을 내고 티켓을 사서 전시실로 처음 들어섰을 때, *도슨트가 단체 관람객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 그런데 이번 전시는 정해진 동선이 없습니다. 마치 보물 찾기를 하듯이, 탐험을 하듯이 즐기시면 됩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편의상 제가 보는 방법으로 안내를 해 드리겠습니다.”

미수는 엄마와 자주 미술관을 다니는 편이다. 전시마다 그 성격에 따라 전시구성은 달랐지만 아무렇게나 순서 없이 봐도 된다는 식은 처음이었다. 전시실 입구에서 보니 길이 세 갈래로 보였다. 도슨트가 10여 명쯤 되는 관람객들과 왼쪽으로 이동했다. 미수는 가운데 길을 택했다. 혼자 가고 싶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다른 사람 방해받지 않고 혼자이어야만 할 것 같았다.

첫 번째로 본 작품은 참 따뜻한 느낌을 줬다. 모든 재료가 하얀 솜으로 된 설치 작품인데 옛날 교실에나 있음 직한 연통 달린 난로와 그 위엔 옛날 도시락. 열린 도시락 위엔 계란 프라이도 얹혀있었다. 마치 ‘엄마 어렸을 적에...’란 전시회에서 본 그 시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하고 만져보고 싶은 충동도 일었다. 그다음 작품은 도자기인데 모양이 아주 새로웠다. 사과이지만 가방이기도 하고, 냄비이기도 하고, 주전자이기도 하고 화병이기도 하고. 그 도자기들이 놓여있는 공간도 재미있었다. 오래된 시골풍의 싱크대, 계단, 책장 앞, 의자 위 등.

두 작품을 본 후 반쯤 가려진 칸막이를 지나 오른쪽으로 꺾었더니 이번엔 사진 세 점이 나란히 걸려있었다. 모두 풍경을 찍은 사진이긴 했지만 현실 속 공간 같지 않았다. 늪지대 같기도 하고, 잔뜩 오염된 호수 같기도 했다. ‘참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세 번째 사진을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힘에 압도되었던 것이다. 사진 안에 풍경들은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자기가 지나갔던 곳 가운데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꿈에서 본 장면일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 해도 이상했다. 사진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 모르겠다. 발이 바닥에 붙은 듯 한참 서 있으면서 ‘뭘까? 뭐가 날 보는 거야?’하며 오기로 버티며 사진을 노려봤다.

“이 작품이 맘에 드니?”

도슨트 목걸이를 걸고 있는 아줌마였다.

“아뇨-. 꼭 그런 건 아니고, 잘 모르겠어요.”

“한참 동안 보고 있던데 궁금한 거 있어?”

“이상해요. 색깔도, 느낌도.”

“그래? 또 다른 건 없고?”

도슨트 아줌마는 설명을 해주는 대신, 미수에게 좀 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오히려 질문을 했다.

조금 망설이다가 미수가 대답했다.

“저 속에서 누가 날 노려보는 거 같아서 나도... ”

“오! 그래? 정말? 그림을 읽을 줄 아는구나. 미술품들을 많이 봤니?

“뭐 조금. 엄마랑...”

아줌마가 미소를 지으며 미수 뒤로 가서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미수와 같은 방향에서 작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내가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땐, 저런 색감 때문에 아마도 포토샵 같은 처리를 했나 보다 생각했어. 그런데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한테 얘기를 들어보니, 작가가 인위적으로 땅에 색을 입히고 물감을 풀며 작업을 했다더구나.”

“왜요?”

“음- 자기 작업에 대한 사랑과 미움, 작가 자신 안에 있는 익숙함과 낯섦을 좀 더 오묘하게 보여주고 싶었나 봐. 그런데- ”

하더니 아줌마는 주머니에서 손바닥 반 크기의 네모난 가죽 케이스 같은 것을 꺼냈다.

케이스 안쪽에는 돋보기가 붙어있었다.

“이것 좀 봐.”

하며 사진에서 나오는 불빛처럼 보이는 파란색 부분에 돋보기를 가까이 댔다. 그러자 거기엔 눈의 형상이 분명한 물체가 보였다.

“이게 뭐예요?”

아줌마가 미수를 보며 말했다.

“작가도 처음엔 몰랐대. 이건 의도한 게 아니란 얘기지. 이건 여우 눈이야. 영국 런던 근교에서 작업을 했는데 작가도 거기에 여우굴이 있었던 걸 몰랐다고 해. 사진을 인화한 후 발견했고, 그 후에 다시 현장에 가서 여우굴을 찾았다는구나.”

“아- 그래서....... ”

아줌마가 다시 미소 지으며 미수에게 말했다.

“넌 그림을 보는 특별한 소질이 있는 거 같다. 대부분 모르고 지나치거든. 나도 그랬고.”

미수는 그 여우를 생각해 봤다. 보금자리가 위험에 노출되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굴 안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자기 작업을 위해서 이런저런 장치를 하고 왔다 갔다 하며 셔터를 누르며 한동안 있었을 것이다. 여우는 자기의 보금자리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 때문에 계속 불안했겠지?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노려봤을까? 그러니 그 눈이 저토록 파란 불빛이 되도록 번쩍였겠지! 그런데도 작가는 여우가 있는지조차 몰랐다니!

도슨트 아줌마는 미수의 이름을 물어보고 다른 작품들도 같이 감상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 미수는 아줌마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다음에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그렇지만 이번 작품은 탐험하며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혼자 이리저리 다니겠다고 했다. 아줌마는 유쾌한 듯 ‘하하’ 웃으며 그게 더 낫겠다고 하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작품들 속에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낯설고 환상적인 것, 기묘하고 재미있는 상상과 결합되어 뜻밖의 풍경으로 재창조되는 거 같았다. 어떤 것은 괴이한 음향과 함께 전시돼서 무서운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알고 보니 조그만 미니어처 건물에 이쑤시개로 장난을 친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또 어떤 작품은 영상물로 만들어졌는데 동화 같기도 하고 꿈속 같기도 한 무대에서 한 남자가 춤을 추는 듯 돌아다녔다. 옆으로 기다란 사진도 있었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풍경 사진인 것 같지만 도무지 같이 있을 수 없는 호랑이, 기린, 바닷가, 지하 주차장 내려가는 계단, 바위 동굴 같은 것들이 섞여 있었다.

프랑스 파리 풍경과 우리나라 아파트가 함께 있는 사진도 있었다. 그건 부천에 있는 에듀 테마파크인 ‘아인스월드’에서 포토 존을 비켜서 사진을 찍은 거였다. 그러니 에펠탑이 우리나라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에는 아주 작은 사람들이 공중전화부스나 담장 밑 잔디에 숨겨져 있었다. 미수는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그렇게 작은 생명체들이 우리 사람들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전시실 한쪽 벽면에 전시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었다.

이 전시가 유도하는 ‘낯섦’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언캐니 경험과 유사하다.

집 같이 낯익음을 뜻하는 ‘캐니’와 두려움 기괴함을 뜻하는 ‘언캐니’는 마치 상반된 정서를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말하는 언캐니는 캐니의 반대어가 아니다.

둘은 공존하면서 묘한 감정으로 환기된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작품 속에서 빈번하게 이런 경험들을 이끌어 내고 연구했다.

미수는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이해되진 않았지만, 작가들이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서 늘 새로운 걸 창조하고 발전하는 거구나 생각했다.

미수가 엄마를 만난 건 5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미술관 안에서 열심히 탐험을 하느라고 시간을 놓친 때문이었다. 엄마와 다시 전시실을 한 바퀴 돌고 미술관 안에 있는 식당에 갔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미수는 그제야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뭐-어?”

“어머!”

“그래서?”

“그 녀석 어떻게 했어?”

미수 얘기를 들으며 엄마는 놀라고 속상해서 그런지 눈물까지 글썽였다.

엄마가 글썽이는 걸 보니 미수도 눈물이 찔끔 났다. 그래도 제법 의연하게 엄마를 위로했다.

“엄마, 아깐 정말 무서웠지만 이젠 괜찮아. 혹시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생기면 더 세게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래, 그래 우리 딸 많이 컸구나. 이렇게 의연할 수가... 고맙다.”

저녁을 먹을 땐 마치 무용담을 얘기하듯 그 사건은 자꾸 엄마에게서 되풀이됐다.

“세상에, 우리 딸은 어쩜 그렇게 용감한 거야!”

식사 후 집까지 손을 잡고 걸어가며 엄마가 말했다.

“그 녀석 미워 죽겠는데, 찾아내서 한 대 후려갈겨 주고 싶어. 그 학원 건물 경비실과 학원에 가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려야 해. 그리고 중학교 입학 때 휴대폰 사주려고 했는데, 지금 당장 사러 가자. 5학년에게 휴대폰이 필요할 줄 몰랐네.”

“어휴~ 엄마! 요즘엔 초등 입학 때부터 갖고 있는 애들도 많아. 엄만 대체 어떤 세계에 사는 거야?”


*도슨트: 미술관에서 전시내용, 작품을 설명해주는 사람

*책과 노니는 집(이영서 글, 김동성 그림/문학동네)

*클로디아의 비밀(코닉스버그 글, 그림/ 비룡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성냥팔이 안달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