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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소지 Apr 19. 2024

힘차고 강한 임신 초기

내 안에 두 개의 심장이 뛴다 - 이 정도는 버텨야 내 아기지!

내가 임신 사실을 알게된 것은 딱 임신 5주차였을 때. 그 날은 금요일이었는데, 내가 특히 멘붕했던 것은 그 다음 주 수요일 아침 비행기로 한국과 일본에 휴가를 가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상황에 이 몸으로 한국과 일본에 갈 수 있는 것인가? 갈등상담소 상담사는 우선 중절을 생각한다면 한국 출국 전에는 법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담 후 워킹데이로 최소 3일 이후에 중절 클리닉 시술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함) 우선 월요일에 내가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임신 확인을 받고, 한국에서 조금 더 생각을 해보라고 권유하였다. 


월요일 아침, 산부인과가 진료를 재개하자마자 버선발로 튀어가 초음파로 임신 확정을 받고, 이틀 후 장거리 비행기를 타는 것이 문제가 없을지 물어보았다. 중간중간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해주면 괜찮다는 아주 전형적인 독일 자연주의식의 코멘트를 듣고, 보안 검색대의 엑스레이 스크리닝만 피해서 손검사를 받은 뒤 환승 포함 총 17시간 여정의 비행길에 올랐다.


하필 이코노미 좌석이라 걱정이 되었지만, 비상구 좌석을 예매했으니 걱정 없겠다 싶던 순간, 카운터 체크인에서 비상구에 앉으려면 신체 정신 건강해야 하며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야한다는 동의를 구할 때 소심하게 "아 지금 초기 임신인데..."라고 하자 카운터 직원은 앗 그렇다면 당신은 비상구에 앉을 수 없다며 새 좌석을 배정해 주었다. 세상에... 하지만 항공사 멤버십 최상급 티어인 덕분에 파리-인천 보딩 후 멤버 그리팅 시간 때 수석 승무원이 인사를 해주며 1열에 옆자리가 빈 아주 편안한 자리로 나를 이동시켜주었다. 승무원 친구를 통해 보통 플라티넘 회원이 이코노미를 타는 일이 매우 드물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써주신 듯! 또한 좁은 좌석이 걱정되어 등받이 쿠션도 별도로 가져갔더니 정말 12시간 반을 큰 불편함 없이 잘 자며 비행할 수 있었다.


원래 한국 열흘, 일본 열흘로 3주간 계획했던 휴가였지만 산부인과 진료 후 2주 후 기본검진 및 산모수첩 증정(?) 스케줄이 잡혀 예약해두었던 모든 일본 여행을 취소해야했고, 일본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들에게 급히 취소 소식을 전달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귀국 비행기 예약을 바꿔야했다. 이 모든 것이 화요일 하루 동안 이루어진 일...


한국에 도착하여서는 삼시세끼 맛있는 것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고 살도 꽤나 쪘는데 (보통 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가면 살이 쪄서 돌아온다고들 한다. 맛있는 것이 너무 많으니까!), 한국에 도착한 날 바로 친한 친구를 만나서 밥도 먹고 인생네컷도 찍고 노래방도 다녀오고, 그 다음날도 비슷하게 저녁약속을 나가고 하다보니 팬티라이너에 피비침이 이틀 정도 살짝 있다가 사흘째 밤에는 조금 더 왈칵 나와서 불안한 마음에 한국 산부인과 진료에 가게 되었다. 친구의 추천을 받아서 간 교대의 한 산부인과는 부담스럽지 않게 친절하고 정보들을 잘 주셔서 마음이 편했는데, 선생님이 초음파를 보시더니 아기 너무 잘 있다며, 피비침은 간혹 있는 일이니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하시며 아기 심장소리를 들려주셨고, 인천공항에서 출국 때 교통약자 보안구역을 이용할 수 있도록 산모수첩을 만들어주셨다. 


보통 산모들이 임신을 체감하는 순간이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했을 때, 그리고 심장소리를 들었을 때라고 한다. 독일 산부인과에서 처음 초음파를 보았을 때 온 몸이 덜덜 떨렸던 것처럼, 쿵쾅쿵쾅하는 아기의 심장소리를 들으니 아 이제 이건 내 아기다, 이렇게 심장이 뛰고 있는 생명을 내 손으로 중절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임신 12주차까지는 초기 자연유산이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이럴 경우 배아의 염색체 이상일 경우가 대부분이라, 무슨 짓을 해도 떨어질 아이는 떨어지고, 무슨 짓을 해도 붙어있을 아이는 붙어있는 팔자라고 한다. 나도 만 35세의 고위험 산모이고, 아기 아빠의 나이가 나보다 연상이고, 술 먹고 친 사고라(!) 사실 정자와 난자의 퀄리티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라, 이 아이가 정말 기적적으로 건강하고 정상적인 아이이기를 두 손 모아 바라지만, 혹여 자연유산이 될 가능성이 아주 없지 않음을 인식하고 있는 중이다.


만약 이 아이가 건강하게 붙어있을 아이라면, 싱글맘과 함께 인생을 나눠야 하므로 이 아기도 힘차고 강해야 한다. 일부러 무리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지만, 아기와 나의 건강을 위해 산부인과 의사와의 진료 후 기존에 하던 운동이나 활동만큼은 지속해도 된다는 처방(?)을 받아 최근 몇 년간 가볍게 해오던 웨이트 트레이닝을 무게만 살짝 줄여 지속하고 있다.


- 레그프레스 18kg

- 힙 업덕션 23kg

- 허벅지 엇덕션 18kg

- 체스트 프레스 7kg

- 랫풀다운 14kg

- 시티드 로우 9kg


상체 비실이라 상체 무게를 올리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제는 무게를 올리면 안된다고 하여서 저 무게로 유지하며 1주일에 3번은 헬스장에 가는 중이다. 특히 혼자 아기를 안을 일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팔이나 등 허리 근육이 매우 중요함.ㅋㅋ 유산소의 경우 평소에는 천국의 계단이라고 하는 스테이어 마스터를 30~45분정도 했는데, 7주차 때 천국을 오르다가 10분 만에 살짝 배땡김이 느껴져서 그만두고 유산소는 왠지 러닝머신에서 빠르게 걷기로 대체해야할 것 같다. 당분간 헬스장에서는 근력운동만 하면서 걷기는 동네 공원 산책으로 대체 중이다.


운전 역시 임신 사실을 알게된 주말에 프랑크푸르트 - 슈투트가르트 - 우리 동네 삼각형으로 700km 찍고 (고속도로 스피드 티켓도 200유로 짜리를 선물 받음) 장보기나 헬스장 출퇴근 모두 자차 운전으로 진행 중인데, 원래 운전을 좋아했던 타입이라 운전을 하면 오히려 입덧기가 사라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나에게는 좋은 기분 전환이 되는 활동이라 다행이다. 곧 다음 주에는 직장인 MBA 주간으로 또 왕복 500km 운전이 기다리고 있다.


다만 졸음이나 피곤이 너무나 쏟아지는 것이 문제여서, 일주일에 2번 사무실에 나가고 3일 재택을 하는 근태인데 사무실에서 쭉 앉아서 8시간을 버티는 것이 너무 고역이지만 유연근무제라 다행히 6~7시간 정도 일하고 돌아온다. 재택하는 날에는 중간중간 누워서 쉴 수가 있어서 사무실에서 빼먹은 근무시간을 재택 근무날에 채우는 중이다. 


이제 한국에서도 초기 임산부에게 누워서 절대안정만을 권하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 나도 장거리 비행, 장거리 운전, 헬스장 웨이트 운동 등 기존 생활양식에서 큰 변화 없는 활동들을 조금 조심하면서 진행하는 상황이다. 오히려 6주차의 피비침 후에는 더이상 피비침도 없고, 입덧약을 처방 받아 며칠 먹은 후에는 입덧도 점차 가라앉아, 아 이 아이가 이렇게 힘차고 강인한가? 싱글맘인 걸 알고 최대한 엄마 안 괴롭히려고 얌전한가?싶은 마음이 든다. 


아기가 건강하게, 힘찬 에너지 받아서 무사히 잘 자랐으면 좋겠다. 얼른 12주차의 NIPT 테스트를 무사 통과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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