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이거 장편 소설로 쓰면 재밌겠는데... 하며 머릿말 만 씀...
세상에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공간이 있다.
그곳은 시간도, 계절도, 바람도 멈춰 있는 장소였다. 먼지 한 톨조차 허락되지 않은 듯, 모든 것이 정적 속에서 완벽히 보존된 공간. 그러나 그 고요는 죽음의 침묵이 아니라,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는 고요였다. 책들이 스스로 호흡하고, 마치 심장을 가진 생명체처럼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 발을 들인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숨을 잃었다.
끝없이 뻗어 올라가는 책의 탑, 천장을 알 수 없을 만큼 높이 쌓여 있는 지식의 기둥. 맨 위에 있던 책들은 스스로 방향을 바꾸어, 마치 오래 기다린 손님에게 달려오듯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책장마다 적힌 제목은 낯설었지만 동시에 친숙했고, 그 안에 깃든 목소리들이 내 귀를 간질였다.
“읽어라. 나를 열어라. 그리고 나를 세상과 나누어라.”
나는 그 속삭임에 휘청였다.
지식이란 원래 나눠져야 한다. 흐르는 물처럼, 흘러야 썩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의 책들은 너무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 고인 지식은 곧 권력이 되었고, 권력은 언젠가 탐욕을 불러올 것이다.
예상대로였다. 곧 알게 되었다.
이 신비한 공간을 차지하려는 무리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지식을 독점하려 하고, 책을 무기로 삼아 전쟁을 벌인다. 책을 펼치면 그 안의 주인공이 현실로 튀어나와 싸우고, 어떤 책은 검보다 날카롭고, 어떤 책은 방패보다 단단하며, 어떤 책은 노래처럼 마음을 흔들어 전장을 무너뜨렸다. 이곳은 거대한 도서관이자, 책으로 벌이는 전쟁터였다.
나는 혼잣말처럼 다짐했다.
“이건 모두와 나누어야 한다. 이건 나만의 것이 되어선 안 된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책이 곧 무기라면, 책을 손에 쥔 자는 신과 같은 힘을 얻게 된다. 탐욕스런 자들이 그 유혹을 외면할 리 없었다. 그들과의 싸움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책은 도끼다. 영혼의 얼음을 깨뜨리는 도끼, 삶의 굴레를 부수는 도끼. 책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인간의 운명을 바꾸는 무기이자 선물이자 심판이었다.
나는 책을 펼친다.
그리고 그 속의 영웅들과 함께 싸운다.
흐르지 않으면 죽어버릴 지식을 지켜내기 위해.
모두가 잊고 있던 희로애락과 진실을 세상과 나누기 위해.
이제, 책전쟁이 시작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