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연,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창비, 2020"를 읽고
창작을 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창작하는 삶이란 어떤 걸까, 예술가는 어떤 삶을 살까 궁금했다. 시간이 흘러 몇 번의 경험 끝에 이제야 조금 알게 됐다. 예술가는 사력을 다해 타자의 세계에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해 묻고 그에 관해 들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끔은 너무 물러 터진 내가 싫었다. 나는 너무 예민했고 민감했으며 연약했고 자주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한동안 나는 그런 나에게 천착하는 삶을 살았다. 나의 모든 작업들은 '나'로부터 시작했고 작품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완성되었다. 일련의 과정을 겪은 후, 이제 더 이상 세상에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유한한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수록 나에게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나의 존재가 지워지며 나라는 존재의 경계도 흐려졌다. 누군가의 입 밖으로 나온 단어 하나, 우연히 땅으로 떨어진 솔방울 하나, 영업을 종료해 문을 닫은 가게 하나. 아주 사소한 것들이 더욱 쉽게 마음에 박혔고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나와 세상의 흐릿해진 경계를 넘나들며, 내가 이렇게 물러 터졌기에 예술을 할 수 있는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동시에 나 외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 그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것, 그리고 귀 기울여 듣는 것이 창작하는 삶이라는 것도 느꼈다. 그리하여 마음에 박힌 타자의 이야기를 다치지 않게 꺼내어 세상에 아름답게 선보이는 것이 예술가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타자의 세계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도 예술가는 여전히 고독한 존재였다. 무언가를 세상에 선보일 때 온전히 겪어야 하는 시간은 고독할 수밖에 없기에. 좁은 방 안에서 선을 긋고 있노라면 고독을 넘어 세계와 내가 단절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그 고독함을 견뎌내어 탄생한 작품이야말로 세상과 나를 연결시켜줄 고리라는 걸 알았다. 사람과 사물과 세상에 관심을 갖고 그것들을 더 깊이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는, 그럼에도 계속 나 외의 것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삶을, 예술가는 산다.
안희연의 시집은 내가 깨달은 예술가의 삶과 태도를 보여준다. 물러 터질지 언정 사력을다하여 타자의 세계로 나아가는 이들은 결국 자신과 다른 세계를 이해해 내고 그들과 함께 하길 선택한다.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에 수록된 작품들은 자신이 또다시 고립되게 되더라도 기꺼이 타자의 세계로 향하는 예술가의 진정한 면모를 담아냈다. 읽으면 읽을수록 닮고 싶어지는 예술가가 안희연의 시집에 있다. 타자의 세계를 시각화를 하고자 하는 나에게 세상의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하는 누군가의 삶이 활자의 형태로 깊숙이 박혔다.
2020년에 발간된 안희연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은 그녀의 세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은 작가의 '살피는 마음'으로 만들어져 독자에게 따듯한 슬픔을 전한다. 작가는 작은 것들을 크게 보고, 죽은 것들을 다시 살려내어 자신의 언어로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한다. 시집 곳곳에서 왜인지 시인이 보인다.1) 살피려는 예술가의 고군분투가 느껴진다. 앞으로 나는 예술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1) 안희연 작가 인터뷰, 창비 블로그 https://blog.naver.com/changbi_book/222076191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