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세 편의 시가 나에게 각별히 다가왔다. 각각의 시에 깊이 들어가 보며 각 시에서 반복되는 이미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바로 '명암'의 이미지이다. 「역광의 세계」에서는 '빛'과 '밤'으로, 「구르는 돌」에서는 '캄캄함'과 '환한 시간'으로, 「호두에게」에서는 '문도 창도 없는 방 안'과 '백지'로 반복되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바와 같이 어둠은 예술가가 느끼는 고독과 고뇌의 의미, 밝음은 타자의 세계이자 예술가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성의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버려진 페이지로 책을 만들고, 거대한 침묵이 올지라도 이야기를 찾아 구를 것이며, 호두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백지를 건네는 그런 예술가가 되고 싶어졌다. 게다가 이 세 편의 시가 나에게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사력을 다해 자신과 이질적인 타자의 세계에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해 묻고 그에 관해 듣는' 예술가는 어떻게 해야 그들의 이야기를 더 잘 전할 수 있을까. 나에게 기꺼이 자신의 세계를 보여준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해야 다치게 하지 않고 세상에 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현대 사회는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다. 자신의 것을 세상에 선보이며 대중들과 연결되기 최적화된 사회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창작자가 예술가는 아님을 안다. 무관심과 혐오의 두 가지 선택지만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애정 어린 마음으로 타자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사람이 진정한 예술가가 아닐까. 비록 고독할지라도 기꺼이 타자의 세계로 나아가는 예술가가 많이 탄생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