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필연의 흐름'을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첫 에세이에 교수님은 오로지 팩트로만 혼쭐을 내주셨습니다. 에세이를 읽어보시니 '잘하려는 마음은 있지만 마음만 있다'랄지 '유식하지 않다'랄지 '아직 문장이 아니다'랄지 표현이 강렬해서 듣다 보니 눈물 쏙 빠질 뻔했습니다. 지식이 부족한 제 자신을 너무나 잘 알기에 독서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답니다.
특히 독서를 '수련'이라고 생각하신다는 교수님의 말씀은 아직도 크게 와닿습니다. 수련은 일부러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기도 합니다.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련의 자세로 일주일에 한 권씩은 꼭 읽겠다고 목표 세웠습니다. 아직까지는 잘 지키는 중입니다. 책을 안 읽던 사람이 책을 읽으니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겠죠.
이날 수업에서 '남들 다 하는 것을 하며 평범하게 사는 것'은 나를 잃게 하는 안 좋은 습관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동안 남들 다 하는 것을 따라 해본 적은 없습니다만(오히려 반발심리로 끝까지 안 하곤 했어요) 단지 소비문화뿐만 아니라 이념과 사상, 가치관까지도 다 나 스스로 정한 것이 맞는가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만들어진 시스템 내에서 잘하면 1등밖에 안 되지만, 그 시스템을 뛰어넘으면 1류가 된다는 교수님 말씀은 너무나 혁신적이었습니다. 1등을 하고 만족하는 삶은 끝없이 공허하고 불안할 뿐입니다. 하지만 1류가 되면 스스로를 위한 틀을 새로 짰기 때문에 이미 자유롭고 불안하지 않습니다. 나를 믿기에 거기까지 나아간 걸 테니까요. '세상에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나'와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내가 짜는 틀'을 찾기 위해 수련해야겠습니다.
저는 주변으로부터 '피곤하게 산다'거나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냐'는 말을 약 20년은 들어왔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고 나서 필수도 아닌 방학숙제를 오로지 제 만족을 위해서 다 해갔더니 친구들이 "왜 안 해도 될 숙제를 굳이 하냐"라든지 "너 때문에 우리 다 숙제검사하면 어떡해"라며 핀잔을 줬습니다. 그때 저는 미안하지는 않았고 억울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건데 눈치를 보고 친구들에게 사과까지 해야 한다니.
물론 결국 저 때문에(덕분에) 모든 친구들이 숙제를 다시 일주일간 해서 제출했습니다. 친구들이 숙제를 그때라도 하면서 분명 스스로에게 도움 되는 배움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아니었다면 다들 방학 끝나고 나서도 나사 빠진 애들처럼 학기 초를 보냈겠죠. 제가 만들어낸 변화 중 하나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숙제라서 하지 않는 것'은 주어진 명령에 그대로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이라도 주어진 것이라면 조건 없이 수용하면 안 됩니다. 그보다는 의식적으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찾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나'를 찾는 일입니다.
'아직 발견하지 못해서 내가 아닌 나'를 찾고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책 많이 읽고 공부해야겠습니다. 그래야 주어진 틀 안에서 놀며 만족하는 사람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저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특히나 교수님은 어떠한 근거도 없이 자신만만해서 무모한 도전을 하는 사람을 '경거망동한다'라고 표현하며, 앎이 수반된 채 무모한 도전을 하는 사람을 '탐험한다'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저는 무모함을 꿈꿉니다. 하지만 지금의 앎 상태라면 탐험이 아니라 경거망동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근거 있는 무모한 도전이 될 때까지 지적으로 저를 수련시킬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아야겠죠. 제가 '알고 있는' 세상이 정말로 '알고 있다'라고 말해도 되는지 의문이 듭니다. 교수님은 '세상은 더하기 빼기가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더하기와 빼기로 설명하기보다는 '변화 전'과 '변화 후'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존재적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변화를 일으키는 동물입니다. 이것이 겉으로 슬쩍 보면 어떤 것이 '더해진 것'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엇인가 만들어져 변화가 일어난 것'일 확률이 높습니다.
보이는 그대로를 감각으로 받아들이면 '더해졌다'라고 말하겠지만, 보이는 것을 자세히 생각하며 들여다보면 '무엇인가 생겼고, 그로 인해 어떠한 변화가 생겼다'라고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이 '해석능력'을 키워보고 싶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든 '현상을 해석하는 능력'이 있어야 통찰력이 생기고, 통찰력이 있어야 온전히 저로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온전히 저로서 살아야만 저도 '무엇인가를 만들어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고'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겠죠.
저는 우연히 일으키는 변화는 결코 없다고 믿습니다. 그 모든 변화는 다 치열한 필연의 노력 끝에 맞이한 것입니다.
‘치열한 필연'에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노력,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겠다는 열정과 투지, 어떤 변화를 바라는지 간절히 바라는 욕망, 지식을 쌓고자 부단히 이어가는 수련과 같은 것들이 총체적으로 버무려져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치열한 필연의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