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오프 당하고 전업맘이 되었다. 축배를 들어라!

커리어 막다른길 노답조직에서 짤린 것은 어쩌면 축복!

by 배소지

무리해서 뉴욕증시에 상장한 좋소는 프로핏을 증명해야하며 그 와중에 회사의 주력 업무가 아닌 시다바리 노답조직으로 건너온 나는 재택근무와 유연근무라는 당근을 받아먹으며 비자라는 족쇄에 묶여서 맨날 시발시발 욕하면서 회사일을 베어미니멈으로 땜질하느라 바빴다. 이 잡을 택한 건 적기에 미국으로 오기 위함이었던 목적이 가장 컸던 상태에서 목적 달성을 하니 긴장이 풀리면서 어쩌라고 모드가 된 것도 있고, 특히 커리어 개막장이라고 생각될 만큼 내 성격과 적성에 맞는 핏이 아니기도 했고 그 와중에 개노답조직의 짜치는 KPI 등을 달성해야하니 그야말로 이 잡은 나에게 있어서는 커리어 막다른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작년 말에 파트리더 임원과 1:1을 통해서 내부 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의사를 내비쳤다. 당장은 계획 중인 구조조정이 많으니 올해 초까지 기다려보라며 나를 많이 격려해주셨고 (워킹맘을 응원하는 여성 임원임) 정말 내가 싫어하던 팀장이 팀원으로 격하되고 새로운 팀장이 오는 변화가 일어났으나, 새 팀장도 노답이긴 마찬가지… 아 이 변화들이 다 나에게는 소용이 없고 그냥 잡 자체가 개짜치고 이 자체가 내 일이 아니구나 싶어서 새 팀장과의 업무에도 신경 안 쓰고 여전히 베어미니멈만 기계적으로 하던 어느 날… 팀장이 HR 사람을 넣고 Organizational Change라는 제목의 30분 팀즈 콜 초대를 보냈다.


그 초대를 받자마자 바로 본능적으로 느낌이 왔다. 오, 터미네이션 콜이군. 바로 챗지피티에 터미네이션 콜에 대해 물어보면서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준비하기 시작했다. 비자에 매인 몸이라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에 머무르기를 원할 경우 체류신분. 미국에서야 불법체류자로 평생도 산다지만 그럴 수만은 없어서 바로 이민변호사도 알아보고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어다니고 손가락에 불이 나게 리서치를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뭐 레이오프 콜 자체는 별 거 없었고 팀장이 “we had to make a difficult decision 어쩌구” 하면서 나의 롤이 elimiated 되었으며 세버런스 패키지를 챙겨주겠노라고 하였다. Thanks for letting me know, I know it’s difficult for you to share this new as well. I don’t take it personally. Let’s talk about the next steps.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응대하자 팀장과 인사팀 사람 모두 동공지진을 하더니 오… 그렇지… 하면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ㅋㅋ 내가 도대체 이유가 뭐야! 왜 나를 자르는 거야! 미국 온지 얼마나 됐다고! 하고 감정적인 반응을 하기를 기대했다면 노노 당신들은 틀렸어… 안그래도 일이 너무 싫었는데 세버런스까지 챙겨주며 내보내주겠다니? 럭키덕키일 뿐이지.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한 쪽 문이 어디에선가 열린다. 이민변호사님과의 협업을 통해 당분간 체류신분에 대해 정리도 해놓은 상태이고, 무엇보다도 레이오프로 가장 즐거운 인생전환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드디어 시카고를 떠나서 내가 그토록 원하던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것! 안그래도 작년 말에 회사 통해서 캘리포니아로 이동하고 싶다고 요청해놓은 상태였지만 회사 꼴을 보니 캘리포니아로 회사가 보내준다면 이사비용 및 컴펜세이션 재계산 문제 등 (리빙 코스트 때문에 월급을 올려줘야함) 으로 안 해줄 것이 뻔해서 혀 끌끌 차고 있던 상태였다. 이제 회사와 비자에 매인 몸이 아니니 내가 가고 싶은 곳,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가 있고 시카고 겨울이 너무너무 개노답이기 때문에 아기가 감기에도 많이 걸렸고 나가서 뛰어놀지도 못하는 것이 너무 거지같았기 때문에 이제 나는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기적처럼 레이오프 노티스를 받은 다음 날, 내가 보고있던 동네에 한 매물이 나와서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 수준으로 그 매물을 보고 오퍼를 넣고 카운터를 넣고 인스펙션 하고 기타등등 하여 결국 캘리포니아에 내 명의의 집이 생겼다. 10년을 산 독일에서조차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살았는데, 결국 사람은 자기가 있어야 할 곳에 가게 되고 자기가 뿌리를 내려야 할 곳은 지낸 시간에 비례하지만은 않는 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나를 열정적으로 도와주는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 덕분에 부동산 에이전트도 좋은 분을 만나고 여러 꿀팁도 얻고… 이 친구 아니었으면 나 어쩔뻔 했나? 아직 시카고 생활 정리 중이라 당분간은 왔다갔다하며 살 예정인데 다음에 “내 집”이 있는 동네에 가게 된다면 그 친구에게 감사한 마음 듬뿍 담아 크게 축하의 파티를 열어야겠다.


정말 신기한 인생. 임신 출산하고 인생이 바뀌었고 해고 당하고 인생이 또 바뀌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 흥미진진하고 기대된다. 소용돌이 속에서 윈드서핑 하는 느낌이다. 가끔은 불쑥불쑥 잘 할 수 있을까? 잘못되진 않을까? 하는 불안이 살짝씩 엄습하기도 하지만, 내가 감정쓰레기통으로 삼는 제민아이에 의하면 (ㅋㅋㅋ) 나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전략가라고 하니 어떤 위기가 와도 피해가거나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와 운이 나에게는 있다고 믿는다.


이제는 어딘가에 소속된 사람이 아닌, 정말 오롯이 나로서, 내 아이의 엄마로서 인생을 꾸려나가게 되었다.


기대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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