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소설) 보이지 않는 늑대

“늑대다! 늑대가 나타났다!”


새벽을 찢는 고함과 함께 군홧발이 마을을 뒤흔들었다.
아이의 울음은 곡소리로 바뀌고, 집마다 불길이 치솟았다.
총검은 어린아이의 가슴과 노인의 등을 찔렀고,
비명은 불길 속에 삼켜져 이윽고 적막만이 남았다.

다음 날 신문은 이렇게 썼다.


〈보이지 않는 늑대, 조선 마을 습격〉


소년은 그날 부모를 잃었다.
불타는 집 앞에서 군인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들려온 말이 귀를 꿰뚫었다.


“이 모든 게 늑대 탓이다. 보이지 않는 늑대 말이야.”


소년은 그 말을 믿었다.
늑대가 부모를 앗아갔다고, 원수는 늑대라 여겼다.
세월이 흘러 그는 제국의 군복을 스스로 입었다.


“늑대를 잡겠다.”

자신을 속이며 다짐했다. 총검을 쥔 손은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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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초, 만주의 깊은 산골.
밤마다 똑같은 소문이 흘렀다.


“불령선인들이 폭탄을 품고 다닌다더라.”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더라.”


파출소 순경은 민가를 돌며 속삭였다.

“조선인들을 조심하시오. 저놈들은 늘 불을 지르고 칼을 숨기지.”


일본 신문은 굵은 활자로 덧붙였다.

〈맹호猛虎 같은 조선인, 일본 민중 위협〉


민중은 두려움에 자경단을 꾸렸다.
몽둥이와 낫을 들고 밤마다 거리를 순찰했다.
관동대지진의 기억은 여전히 그들의 가슴을 조여왔다.
누군가 “늑대다”라고 외치면, 곧 학살이 시작될 수 있었다.


소년은 어느 날, 눈 덮인 산 속 매복 작전에서 ‘늑대’를 기다렸다.
그러나 덫에 걸린 건 짐승이 아니라 아이를 업은 여인이었다.
눈밭에 무릎 꿇린 여인에게 일본군 장교가 총을 들이대며 외쳤다.


“봐라, 불령선인의 무리다! 늑대다!”


총성이 울렸고, 아이의 울음은 순식간에 끊겼다.
여인은 쓰러지면서도 피묻은 손으로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그의 마지막 한마디가 바람에 실려왔다.


“우린 괴물이 아니다… 우린 네 부모의 편이었다.”


소년의 귓가에서 그 말은 울음소리와 겹쳐 메아리쳤다.
불타던 마을, 군홧발, 일본어 욕설, 불길 속 웃음소리—
그날과 똑같았다.

그는 보았다.

장교가 시체를 발로 차며 웃었고, 사진병은 “늑대 습격 증거”라며 셔터를 눌렀다.
신문에 실릴 또 하나의 거짓.

그제야 소년의 가슴속에서 오래된 분노가 뒤집혔다.

늑대는 없었다.

늑대는 언제나 제국이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그 순간, 균열이 아니라 신념의 붕괴가 찾아왔다.

그 후로 그는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부모의 비명이 들렸고, 눈을 뜨면 군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누구인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늑대를 쫓는 자인가, 늑대를 만들어내는 자인가.

그는 술에 기대보기도 했고, 군복을 벗어 던졌다가 다시 입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선택도 안도감을 주지 않았다.
가끔은 부모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너는 우리를 위해 살아남아라.”

그 말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처럼 그를 짓눌렀다.

그러던 어느 날, 길바닥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종잇조각을 주웠다.
의열단 전단지.
굵은 글씨가 눈을 찔렀다.


“우린 7가살 5파괴를 따른다. 총독부와 동양척식회사를 파괴하고, 매국노를 처단한다.”

소년은 멈춰 선 채 한참이나 종이를 움켜쥐었다.

손끝이 떨렸다. 전단지를 찢어버릴까, 품에 넣을까.
마음속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싸웠다.


“그 길은 죽음뿐이다.”

“아니, 그 길만이 네가 살아 있는 이유다.”


그날 밤, 그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결심을 했다.
더 이상 피해자도, 제국의 부속품도 되지 않겠다고.
늑대가 허상이라면, 자신이 그 허상을 채우겠다고.

그 무렵 원산에서는 노동자 2천 명이 파업을 벌이고 있었다.
발단은 일본인 감독이 조선인 노동자를 구타한 사건.

그러나 분노는 삽시간에 번져 시내는 ‘전시 상태’ 같았다.

자본가들은 폭력배를 고용해 노동자들을 때렸고,
경찰은 노련회관을 습격해 붉은 깃발과 마르크스·레닌의 초상화를 압수했다.
군대는 총칼을 번쩍이며 거리 행진을 했다.

신문은 또다시 이렇게 썼다.


〈불령선인, 대오를 갖추어 군대에 응전〉


소년은 그 활자를 바라보며 피가 뜨겁게 끓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제국의 군복이 아니라, 민중의 늑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해 겨울밤, 그는 폭탄을 품고 총독부의 벽을 올랐다.
달빛은 흐릿했고, 경비병의 눈빛은 차가웠다.
그는 숨을 고르며 속삭였다.


“늑대여, 만약 네가 정말 보이지 않는 존재라면…
내 분노와 함께 살아남아라. 일본을 무너뜨릴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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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을 뽑는 순간, 모든 공포가 사라졌다.
귀를 찢는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창문은 산산이 박살났고, 경비병들의 비명은 연기에 묻혔다.
그는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다음 날 신문은 새 제목을 달았다.

〈늑대, 제국의 심장을 찢다〉

소년은 멀리서 그 기사를 읽으며 미소 지었다.
이제 늑대는 허상이 아니었다.

그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었다.
스스로 보이지 않는 늑대가 되어, 어둠 속을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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