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해야 한다
아직은 20대였을 때, 주변의 30대 사람들이 자꾸만 '운동을 하라'는 조언을 했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지금부터라도 얼른 헬스장에 다니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나랑 별로 차이도 안 나면서 엄청 다른 것처럼 얘기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조언에 귀기울이는 사람이 아닌데다가 운동하라는 얘기는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 알았으니 그만 좀 말하라고 하고 싶었다.
그들이 괜한 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걸 지금은 안다. 실제로 몸이 안 좋아진 것도 있고, 친구들을 만나면 어디가 안 좋다, 요새 무슨 약을 먹는다, 얼마 전에 입원을 했었다 같은 얘기들을 자주 듣는다. 몇 년 사이에 나도, 친구들도 그렇게 되었다. 이게 꼭 나이 때문만은 아닐 거라 생각하긴 하지만, 나이 말고는 탓할 수 있는 걸 떠올리기가 어렵다. 이제라도 그들의 공통된 조언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할 건 아니고, 나도 그들이 조언에 공감하게 되었다고 전해주고 싶다. 당신들은 옳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20대에게 운동하라고 말을 하지는 않을 거예요.
30대 초반에 운동을 석 달 정도 반짝 열심히 한 적이 있다. '절대 무적'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몸이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그때 운동을 했던 건 몸이 안 좋아서도 아니고, 조언에 따르려던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움직일 일이 필요해서 운동을 했다. 연애가 끝난 직후였다. 무언가를 잊는 데에 운동만큼 좋은 것도 없다. 남아도는 에너지를 어딘가에 써야 하니까.
응급실에 처음 가본 것은 2015년 겨울이다. 주말에 출근을 했다가 발이 삐어서 회사 근처 병원의 응급실에 갔다. 아픈 친구를 데리고 응급실에 갔던 경험이 있어서 당황하지 않고 접수부터 진료까지 무사히 잘 마치고 나왔다. 그 이후로도 3번을 더 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모두 나 혼자 알아서 찾아갔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그 정도로 아팠던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응급하냐, 응급하지 않냐의 차이이다. 아픈 건 똑같지만, 이제는 오래 아프고 있을 여유가 없고, 고통의 임계점이 낮아지기도 했다.
넉넉히 쉴만큼 여유롭지가 않은 건 나이를 먹어서라기 보다는 직장 생활을 되었기 때문이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어릴 때는 아프면 언제쯤 나을지를 생각했다면, 이제는 이미 아파본 증상들이 대부분이라 어떻게 하면 빨리 나을 수 있을지 생각한다. 어릴 땐 약도 잘 안 챙겨먹고 마냥 누워 있었는데, 이제는 어딘가 안 좋다 싶으면 바로바로 약도 찾아 먹고 병원에도 간다.
그런데 한번은 새벽에 배가 너무 아파서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응급실에 한번 가서 주사도 맞고 수액도 맞고 집에 돌아왔는데, 집에서 한두시간 누워 있었더니 다시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택시를 부르고 간신히 집 밖으로 기어나가 조금 더 큰 병원의 응급실로 갔다. 의사 선생님이 이것저것 체크하시더니 맹장염인 것 같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맹장 수술 별거 아니라고. 그 얘기를 듣고 얼마 안 있다가 잠이 들었는데, 배가 더 이상 아프지 않아서 놀라며 잠에서 깼다.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는 '일어나셨어요? 검사해보니까 이상 없네요. 집에 가셔도 됩니다.' 라고 하셨다. 새벽 6시 즈음이었다. 집에 온 다음에는 아파서가 아니라 잠을 잘 못자서 조금 더 자고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오전 반차를 내고 집에서 쉬었다가 출근을 했다.
하루에 응급실을 두 번이나 가는 기록을 세운 이 날은 당시에 듣고 있던 노래 만드는 수업의 마지막 강의가 있던 날이었다. 마지막 시간엔 각자 노래를 만들어 온 노래를 앞에 나와 직접 부르기로 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노래를 만들어야 했는데, 결국 노래를 만들지 못하고 응급실에만 두 번을 다녀온 것이다. 숙제를 해온 학생이 거의 없어서 수업을 일찍 마치고 뒤풀이를 하러 갔다. 뒤풀이 자리에서 응급실에 두 번 다녀온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창작의 고통이 이런 것인가봐요, 라고 말하자 모두 웃었다. 웃자고 한 말이기도 했지만 절반은 본심이었다. 창작의 고통이라기 보다는 창작을 해야 하는데 할 줄 모르는 사람이 겪은 고통이 맞겠지만.
당시 회사에서 약간 힘든 상황을 겪고 있었어서, 회사 분들은 다들 회사 생활 때문에 아팠던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다. 굳이 정정하진 않았다, 회사에서 구구절절이 설명하기 어려웠던 때여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노래 만들다가 스트레스 받아서 그랬던 겁니다, 여러분.
그 날은 나의 생일이기도 했다.
작년 초에 술을 많이 마시고 정신을 잃었던 적이 있다. 1월 첫 주 목요일이었다. 퇴사하시는 분의 송별 회식이 있었다. 술이 술을 부르는 경험을 오랜만에 했고, 아침에 깨니 회사의 내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청소하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정신이 조금 들었지만 여전히 술에 취해 있었다. "죄송합니다아아아"라고 길게 말하면서 회사를 나와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이날은 결국 휴가를 냈는데, 여태까지 내가 쓴 휴가 중에 가장 아까운 휴가이다. 이때 찍힌 사진과 영상들은 정말 가관이다. 그 이후로 한 달 가까이 몸이 좋지 않았다. 생각을 하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고, 눈 앞에 보이는 게 내가 직접 보는 게 아니라 비디오(VHS)를 통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날 이후로 잘 안 마시고 있다. 일단 마실 생각이 잘 나지 않고, 마실 생각을 하면 그때 겪은 고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인생의 즐거움을 하나 잃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자주 안 마시게 된 것보다도 마실 때 느껴지는 두려움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게 그리 즐겁지 않아졌다.
그 사건이 일어난 다음 주에는 새로운 노래 수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수업에 갔다. 선생님은 매주 일기를 써오라고 했다. 나는 몸이 안 좋다는 얘기를 줄곧 써서 갔다. 수업이 총 8주였는데 절반이 넘어가니 몸이 좀 괜찮아져 있었다. 마지막 수업이 다가오자 중간에 주제를 바꾸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여태까지 적은 걸 바탕으로 노래를 만들어야 하는데 죄다 아프다는 얘기 뿐이었다. 아프다고만 울부짖을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선생님이 주제를 따로 정해주셨다. 내가 곧 죽는다고 상상을 한 다음 노래를 만들어보라고 하셨다. 선생님 정말 천재 아니신지.
나의 죽음에 대해서 글을 썼다. 고양이를 생각했다. 엄마도 아빠도 아니라 고양이가 먼저 생각났다. 엄마 아빠에게 고양이를 지금도 부탁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했다. 막상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삶에서 별로 아쉬운 게 없었다. '그냥 뭐, 아는 사람들한테 인사나 하고 가는 거지' 라고 생각하며 노래를 만들었다. 노래는 꽤 재밌게 나왔다. 그런데 내가 웃음 포인트라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아무도 웃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대로 비슷했지만, 내가 고의적으로 노리고 쓴 단 한 부분에서만 반응이 싸늘해서 노래를 부르다가 혼자 히죽히죽 웃었다. 정말이지 나란 사람은 대중을 너무 모르는구나.
이번 글엔 다른 노래 얘기를 안 쓰려고 했는데, 이 노래 얘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 없는 것 같다. 노래방 계의 스테디셀러, izi의 <응급실>을 들어보자. 제목은 '응급실'인데, 노래는 전혀 응급하지 않고 가사엔 병원을 떠올릴 수 있는 어떠한 내용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응급실에 누워서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전 애인을 그리워하다가 '응급실에서 울면 아파서 우는 줄 알겠지?'라고 생각하며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면서 이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하면 제목이 '응급실'인 것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그 상황에서 전 애인이 나타나면 노래의 흐름이 무너지게 되니, 전 애인은 절대 돌아오지 말고 가시던 길 그대로 쭉 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