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삼 같은 것
언젠가는 '애절한' 사랑 노래를 만들어 보고 싶다. 열정적으로 부르는 발라드여도 좋겠지만, 담담하게 부르고 나면 듣는 사람도 부르는 사람도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그런 노래였으면 좋겠다. 애절한 노래를 만들고 싶은 건, 나에게 애절함 같은 게 있는지 늘 의심하기 때문이다. 연애에 있어서 만큼은 내가 냉혈한이라고 생각하는데, 헤어진 얘기를 하고 나면 '네가 나빴다'는 말을 종종 들어와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노래를 만들고 나면, '너에게 도 그런 면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멜로 영화를 좋아한다. 등장 인물들이 우연히 만나 마지막에 연인이 되는 내용보다는 연애를 한지 오래된 사람들이 나오거나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연애 얘기를 더 좋아한다. 모노가미(monogamy)가 주류인 사회에서 이미 연애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만난다든지, 반대로 좋아하는 사람이 이미 다른 사람의 연인인 경우. 아니면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이미 세상에 없거나 어떤 이유에서든 이루어질 수 없게 되는 영화들이 그렇다. 토니 안이 부른 노래 제목처럼 "사랑은 가질 수 없을 때 더 아름"다우니까. 가질 수 없음, 이루어지지 않음에 슬퍼해본 적이 있었나. 있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애절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꼭 애절함이 마음 속에서 100퍼센트 우러나와야만 노래를 만들 수 있는 걸까. 모든 구구절절한 발라드들이 정말 본인 얘기인 걸까. 그럴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할 것 같진 않다. 책이나 영화를 보고도 얼마든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런 것들 끌어다 모아서 쓰면 될 것 같다. 어떤 게 나오게 될지 나도 궁금하다.
사랑 노래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내 나름의 분류이다.
1: 두근두근 설레는 고백
2: 우리 사랑 영원히
3: 끝
연애 상황의 전, 중, 후이다. 사랑을 일대일 상황의 연애로 국한시킨 다음 분류한 것이다. 연애와 관련된 모든 노래를 이 분류에 넣을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은 이 셋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1. 두근두근 설레는 고백
'고백송'의 필수 요소는 '하루 종일 너를 생각해'이다. 뭘 해도 네 생각만 하고 있으니, 제발 나랑 사귀어 달라는 내용을 잘 다듬어서 만들면 예쁜 노래가 될 것이다. 이런 노래는 정말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해 본 경험이 없으면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들을 서슴없이 쓸 수 있는 상태가 이 상태인데, 이걸 그대로 쓰는 것은 낯간지러워서 그대로 드러내기 어렵고, 반대로 넘치는 표현들을 꾹꾹 눌러서 애써 돌려 표현하는 것도 어렵다. 이때는 없던 에너지도 생기는 시기이기 때문에, 쪽팔림을 견디기도 쉽고 다른 표현들을 생각해 내는 것에 애를 쓰는 것도 가능하다. 이미 수많은 표현들이 넘치게 쏟아져 나올 것이기 때문에 정제를 잘하는 게 중요하다. 또 고백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고백을 전제로 뭘 쓰다가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을 것 같으니 여기에 해당하는 무언가를 쓰긴 어려울 것 같다. 좋은 핑계다.
이 분야의 노래들은 주로 짝사랑이기 때문에 간절한 마음이 잘 드러나는 것이 중요하다. 연애의 앞날이 불투명하다는 사실은 감춰두고, 너 때문에 밝은 내일이 올 것이라는 얘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노래가 우울할 수가 없다. 그래서 화창한 날에 주로 듣게 된다.
짝사랑 계의 명곡은 미스티 블루의 <날씨 맑음>이라 생각한다. "우연히 마주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거리를 활보하던 시절을 떠올려 보자. '연락할 자신은 없고 동선은 이미 파악하고 있으니 제발 우연히 마주쳤으면 좋겠다'는 다소 어린 시절의 연애 감정이 귀엽지 않은가. 무턱대고 쫓아다니는 것도 아니니 스토킹 같이 무서운게 생각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연히 마주치려고 일부러 밖으로 나가면 절대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슬픈 노래이기도 하다.
'고백송'은 밝아야 하지만 어두운 면이 하나도 없으면 안 될 것 같다. 인생은 홍삼 같은 것이라 몸에 좋은데 달달하기까지 할 수는 없는 것이다.
2. 우리 사랑 영원히
1과 2는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엄연히 다르다. 연애를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와 연애를 하고 있는 상태는 다르지 않은가. 노래의 수는 1보다는 적다. 2의 경우 노래를 만들었을 때의 효과가 1이나 3에 비해 크지 않고, 잘못하면 3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따른다.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데이브(애덤 리바인)는 노래를 만들었다며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에게 들려주는데, 노래를 듣자마자 그레타는 화를 내고 둘은 헤어진다. 2의 노래를 만드는 목적은 '굳히기'일테니, 잘 굳히려면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인기가 매우 많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노래가 있는데, 솔리드의 <천생연분>과 H.O.T의 <캔디>이다. 노래의 마지막엔 "너를 사랑해 영원히"(천생연분), "단지 널 사랑해 이렇게 말했지"(캔디)라고 하지만, 앞부분을 보자면 정말 사랑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천생연분>의 커플은 서로를 속이고 소개팅 자리에 갔다가 소개팅 상대로 만난 건데(90년대니까 가능한 상황), 이렇게 되었으면 차를 마시며 얘기하다가 '헤어질 때가 된 것 같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라는 대화를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하며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고 헤어져야 아름다운 결말이 되지 않겠는가. 그랬다면 댄스곡으로 나오지 못했겠지만. <캔디>는 그래도 조금 이해가 된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다 변한 거야 널 향한 마음도" 라고 했다가 막상 만나서는 "단지 널 사랑해"라고 말하는데, 아무리 준비를 했어도 실제로 헤어지자는 말을 하긴 매우 어렵다. 헤어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한 번 즈음 헤어지자는 말을 못하고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지 않은지. 이런 노래를 댄스로 승화시킨 장용진(작사 작곡) 님,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사신 건가요.
이 분야의 정석으로 생각하는 곡은 스윗 소로우의 <사랑해>이다. 연애를 하는 명확한 이유를 줄줄 읊으면서 연신 '사랑해'라고 외친다. 이 노래라면 잘 굳힐 수 있을 것 같다.
3. 끝
이 경우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1에서 3으로 오게 된 경우와 2에서 오게 된 경우가 있다. 두 경우가 살짝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얘기이다. 이렇든 저렇든 끝은 끝이다.
일일이 세어볼 것도 없이 여기에 해당하는 노래가 가장 많다. 1, 2의 상황에선 노래를 만들고 있을 틈이 없다. 3의 상황이 되면 아무래도 시간이 많기 때문에 노래를 열심히 만들었을 것이다. 명곡의 숫자도 단연코 3이 많다. 1, 2는 대충 만들어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지만 3의 경우는 어지간히 잘 만들지 않고서는 상대방에게 전달될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명곡이 워낙 많아서 어느 하나를 꼽아 예를 들 수가 없다. 어제는 노래방에서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을 불렀다.
내가 만들고 싶다는 애절한 노래는 여기에 속한다. 연애에서 만큼은 단절을 너무 잘하고 감정을 남기지 않아서 어려운 것 같다. 가끔 노래방에서 발라드를 부르고 싶을 때, 빈티지 블루의 <사랑은 사랑이>를 부른다. 나만 아는 노래라서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이 노래에 담긴 감정이 내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그 감정이라 매우 몰입해 가며 부른다. "난 아닌가요, 오오, 그대여"를 애절하게 부르는게 중요하다. 차였을 때의 나는 매우 담담한 사람이다. 그러냐, 그래, 갈게, 안녕. 자기애가 많아서 그런가.
담담하게 부른다는 점에서 권순관의 <그렇게 웃어줘>를 정말정말 좋아한다. 담담하게 부르지만 듣고 나면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노래가 바로 이것이다. "잊지 말자, 그대로 걸어가." 두 사람 다 이런 감정이라면 도대체 왜 헤어지는 건지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일방적인 입장에서 하고 있는 망상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랑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니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가을방학의 첫 노래 <취미는 사랑>을 듣고 가사의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넓은 의미의 사랑을 노래하다니! 배신감과 경외심를 동시에 느꼈다. 만화에서 주로 보는 정의(justice)에 조금 더 가까운 사랑이다. 사랑을 연애에 국한하고 있다가 괜히 뜨끔했던 것이다.
잼의 <우리 모두 사랑하자>도 조금 더 좁기는 하지만 연애에 국한하지 않은 사랑을 얘기했다고 생각한다. 이견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 (사랑하자)가 아니라 (젋은 날의 우리) (모든 것을 사랑하자)에 더 가까운 가사라고 생각한다. 다만 무엇을 사랑해야 할지 정확하게 몰라서 주체하지 못하는 에너지를 춤으로 발산하고 있다.
다음 번에 다시 쓸 얘기인데, 내가 죽는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나와 함께 살았던 고양이이다. 고양이가 죽는 상상을 하면 금방 눈물이 차오른다.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있는데 시골에서 너무 자유분방하게 지내고 있어서 더 이상 도시의 방 한 칸에 데리고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SNS에서 고양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볼 때마다 고양이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곁에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애절한 마음은 전부 고양이에게 가 있나 보다.
홍삼이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