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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유 Oct 18. 2022

먹음직스러운 나의 떡


자주 가는 공원이 있다. 아주 어릴 때는 노는 곳으로, 언젠가는 위로를 받으러,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러. 최근에는 산책 겸 운동을 하러 간다.


몇 년 만에 공원에 공사가 생겼다. 그래서 공원 전체를 가장 크게 돌 수 있는 산책로가 중간에 끊기게 됐다. 공사를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음에도 공사하는 공간 바로 옆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길이 생겼다. 원래 있는 길로 가게 되면 크게 한 바퀴를 돌지 못하기에 사람들이 잔디를 밟고 작은 샛길을 내어 다닌 것 같다. 한 사람만이 걸을 수 있는 폭으로 생긴 길을 보고 나는 ‘내가 길이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내가 밟히면 어쩌지. 누군가가 가야 하는 길에 내가 있어서 내가 힘 없이 밟히고 만다면 어쩌지. 그러면서 친구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들이 가는 길은 휴학 뒤에 인턴, 그리고 복학. 취준과 취업의 길이 있었다. 내 길에는 뭐가 보이지는 생각하기도 전에 그들이 걷는 길을 걷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주 살짝 두려웠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디자인 인턴을 하는 동기들이 내심 부럽고 항상 멋져 보인다.


이렇게 복학을 하면 나는 인턴을 안 해본 복학생이 된다. 휴학하고 뭐했냐는 질문에 내가 한 것들을 일일이 설명하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한 인간이 되는 게 낫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아직 떳떳하지 않다. 그러면서 내가 못 해본 것들과 안 해 본 것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일단 해외여행 음.. 막상 생각하려니 생각나지 않는다. 어쨌든 하지 못한 수많은 것들이 있을 텐데 거기에 인턴 하나 추가된다고 세상이 망하겠어? 이렇게 생각하니 커 보이는 남의 떡에 가려져 있던 나의 떡이 보였다. 생각보다 맛있게 보이는데..? 동시에 나 외의 모든 동기들, 딱 두 갈래로 나눠져 있던 길이 수 백개의 길로 나누어졌다. 내가 그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만의 길을 걷고 있었다는 사실. 그들을 뭉뚱그려 퉁쳤지만 그들도 각자만의 길을 다 혼자 걷고 있었다. 갑자기 마음이 너무 평온해지면서 발걸음이 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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