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택은 명확한 이유로 시작되고,
어떤 선택은 수많은 이유가 얽혀 있다.
나의 ‘버팀’도 그랬다.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졌고,
누군가는 안정적인 수입을 감당해야 했다.
가족의 생계를 지켜야 했기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아침마다 눈을 뜨고 회사로 향하는 길은
의무감으로 가득했다.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그건 분명히 우리 가족을 위한 필수적인 희생이었다.
출근길에 아이의 손을 놓고 어린이집을 나설 때,
작은 손이 따라오려던 순간의 아픔은 매일 반복됐다.
하지만 그의 미래를 위해,
조금 더 나은 환경을 주기 위해 나는 버텼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내 안에서 또 다른 이유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일하는 게 항상 싫지만은 않았다.
업무에 몰입하며 느끼는 성취감,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뿌듯함,
그리고 동료들과 나누는 소소한 웃음.
물론 피곤하고 귀찮은 날도 많았지만,
그 안에서 나름의 만족도 있었다.
특히 업무가 적은 날,
상사가 출장 간 날,
연말연시처럼 모두가 느슨해지는 시기엔
조용히 ‘월급 루팡"의 로망이 실현되기도 했다.
직장 생활의 단점 중 하나는
자유가 없다는 점일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규칙에 따라야 하며,
타인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것.
나 역시 처음엔 그 틀이 답답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익숙함 속에도 자유는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과의 관계가 조금씩 편안해지고,
일에 익숙해지면서
나는 그 안에서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갔다.
언제 쉬어야 할지,
어떻게 효율적으로 마무리할지,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지.
그 작은 감각들이 모여
나만의 리듬과 방식이 생겨났다.
같은 구조 안에 있지만,
그 안에서 나는 나름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물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야근을 마치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갈 때,
상사의 부당한 말에 속이 뒤틀릴 때.
그럴 때면 늘 같은 질문이 따라온다.
‘정말 계속 이 일을 해야 할까?’
하지만 이내 생각이 정리된다.
이 모든 것이 내 삶의 일부가 되었고,
나는 이 안에서도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버팀의 이유는 달라졌다.
처음엔 생존이었고, 의무였다.
이젠 선택이고, 나만의 방식이 되었다.
익숙함이 주는 평온함,
작은 성취가 주는 기쁨,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한 자유.
그것이 내가 이 자리를 지키는 진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