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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유 Oct 19. 2022

예술가의 영감



좋은 기회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창작 여행을 가게 됐다. 1박 2일 동안 영감을 빨아드리고 작품을 순식간에 뽑아낸 뒤 합평을 하는 여행이다.


숙소 체크인 후, 여유 시간이 생겨서 홀로 터덜 터덜 바다 산책을 했다. 비가 내린 월요일 낮의 바다는 내가 본 바다들 중에 가장 적막했다. 사람은 열 손가락으로 세고도 손가락이 남았다. 파도는 잔잔했고 하늘은 무한했다. 한참을 모래사장에서 서성거리다 도로 앞에 있는 밴치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멍을 때렸다. 방해하는 것 하나 없이 고요하고 완벽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 누가 말을 걸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내 옆 벤치에 어떤 여자분께서 앉아 떡을 괴고 나를 바라보며 “여기서 풍경 보면서 멍 때리는 거 좋아요?”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자기가 차를 타고 도로를 지나가다가 나를 발견했고, 멍 때리는 내가 너무 예뻐 보여 꼭 말을 걸고 싶어 차를 멈추고 왔다고 한다. 나는 영감을 얻겠다는 의지 하나로 무장해제되어있던 탓에 이 사람이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겠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이 사람이 살짝 취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에게 모든 걸 해주겠다고 하며 손을 잡고 모래사장을 걸었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어필(?)했다. 넘실거리는 파도 앞에 아슬아슬하게 서있을 때 이 정체 모를 여자는 바다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대답하진 않았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 앞에 서서 저 멀리 있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언가에 이끌리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며 들어오라고 하는 어떠한 힘이 느껴진다. 나는 이 여자가 들어가지 못하게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여자의 끝없는 해맑음에 지친 나는 같이 온 사람들의 도움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처음에는 상황이 재미있어서 웃었고 나중에는 어이없어서 웃었다. 이렇게 글만 읽어서는 세상 위험하게 모르는 사람과 함께 하냐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쉽게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었다. 나를 공격하려고 해도 내가 힘으로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그래도 자칫 위험할 수도 있었을 상황이었던 인정. 만약이 여행이 창작여행이 아니라 친구들 혹은 가족들끼리 온 보통의 여행이었다면 껄끄러운 미소를 날리며 자리를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창작여행이었고 결국 그녀는 영감이 되었다. 그녀가 했던 말과 내가 느꼈던 감정, 그리고 이전에 갔던 제주도에서의 장면이 합쳐서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순식간에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굉장히 짜릿했다.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위로이고 하나는 영감이다. 세상 모든 것의 예술가에게는 영감이고, 나라는 인간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을 연결 지을 줄 알아야 한다.


창작 여행을 다녀온 후 작업을 마무리하여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텀블벅 펀딩을 진행하며 알게 된 작가님의 댓글이 이 여정을 완벽하게 마무리 지어 주셨다.

“작가님 쉬지 말고 여행 다니셨음 좋겠..”


또 떠나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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