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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산수라떼 Mar 17. 2020

02화  죄책감에 시달리는 부모들

과잉 사랑과 죄책감이 부모를 피폐하게 한다.



부모와 자녀의 거래는 불공정하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공정거래의 원칙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부모는 보호, 사랑, 이해, 교육 등 자녀가 성인으로 자라기까지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반해 자녀에게 돌아오는 보상은 종이 쪼가리 카네이션이나 마지못해하는 윙크가 전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 부모는 그것도 좋다고 싱글벙글한다는 점이다. 도대체 신은 부모의 뇌에 무슨 짓을 해놓은 것인가?

심지어 청소년기의 자녀는 날 선 목소리로 '엄마가 해준 것이 뭐냐'라고 반문하기까지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해 버려도 시원치 않을 일임에 분명한데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을 탓한다. 세상에 이런 불공정한 거래가 어디 있단 말인가?


신(神)은 이 희대의 사기극, 대동강 팔아먹는 건 애교로 만들어 버리는 이 불공정한 거래가 인류 역사에서 공공연히 성립하도록 부모 뇌에 아주 몹쓸 짓을 했다. 그것은 바로 사랑과 죄책감 준 것이다.

 

사랑

쌔근쌔근 잠든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을 살며시 잡아 본 사람은 그 마약 같은 경험을 잊지 못한다. 솜털 보드라운 볼에 얼굴을 비벼 본 사람은 젓 비린내 살짝 나는 그 향기의 마력에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 말이다. 시간과 땀, 인생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그 강력한 이끌림을 거부할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다.

살짝 펴 봐 봐. 다시 꼬부라져. / 구글 이미지


죄책감

몸이 좋지 않은 아침, 시리얼로 아침식사를 대충 때운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끼는 엄마가 있다. 시리얼은 원래 그런 날 먹으라고 나온 제품 이건만 시리얼만 먹고 통원버스에 오르는 유치원생 아들의 뒷모습에 무기력한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애는 어제 먹은 엄마 밥보다 만족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놀이터에서 아이가 놀다 손이라도 까지면 왜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는지 이내 자신을 탓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죄책감은 사랑 다음으로 부모 자식 간의 불공정 거래가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아파? 엄마가 미안해. / 구글 이미지


사랑과 죄책감이 아니었으면 부모 자식간의 불공정 거래는 막을 내렸을 것이다.
 물론 인류 역사도 막을 내렸겠지만.



부모의 죄책감을 종용하는 사회


SBS 시사/교양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2006~2015)는 거의 10년간 방송 편성이 될 정도로 사랑받는 프로그램이었다. 예고편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예의에 벗어난 행동을 넘어 폭력적 언동을 서슴지 않았다. 아이의 언행이 심각할수록 시청률도 높아졌다. 시청자들은 안타까운 얼굴로 내내 지켜보지만 저 깊이 어두운 마음속, 남의 자녀 삐뚤어진 것 보는 재미가 쏠쏠했었다. 은근히 내 새끼는 잘 크고 있는 듯한 자부심을 안겨주면서 이중적인 인간의 심리를 잘 이용했던 프로그램이다.


여하튼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정말 다양한 가정의 사연을 485부작에 걸쳐 보여주었다. 아이들의 문제 행동은 다양했지만 문제 해결의 플랫폼은 거의 모두 동일했다. 바로 부모의 양육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릇된 양육방식의 근원은 대부분 부모의 정신적 불안에 있었다. 그리고는 아이가 아닌 부모를 상대로 마음 치유를 시작한다. 마음 깊은 곳, 어두운 과거와 마주한 부모는 오열하며 결국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물론 부모의 잘못된 양육 방식, 심각한 경우 아동 학대에 가까운 부모의 양육 방식은 분명 허용될 수 없다. 그런 부모들은 분명히 적절한 심리 치료를 받고 자녀와의 건강한 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일반적이고 평범한 부모들이다. 과도한 죄책감을 직간접적으로 요구받으며 자식의 작은 실수도 자신이 해결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부모 말이다.


사랑과 죄책감이 인류가 번영할 수 있었던 요인은 맞지만 과잉의 사랑과 죄책감은 부모에게 불필요한 짐이다. 조금 내려놓을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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