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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유 Oct 21. 2022

꿈의 유실물 센터



사람들은 어렸을 때의 기억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나의 어린 시절 기억들은 특이하다. 내가 겪은 어떤 사건 사고라기보다 내가 보고 들은 어떤 것들의 파편이다. 예를 들면 안방에서 흘러나오면 클래식 음악, 거실에 빼곡히 꽂혀있던 책들의 모습과 제목들, 아주 작은 화면으로 봤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과 멜로디,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보고 들었던 그때의 내가 느낀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 그건 다시 한번 느끼려고 애써봐도 따라 할 수 없는 감정이다.


이 모든 걸 평생 동안 조각으로만 가지고 있었다. 어떤 책이었는지, 제목이 무엇인지, 작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청소기로만 찾아내 빨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작은 파편이었기에 그저 흐릿한 따스함으로 남아있었다.


최근 들어, 꿈의 유실물 센터에 자주 들락거렸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들을 찾아 기록을 뒤적거렸다. 유실물 센터라고 해봤자 내가 해석할 수 있는 시대의 기록은 고등학생 때부터였기에 어린 시절의 파편들이 다 어디로 튀어 버렸는지 찾지 못했다.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현재 내가 관심 가는 것들의 꼬리를 계속해서 무는 것이다. 아주 조금씩, 유실물 센터의 깊은 곳으로 끌려들어 갔고 파편을 찾아버렸다. 찾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소름이 돋았다. 내가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것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현재의 ‘나’라는 사람이 정말 긴 시간에 거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렇게까지 과거에서부터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책장을 뒤지다가 나온 장 자끄 쌍페의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와 <선생님은 너무해>. 2011년에 구매한 것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다. 그리고 그림책과 관련된 공부를 하다 발견한 레이먼드 브록스의 <스노우맨>. 이 애니메이션은 정말 만 번은 본 것 같다. 우연히 앉은 북카페 동화책 코너에서 발견한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 앤서니 브라운의 <동물원>, <돼지책> 등등.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봤던 작품들, 내가 사랑했던 것 투성이다. 왜 잊고 지냈을까?


정말 운명의 장난이 분명하다. 지난 8월 레이먼드 브록스 와 장 자끄 쌍페의 부고 소식이 올라왔다. 부고 소식을 들은 지 일주일이 지나서 간 또 다른 북카페에서 장 자끄 쌍페의 책들을 한참 바라보던 내게 엄마는 그의 책 두 권을 나에게 선물로 주셨다. <쌍페의 어린 시절>과 <계속 버텨!>. 제목만으로도 위로를 받았다. 며칠 뒤에는 소리를 아주 크게 키워 놓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혼자 <스노우맨> 애니메이션을 본 후 자기 전에 엄마가 선물해주신 책을 읽었다. 그들을 위한 나만의 작은 추모식을 가졌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조금은 명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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