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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영 Oct 21. 2024

삶을 송두리째 바꾼 3가지 규칙.

“세상을 열고 지탱하자“ 입학식&첫 일출산행 수난기

이전까지는 입학 전의 이야기였다면 이번 편부터는 입학 후의 이야기입니다.



5기 동지들의 자기소개를 들으면서 저는 사실 놀랐습니다. 한 명쯤은 전공이나 직업이 겹칠 줄 알았거든요.


스승님께서 "23명의 우주가 내게 왔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맞습니다. 23명의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오고 있는 사람들이 더 나은 '나'가 되기 위해 같은 시간, 함평 호접몽가라는 공간에 모였습니다.


오는 방식도 갖가지였고 각자의 상황도 전부 달랐습니다.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스승님은 기본학교 입학식 전에 가족들로부터 축하받으셨다고 했습니다. 저도 많은 축하를 받으며 입학했던 지라 스승님이 저희를 만나기 전에 저만큼이나 기대하셨다는 사실이 감사했습니다.


우주 하나, 하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정말 좋은 에너지를 얻었습니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 또 간절한 사람들이 모인 공간의 분위기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만큼 근엄하고 또 진지했습니다. 모두가 이 삶에 진심이었습니다. 들을수록 저도 기본학교에 지원할 당시의 초심을 떠올리고 또 나아갈 동기를 얻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첫날 일정 이후부터 곧바로 삶이 바뀌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일상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고 말해야겠습니다.


제 삶은 곧 제 삶에 대한 태도니까요. 그 내용은 크게 3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고독하고 독립적으로 살 것.

둘째, 몸을 움직일 것.

셋째, 이념과 사상 등에 나를 가두지 말 것.


위 세 가지를 원래 일상에서 잘 지키는 사람이라면 저는 기본학교에 안 와도 된다고 감히 말씀드려봅니다. 저는 저 중에 단 하나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지라 입학식 이후 저 세 가지를 명심하며 일상을 보냈더니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물론 저 세 가지를 단순히 머릿속에 주입했다기 보다는, 일요일 새벽 일출산행을 하면서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에 빠르게 체화된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나 첫째, 셋째 규칙을 지키는 것은 제 인생에 있어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사람을 워낙 좋아하는 데다가, 같은 가치관과 사상을 가진 사람을 더 좋아하고 어울려왔던 저는 '편안함'에 안주하고 있었습니다. 일상을 전부 혼자 해보며 그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은 채로 사람을 대해보는 일은 제 시야를 크게 넓혔습니다.


무엇이든 사랑하는 것이 취미인 저에게 있어, 다른 대상이 아닌 '나'를 사랑하는 일은 낯선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스스로 사랑해왔다고 느끼면서도 혼자 보낼 시간을 좀처럼 주지 않던 저는, 어쩌면 고독해본 적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혼자 보내는 동안 제게는 여백이 생겼고 그 여백의 시간 동안 온전히 제게 집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충전된 저는 더더욱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스승님이 말씀하신 세상에 대한 '자비와 사랑'이 저를 사랑했더니 더욱 충만해진 겁니다!


그러다보니 이념과 사상 등의 틀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저를 설명해주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왜 틀 안에 살았었는지 스스로 신기할 정도로 이제 모든 다른 것을 다 품을 수 있게 됐습니다. 못 품을 이유가 없습니다. 어찌됐든 저는 저를 사랑하니까요.


또 저는 원래 운동을 좀처럼 안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동지들보다 등산에 대한 걱정이 남달리 컸습니다. 낙오되면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계획만 한참을 짰으니 말 다 했죠. 제가 부정적이고 걱정이 많은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제 신체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걱정하면서 시작한 일출산행은 역시나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낙오되지 않고 정상에 올라 일출을 봤습니다. 항상 그렇듯, 과하게 걱정한 것보다는 나은 결과였습니다. 그래도 제 인생 첫 정상 등산이었으니 인간승리였죠.


일출산행하는 내내 저는 지난 제 모습을 돌아보고 자아성찰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앞으로는 운동을 매일 할 것을 수도 없이 다짐하고, 그동안 정상을 맛보지 못하고 봉우리 몇 개 넘으며 만족했던 지난 경험들을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첫 등산 일출을 보며 제가 다시 태어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상에서 구호를 외치면서는 세상을 깨우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을 깨우기 위해서는 제가 깨어나야 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저를 바꾸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해서 제가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고개가 워낙 많은 산인지라 하산하면서도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해냈다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그렇게 뿌듯하고 기쁜 마음으로 가득찬 상태로 쓴 첫 에세이는 아주 막연하게 자신감 넘치는 글이었습니다. 스승님은 '막연함, 안개' 등과 같은 키워드로 제 에세이 피드백을 채워주셨습니다.

제가 다시 읽어봐도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만 느껴지지 막연하기 그지 없습니다.


하지만 나중이 되면 제 에세이도 성장해있을테니 부끄럽지만 공개합니다.


인생 첫 일출산행 후 쓴 '나는 누구인가' 주제의 에세이.


부끄럽지만 오늘 처음으로 산 정상에서 세상을 봤습니다. 이전에는 왜 이러한 풍경을 보지 못했는지 반추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정상에 오르기 직전 하산해왔던 삶을 살았습니다. 처음 그토록 힘든 길을 걷겠다고 결심하고서 많은 봉우리를 힘겹게 넘어서고 숨이 차올라도 악바리로 버티고 죽을 것 같다는 느낌에도 한번 더를 외치며 눈앞의 고지를 넘어놓고서는, 꼭 정상에 오르기 직전 마지막 고비 앞에서 이전에 들지 않던 걱정과 잡념이 저를 삼키곤 했습니다.


'정상에 올랐는데 내가 기대했던 풍경이 아니면 어쩌지, 정상에 올라도 아무것도 없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들이 마지막 고비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큰 두려움이 되어 정상에 이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오늘 정상에서 보는 일출은 저에게 '너는 이 풍경을 볼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올라가는 내내 땅과 돌의 질감에 집중했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소리를 들었고, 이미 만들어진 길과 그 옆에 아직 개척되지 않은 '아직 아닌 길'을 보았습니다.


제게 닥치지 않은 정상의 순간을 과하게 걱정했던 저보다는, 정상까지 가는 길에서 매 순간 제가 느끼고 경험하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경험은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를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제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까지는 정상에 오르기도 전에 두려움이라는 허상 앞에서 일출풍경을 놓쳐온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내 발 아래 느껴지는 땅의, 나무의, 잎의, 풀의 감각과 자연의 응원을 온전히 받으며 묵묵히 올라 정상까지 가서 세상이 깨어나는 모습을 보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열리는 순간을 지켜보면서 저는 제가 바라는 것이 세상을 여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이 지는 모습을 아름답다며 기록에 남기던 기분과 달리 세상이 열리는 순간은 모든 것들이 조용하고 또 벅찼습니다. 그동안 열리지 않은 세상의 모습을 마주하기 두려웠던 제 아픔이 정화되었습니다. 앞으로 세상을 열기까지는 수도없는 봉우리가 있겠지만, 저만의 길로, 때로는 선배의 길로, 또 아니면 같이 가는 사람들의 길로 걸어가며 막연한 두려움을 넘어서서 세상을 깨우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제 이름의 뜻은 '지탱할 지, 맞을 영'을 써서 '열심히 지지하고 지탱해서 맞이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동안은 '지지받고 환영받는다'고 해석해왔습니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제가 산을 오를 때 마음껏 기댈 수 있도록 든든하게 뿌리내리고 서있는 나무와 같이 세상이 저를 지지하고, 또 제가 세상을 지탱할 수 있게 뿌리 내리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저는 세상이 저로 하여금 바로 서기를 바랍니다. 그러고 나면 제가 맞이할 세상을 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새로운 세상의 지지支支>



등산 직후에 이 에세이를 쓰고 나오면서는 굉장히 후련하고 또 성장한 기분이었는데 지금 보니까 알맹이가 없는 글이었네요.


하지만 등산하며 제가 마음껏 잡고 의지했던 든든한 뿌리깊은 나무와 같은 사람이 되겠다는 제 다짐은 확고해지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첫 번째 에세이의 의미는 거기에서 찾아봅니다.


제게 큰 충격과 영향을 줬던 1박 2일 기본학교 입학식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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