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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송비 Mar 18. 2018

나의 서울 이야기

서울에 살고 싶다.

지난 주에 도쿄에 여행을 다녀왔다. 잘 짜여 있는 지하철 노선, 도시 한 켠에 자리 잡은 공원, 시부야 역 앞에서 길을 건너는 사람들의 무리가 기억에 남는다. 다녀와서 다시금 피어오른 것은 "서울"에 살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서울을 매우 좋아한다. 지금은 서울과 초성이 같은 수원에 살고 있다. 수원은 내가 태어난 곳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엔 수원에서 서울로 통학을 했다. 두어 달 정도 지났을 때, 부모님이 집을 알아봐 주셨다. 그 무렵에 의도적으로 늦게 들어가고 일찍 나왔다. 절대 외박은 하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하는 줄 알고 집을 얻어주셨을 부모님께 조금 죄송하다. 그때부터 서울에 살기 시작하여 10년 정도 서울에 살았다. 그리고 2년 전에 다시 수원으로 이사를 했다. 부모님은 은퇴 후 어머니의 고향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으니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그 무렵에 마침 직장도 옮겼고, 연애도 안 하고 있었고, 딱히 삶의 목표도 없었던 터라 알겠다고 하고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어렸을 때도 서울로 잘 놀러다녔으니까 좀 멀어졌어도 왔다갔다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던 것은 큰 착각이었다. 서울은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다, 빨리 가면. 엄청 빨라야 한다. 내 차로 주말 아침 8시 이전에 출발하면 한 시간 안에 갈 수 있다. 보통은 차를 댈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그러면 어느 곳을 가든 2시간은 잡고 가야 한다. 가면 돌아와야 한다. 4시간이다. 물론 서울에서 서울 어딘가를 갈 때도 한 시간씩 걸릴 수 있다. 많이 걸려야 한 시간이다. 그 차이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서울에 한 번 다녀오면 진이 빠졌다. 전날부터 나갈 마음의 준비를 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서울에 가면 일단 점심을 먹어야 한다. 자주 오는 곳이 아니니 간 김에 오지게 돌아다녀야 한다. 지하철이 빨리 끊기기 때문에 늦어도 오후 10시엔 출발해야 한다. 지하철엔 사람이 꽉 차 있다. 어쩌다 토, 일 연속으로 서울에서 약속이 잡히게 되면 일요일 저녁엔 초주검이 되었다. 지인들은 다 서울에 있고, 내가 놀 것들도 서울에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서울에 있는데 나만 거기에 없었다.




수원에서 서울로 이사를 하던 때에 나는 서교동에서 노래를 만드는 수업을 듣는 중이었다. 선생님은 매번 글을 쓰게 했다. 나는 수원으로 이사를 가자마자 서울에 가고 싶다는 글을 썼다. 수원에 오니 나가서 혼자 밥 사먹을 곳도 없어서 터미널까지 걸어가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은 얘기, 카페를 찾아 한참을 걸어다닌 얘기, 주변에는 낮은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더라는 얘기 등을 썼다. 서울에 살 때는 혼자 밥 먹을 데도 많고 혼자서 밥을 먹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고, 카페가 없는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널린 게 카페였다. 편의점은 골목 양 끝으로 있었고, 버스와 지하철이 자주 오고, 친구들도 가까이 있고, 수업을 끝나고 집에 오는 길이 그때는 길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내용을 적었다. 선생님이 글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송비 씨는 서울에 대한 노래를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도시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노래들이 많이 있는데, 서울은 그런 노래가 별로 없으니까."

대번에 생각난 노래는 조용필의 <서울서울서울>이었다. 


서울, 서울, 서울, 아름다운 이 거리

서울, 서울, 서울, 그리움이 남는 곳
서울, 서울, 서울, 사랑으로 남으리
오 오 오 never forget of my lover 
서울


이어서 생각한 노래는 스콧 매켄지가 부른 <San Francisco>이다.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 

(샌프란시스코에 가시게 되면 잊지 말고 꼭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두 곡 모두 도시의 어두운 면은 뒤로하고 아름다운 부분들을 노래했다. 선생님의 지침을 받고 나도 서울에 대해서 가사를 써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서울을 노래하기에는 너무 자본주의적인 면들만 사랑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서울을 모습들을 적어봤지만 온통 편의적인 부분들 뿐이었다. '편리함'을 노래로 만들려고 하니 도무지 시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편리함을 노래한 것은 광고 음악 밖에 없지 않을까. 그 때 내가 썼던 가사는 다시 돌아온 나의 고향, 세류동, 에 대한 것이었다. 어릴 때 보던 건물들은 그대로인데 간판만 반짝반짝 새것으로 바뀌어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변한 것 같지만 변하지 않은 동네에 다시 돌아와버렸고, 그런 동네를 보며 변한 나와 변하지 않은 나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내용이었다. 노래가 되진 않았다.

수원에 대한 노래도 있다. 나영진이 부른 <비바 월드컵 수원 코리아>이다. 수원 사람이라면 꼭 들어보길 바란다. 수원의 정수가 담겨 있다. 자주 듣기는 조금 어려운 노래다.




서울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문화적인 것들 때문이다. 내가 주로 접하는 것들은 다 서울에 있다. 영화도 밴드도 책방도 모두 서울에 있다. 영화마저 수원에선 마음대로 볼 수 없다는 게 가장 화가 난다. 저 세 가지 중 유일하게 복제가 가능한 것마저 수원에선 보기 어렵다. 수원에는 '메이저'한 선택지 밖에 없다. 영화를 보러 두 시간씩 서울에 올라가야 한다. 밴드는 두말할 것도 없이 다 홍대에 있고, TV에 출연하는 분들 정도 되어야 수원에는 1, 2년에 한 번 내려올까 말까 한다. 책방은 수원에도 있기는 하다. 내가 아는 건 두 곳뿐이다. 책방은 오래 머무는 곳이 아니라서 이후에 할 것들이 있어야 하는데, 책방 갔다가 다음에 어디 가기가 조금 애매하다. 그나마 수원에 책방이 있는 동네(화성 행궁 주변)를 수원에서 가장 좋아한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하지만 동네 책방의 특성상 자주 들렀다간 빠르게 소모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간격을 두어서 가야 하고, 결국 서울에 가야 한다. 어쩐지 서울에서 좋아하는 곳들은 다 한강 북쪽에 있어서, 버스 한번에 가기도 어렵고 갈 때마다 서럽고 힘들다. 오고 가는 생각만 해도 서럽다. 이런 것들을 노래로 만들 생각을 하니, <아리랑> 같은 노래가 나올 것만 같다. 아이고 서러워라.




밥을 먹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카카오미니에게 이효리 씨의 <서울>을 들려달라고 했다. 후렴구에서 "서울"이란 가사를 '서우우우우우울'로 부르셨다. 우울한 서울인가 생각을 했고, '샌프란시스코'는 여섯 글자나 되어서 음정을 넣기 쉽지만 '서울'은 두 글자라 3번씩 외치지 않으면 음정을 넣기 어렵겠구나 싶었다. "등 돌리며 멀리 멀리 떠나왔지만"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늦은 것 같아" 라는 부분을 들으면서 '효리네 민박'에서 본 이효리 씨의 모습이 생각났고, 제주도 생활에 만족하며 지내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서울을 떠나온 것을 후회하며, 나에게 서울은 여전히 돌아가고 싶고, 돌아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아름다움을 읊는 가사를 쓰자니, '서울아, 널 사랑해'라고 써야할 것만 같다. 하지만 조용필의 <서울서울서울>도, 스콧 매켄지의 <San Francisco>도 도시 그 자체를 찬양하지 않는다. 도시는 나의 사랑 얘기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 때문에 불리워 지고 있다. 도시가 제 아무리 아름다워봤자, 역시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일까. 이효리 씨의 사랑은 지금 제주도에 있으니 '서울'이 '서, 우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서울의 모든 것을 좋아하지만, 아름다운 서울을 노래하는 건 나에게 여전히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사랑이 그곳에 없기 때문에. 

나의 사랑은 효의 도시, 화성의 도시, 월드컵의 도시 수원에 있다. 어쩐지 수원을 좋아해야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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