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by 배우리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기대를 내려놓으니 마음이 고요해졌다.

이상하긴 한데,

그게 더 나한테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텅 빈 느낌은 아니었다.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그제야 나 자신을 마주 할 수 있었다.


나는 늘 어중간한 자리에 있었다.

위도 아래도 아닌 어딘가에,

딱 맞는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애매하게 서있었다.

그래서 더 애썼던 것 같다.


이젠 굳이 중심 잡지 않기로 했다.

그냥 어느 쪽으로도 흘러가지도 않고

가만히 떠 있기만 하기로.


마치 물 위에 살짝 떠 있는 돛단배처럼.


바람이 불어도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를 가누면서도

닻을 내리진 않은 상태.


어쩌면 닻을 내릴 만큼의 무거운 마음을

이제는 다 내려놨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회사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사람과의 거리를 다루는 법을 조금씩 배우게 된다.

예전엔 그런 것들이 씁쓸하다고 느꼈는데,

이제는 그 거리가 가진 의미를 알 것 같다.


무리해서 가까워지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라는 걸.


예전의 나는 눈치 없이 모든 걸 껴안았다.

그게 틀렸다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다만 그때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외로움으로만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이제는

온전히 어딘가에 속하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여전히 흘러가진 못했지만

어디에도 닿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

적어도 부서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파도 위에서 버티는 힘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가벼움을 받아들이는 데서 나온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위에 있다.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떠 있으면서도 사라지지 않고,

바람이 지나가면 바람을 보내고,

파도가 치면 파도를 품으며,

그렇게 오늘을 건너고 있다.



이전 11화Dear, Me. Sincere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