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이유가 없듯 불륜도 이유가 없다
어느 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동호회 사람이랑 주말에 술 마시기로 했는데, 우리 집에서 먹는 건 위험하겠지?"
"그 사람이 남자야?"
"응"
"근데 뭐가 문제야"
"... 유부남이야"
ㅇ_ㅇ....?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친구는 현재 싱글이고 집안에 남자를 들이는 일은 정말 신중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친구가 왜 유부남에게 끌리는지조차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사건 당일이 되었고, 혼자 집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나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
"야 나 어떡하냐"
"뭔 일이여 지금 어디야?"
"나 해버렸어”
"????? 미친 거 아니야?? 걔 어딨어"
"지금 잠깐 편의점 갔어"
결국 친구는 그 유부남이랑 해버렸고 내가 전화로 여러 번 그놈을 집 밖으로 끌어내라고 말해도 이미 늦어버린 터였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내 친구를 유부남이 겁탈하다니.. 당장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고 싶었으나 뭔가 쌍방의 동의가 있었던 관계라서 더 마음이 복잡해졌다.
"평소에 한 번 하고 싶어서 했어..."
친구는 다음 날 나에게 이렇게 고백했고 나는 마음이 더 착잡해졌다. 그놈의 면상 좀 보자고 해서 전달받은 사진을 보고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사진 속 내 상상 속의 유부남과는 다르게 꽤 훈남이었고, 30대 초반에 키도 컸다.
그리고 불륜이 대한 내 클리셰를 모두 파괴시키듯이 그 남자는 사랑꾼이었다. 결혼한 지 1년도 안 된 신혼이었고, 부인과의 럽스타그램을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지인들에게 당당하게 포스팅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당시 <결혼 작사 이혼 작곡>이라는 TV조선 드라마를 정말 열심히 보고 있었는데 그 드라마에 나오는 불륜 공식을 모두 파괴하는 행위였다.
내 기준 불륜이란 다음 세 가지 경우에만 성사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 아이가 있고 결혼 생활이 오래되어서 배우자 외에 제3의 인물에게 매력을 느끼는 경우
2. 배우자에게 심각한 결격 사유가 있는 경우 (폭력을 휘두른다거나, 결혼 생활에 소홀하거나, 상대방도 바람을 피웠거나)
3. 정략결혼 등으로 처음부터 애정이 없는 경우
친구의 사건을 듣고 나는 사실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친구는 평소에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그에게 관심이 있다고 했으며, 또 둘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내가 속단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처럼 현재 사건이 이후에 맞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 남자가 정말 이번 사건을 통해서 정말 진실되게 내 친구를 사랑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레전드 평론가로 꼽히는 미치코 카쿠타니는 저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에서 이런 말을 인용했다.
“지식보다는 의견을, 사실보다는 느낌을 찬양하게 된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했다. ‘나의 시대’에서 개인의 주관성이 수용되면서 객관적 진실은 약화되었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자아’와 ‘주관성’이 부상했다고 해석한다. 사회 변화와 불안에 대한 방어 작용으로 자신을 과도하게 긍정하는 '나르시시즘'이 도래했고, 킴과 카니예의 '셀피' 시대를 거치면서 '나'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더 만연하게 된 것이다. (크리스토퍼 래시 인용) 그러니까 ‘나’가 괜찮고, ‘나’를 중심으로 한 무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진실의 여부와 상관없이 수용돼버리는 것이다.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서 그 어떠한 가치 또한 절대적으로 신봉되지 못함을 말하고 있는데, 아무튼 여기서도 ‘불륜’에 대한 의견이 긍정적인 여론을 받게 되면 그것은 ‘사랑’으로 해석되어버리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트럼프 정부의 가짜 뉴스를 주로 비난하는 책인데, 불륜에도 적합한 것 같아서 인용해보았다)
얼마 전 종영한 <결혼 작사 이혼 작곡>에서 성훈-이민영 커플이 대표적인데, 새로운 불륜녀(이민영)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확산되고, 성훈의 이전 부인인 부혜령에 대한 부정적인 서사 (밥을 안차려 준다거나, 시부모님을 홀대하고, 남편을 막대하는 행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헤어질 수밖에 없는 서사가 완벽하게 이뤄진다면 사람들은 “그래, 이혼할 수밖에 없었지. 불륜도 사랑이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몇 년 전 연예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한 감독의 불륜 이야기도 그의 말을 빌리자면 "주변에서는 모두 응원하는 관계"라고 한다. 당사자들과 가족들, 지인들이 괜찮다고 인정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불륜이 아니라 사랑이 된 것이다. 물론 그 관계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다시 친구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친구의 행동에 옳거나, 그르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이 되었다. 방황하는 직장인들에게 그날 하룻밤의 인연이 어떠한 위로와 삶의 버팀목이 됐을 수도 있고, 또 정말 나중에 그 박서준 닮은 유부남이 부인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홍상수 감독과 같은 선택을 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넌 괜찮아?”
내가 친구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친구의 안부를 묻는 일일뿐. 어떠한 가치 판단도 의미가 없어진 사회에서 그 친구만 괜찮다면 나에게도 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수 있고, '그럴 수도 있는' 사건이 된다.
요즘 같은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에서 너무 자주 일어나고, 이러한 태도가 그게 말도 안 되는 일을 이해는데 가장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래서 우리는 더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감당해야 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tvN <나의 아저씨> 이선균 대사 중)
이 명대사를 여기에서 쓰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면 이 한 문장이 우리가 이 혼란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마법의 말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