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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신행 Oct 22. 2023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사랑하라

2014년 6월 13일, 뜨거운 여름밤의 열기로 잠 못 이루던 대학교 2학년 때 일이다. 2주 전에 있던 축구 경기 중 중족골 골절로 한 반깁스는 여름의 찝찝함과 불쾌함을 한층 더 했다. 대학시절 나는 학교 앞에서 자취하던 윤곤이집에서 기생했다. 나의 대학시절 일상은 단순했다. 음주 - 기상 - 수업 대리출석 - 당구, PC방 - 음주. 하루의 시작과 끝이 음주로 하나 되는 일상은 내게 안정감 줬다. 그날도 소주가 2000원 하는 솥뚜껑이라는 술집에 가서 소주를 마시던 나는 갑자기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렇게 주구장창 술만 마시면 남는 게 없을 것 같지 않냐? 우리 연애하자!”

“X신, 연애는 혼자 하냐, 상대가 있어야 하지” 함께 술을 마시던 현상이가 말했다.

“그렇네.. 혼자는 못 하지.. 그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한번 해보자! 내가 찾아볼게!”



친구들에게 호언장담을 한 나는 뭐라도 시도해 보기 위해서 당시 유명했던 페이스북 페이지 ‘00대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를 들어갔다. 그리고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한 게시글을 발견했다.

‘역사학과 13학번 여자 4명과 과팅 하실 재밌는 분들 구합니다’



간혹 남자들이 많은 공대에서 과팅을 구하는 글이 올라온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여자분들이 먼저 공고를 올린 것은 처음이었다. 역사상 전례 없던 과팅 공고에 수많은 남자들의 댓글과 공모전급 문필력으로 댓글창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과열된 경쟁은 나에게 승부욕을 불러일으켰다. 어떻게든 이 과팅을 쟁취해 내리라 다짐했던 나는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수많은 댓글들과 플러팅들의 향연 속에서 나는 페이지 담당자까지 미소 짓게 만들며 당당히 과팅을 쟁취했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사랑에 미친놈이라 불리게 됐다. (물론 그날 술은 친구들이 샀다)



2014년 06월 17일, 드디어 기대하던 과팅 날이 됐다. 4주 정도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던 의사 선생님의 말과 반깁스를 뒤로 한 채, 다리 아픈 것을 티 내지 않기 위해서 낑낑대며 약속 장소에 30분 먼저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첫사랑을 만나게 됐다.



첫사랑은 사람마다 다르게 정의한다. 나는 첫사랑을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닫게 해 준 사람'으로 정의한다. 그날 술집에 위풍당당하게 들어오던 그녀의 모습은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최고의 등장 신으로 뽑히는 영화 <관상>의 수양대군 등장 신보다 더 강렬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날 과팅에서 만난 이후로 우리는 2년 동안 정말 열심히 사랑했다.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며 시간을 보내고,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 우산도 쓰지 않고 비를 맞으며 싸워보기도 하고, 생애 처음 도시락도 만들어보고, 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연애했다. 내게 그 2년이라는 시간은 ‘내가 정말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준 시간이었다. 



나는 나의 모든 꿈, 용기, 도전이 이 사랑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꿈과 도전, 용기가 없는 20대에게 우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먼저 사랑하라”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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