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 없는 이유
"집에 가고 싶다아"
"아 오늘도 진짜 일하기 싫네^^"
"회의 진짜 하기 싫다. 내가 먹고살라고 이런 것까지 해야 하냐"
회사에서 직장인 친구들과 카톡을 할 때는 ‘하기 싫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듣는다. (물론 나도 같이 한다) 일 하다가 집에 들어 눕는 상상은 정말 여러 번 했다. 특히 이건 일요일 밤이나 연휴 마지막 날에 더 심해지는데, 뉴스에서는 ‘월요병 해결법’으로 이런 걸 보도하기도 했다.
왜 직장인들은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고 일하기 싫을까. 내 주변 친구들은 이제 모두 3-6년 차 직장인이 되었고, 대리를 단 친구들도 꽤 있다. 그러나 "일이 재밌다, 하고 싶다" 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전 직장 동료와, "일이 하기 싫다고 느낀 적은 없다"라고 말한 고등학교 동창, 둘이 유일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일 재미없다", "퇴사하고 싶어~" "내일 출근 극혐"이라는 말을 달고 산다.
입사 초반에는 이런 “하기 싫다”는 말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한심해 보였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은 최소 하루 9시간 이상이고(출퇴근 포함 10시간 이상), 깨어있는 시간이 16시간 정도라고 했을 때 하루의 70% 정도를 회사일을 하면서 보낸다. 그런데 그 70% 정도의 엄청난 시간을 '하기 싫다', '재미없다' 고 말하면서 지내는 것은 너무나도 불행해 보였고, 그러면 저걸 왜 하고 있는데…?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정말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기 싫다'는 문장의 의미를 재해석하게 해 준 동창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독일어과였는데, 독일어를 무척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항상 선생님께 질문을 하는 것은 물론, 성적도 좋았고 독일어 회화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기도 했다. (당시는 중국어가 독일어의 인기를 치고 올라오는 시기였기 때문에 그 친구의 행동은 더욱 이례적이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우리는 자연스럽게 희망 진로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ㅇㅇ야, 너는 나중에 독일어과 지원할 거야?"
"음 아니?"
"왜? 너는 독일어를 좋아해서 독어과 가고 싶은 줄 알았어!"
"내가? 나 독일어 싫어하는데^^"
"???????? 정말"
"응, 나 독일어 싫어해."
"헐 독일어 선생님도 너 예뻐하시고, 수능 주요 과목도 아닌데 열심히 해서 정말 좋아하고 있는 줄 알았어."
"아~ 그냥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야. 사실 이제 지겨워 ^^ 공부한 시간이 꽤 되니까 아깝고, 어차피 원서 쓰려면 제2외국어 필요하니까 그냥 하는 거지."
결국 그 친구는 서울대 사범대에 갔다. 서울대에 간 친구 중 성격도 좋았던 친구는 그 친구가 유일해서 기억에 남기도 하지만, 당시 하기 싫은 과목은 공부 시간에 할당조차 하지 않던 나에게 하기 싫은 독일어를 단지 '마무리하기 위해', '지겨움을 이겨내며' 한다는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항상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것을 해야만 했던 것 같다. 나도 대학에 오기 위해 3등급이었던 언어를 1등급으로 만들어야 했고, 회사원이 되기 위해 싫어했던 정장을 입어야 했고, 좋아하는 사람과의 첫 데이트를 위해 취향도 아니던 하늘하늘 원피스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걸 왜 하는지 몰랐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원하는 걸 위해 '하기 싫은 것을' 했던 것이다. 그것만 하면 곧 고지가 보일 것만 같아서, 여기까지 했으니까 아까워서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하기 싫다'는 감정은 이미 그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뜻이고, 내가 감정적으로 어떻게 느낄지까지 경험해봤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 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본능적으로) 예측이 가능하니까,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어떠한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해야 한다고 느끼니까 하는 것이다. 그니까 결론만 말하자면 할 만큼 했다는 것이다. 독일어 공부도 할 만큼 했고, 회사도 이 정도면 다닐 만큼 다녀서 더 이상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럼에도 원하는 어떤 결과를 위해서는 부족할 수 있으니까 재미없는 것들을 견뎌내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과 나는 '하기 싫다'는 감정을 이겨내고, 결과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니체의 사상 중에 ‘힘에의 의지(Wille zue macht)’라는 문구가 있다. 물론 그 사상을 설명하고자 하면 길겠지만 단순히 먹고사는 것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will to live), 자신의 삶을 스스로가 원하는 가치로 살고자 하는 의지(will to power)로 채우는 것이다.
즉 당장의 생존만을 위해 사는 것은 (당장 굶어죽지는 않으니까) 그 원동력이 적을 수 있겠지만, 이 현실의 자질구레함을 이겨내는 힘은 개개인의 더 높은 가치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일 수도 있고, 이전부터 꿈꾸던 일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돈 걱정 안하며 사는 것일 수도 있고, 정말 좋아했던 그 사람에게 찌질하게 자존심 세우지 않고 쿨하게 모든 걸 줄 수도 있는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물론 그 높은 가치는 당장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는 현재를 조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친구들의 수많은 “하기 싫다”는 말은 곧 "소중한 걸 얻기 위해 노력 중이야"라는 말로 해석하기로 했다. 당장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이걸 하고 있는지 모를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고군분투했던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